미리캔버스가 그린 일러스트.[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는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본다.
8거래일 만에 찾아온 2%대 반등에도 여의도 증권가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난 16일 코스피가 2.05% 오른 5668.05로 숨을 돌렸지만, 이를 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개인 투자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일 쏟아진 투매 폭탄에 계좌가 이미 찢겨 나간 탓도 크지만, 주말 사이 뉴욕증시에서 날아든 소식이 다시금 개미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1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은 2.15% 급락했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3.83% 떨어지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장인 ‘8거래일 연속 하락’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썼다.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11.91%)의 부채 문제로 촉발된 AI 수익성 회의론에 마이크론(-5.63%), AMD(-5.95%) 등 기술주가 일제히 폭락했다. 여기에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109.86달러까지 치솟는 유가 급등세까지 겹쳤다. 당장 19일 월요일 장이 열리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형주가 또다시 거센 매도 폭탄을 맞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코스피는 101.1% 폭등하며 전 세계 주요국 증시 수익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천국에서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는 데는 불과 두 달이면 충분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8월 말 6820선에서 순식간에 5554선까지 미끄러지며 9월 이후에만 18.6% 급락했다. 만성적인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튀르키예 ISE100지수(-15.8%)보다도 낙폭이 컸다.
같은 기간 일본(-2.8%), 독일(-3.3%), 인도(-3.4%)가 한 자릿수 조정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이번 폭락의 속도는 역사적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코스피는 이달 2일 이후 불과 7거래일 만에 21%나 폭락했다. 증권가에선 1980년 이후 7거래일간 코스피가 이보다 더 떨어진 사례는 1997년 IMF 외환위기(-25%),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31%),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25%) 단 세 번뿐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시장 체감은 이미 국가 부도나 팬데믹에 맞먹는 위기 상황인 셈이다.
더 서글픈 대목은 ‘체력’의 격차다. 미국발 AI 거품 불안이 불거졌을 때 일본 닛케이가 약 5%, 대만 가권이 3.41% 빠질 때 코스피는 홀로 7.57% 폭락했다. 같은 반도체 중심 국가인 대만 가권지수가 9월 이후 오히려 1.8% 오르는 동안 코스피는 곤두박질쳤다. 대만은 TSMC를 필두로 한 위탁생산(파운드리) 중심 기업들이 탄탄한 판매량과 폭넓은 글로벌 공급망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 반도체는 가격 변동성에 취약한 메모리 사이클에 기형적으로 기대어 있다. 여기에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차세대 D램 기술 추격과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불안까지 겹치자, 코스피는 무너졌다.
국내 증시의 고질적인 수급 공백도 화를 키웠다. 올해 들어 100조원 넘게 주식을 사들인 개인은 예탁금이 바닥났고, 연기금의 방어 여력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외국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매도를 집중시켰다. 9월 지수 하단을 지지해주던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마저 지난 7일 종료되자 국장은 매수 주체가 완전히 사라진 ‘빈집’이 됐다. 삼성전자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3.27배까지 추락해 과거 다운사이클 바닥 수준까지 밀렸음에도 받아줄 주체가 없는 탓이다.
기초체력이 바닥난 시장에서 개미들이 치른 대가는 참혹했다. 코스피가 7거래일 연속 곤두박질치는 동안 빚을 내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의 담보가 무너지며 강제 처분된 반대매매 금액만 3000억원에 달했다. 14일과 15일 이틀 동안에만 각각 800억원대의 주식이 아침 동시호가에 하한가로 내던져졌다. 바닥인 줄 알고 버티다 계좌가 강제로 청산당한 개미들의 피눈물이 지수를 짓눌렀고, 증시 대기자금인 예탁금마저 불과 열흘 만에 4조원 넘게 증발했다.
공포에 질린 개인 투자자들은 결국 ‘국장 탈출’을 택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국내 채권을 1조원 넘게 사들였고, 5%대 고금리를 주는 미국 국채 시장으로는 이달에만 12억1000만달러(약 1조6132억원)가 넘는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역대급 과매도 구간이라며 투매에 휘말리지 말고 버티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낙폭이 15%를 넘었던 과거 폭락장에서 한 달 뒤 반등 확률이 20%에 불과했다는 통계는 개미들의 발걸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IMF와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폭락 속에서, 반도체발(發) 충격 하나에 휘청이는 취약한 시장 체력은 아무런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했다. 수급이 텅 빈 시장에서 반대매매로 계좌가 털리고 채권 시장으로 피난길에 오른 개미들에게, 언제까지 “바닥이니 믿고 버티라”는 위로만 건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