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제조업체 책임 인정
부작용 표시 소홀도 결함 판단
‘농가에 8000만원 배상’ 판결
어미돼지가 새끼돼지에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수년 전 한 양돈농가가 돼지유행성설사병(PED) 생백신을 접종한 뒤 새끼돼지가 집단 폐사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백신 제조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이 나왔다. 질병을 막으려고 맞힌 백신이 오히려 질병의 원인이 됐다고 본 것이어서 업계 이목이 쏠린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민사부는 양돈농가 A씨가 동물용 백신 제조업체 B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9월29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백신에 제조상 결함과 표시상 결함이 모두 있다고 인정했다.
PED는 제3종 법정 가축전염병으로 양돈농가의 대표적인 소모성 질병이다. 전염력이 강하고, 생후 1주 안팎의 포유자돈(젖 먹는 새끼돼지)에서 특히 폐사율이 높다.
판결에 따르면 A씨는 그해 4월·8월·11월 모두 세차례에 걸쳐 B사의 PED 경구용 생백신을 어미돼지에 접종했다. 백신접종이 제대로 이뤄졌음에도 매번 2∼3주 뒤 자돈에서 설사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 수의사의 간이검사에서 PED 감염이 확인됐고, 가축병성감정실시기관에 의뢰한 검사에서도 PED 바이러스 항원이 검출됐다.
백신접종 전 하루 평균 3∼4마리에 불과했던 자돈 폐사마릿수는 1차 접종 뒤 47마리로 크게 늘었다. 8월 2차 접종 뒤엔 11마리, 11월 3차 접종 뒤에도 20마리에 달했다. 재판부는 폐사규모가 평소의 2.5∼16배에 이른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백신접종과 PED 발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한 핵심 근거는 유전자 분석이었다. 농장 분변에서 나온 바이러스와 백신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유전자 염기서열이 99.95% 일치했다.
B사는 백신주가 특정 유전자가 결손돼 병원성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폐사한 자돈의 바이러스에서 백신과 같은 결손 표지가 확인된 점을 해당 백신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근거로 봤다.
표시상 결함도 문제가 됐다. B사는 품목허가 서류에 ‘모돈 분변으로 바이러스가 배출돼 포유자돈에 전달되면 안전성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었다. 그러나 정작 농가가 보는 사용설명서 부작용란에는 일과성 발열, 원기소실, 식욕부진만 기재했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B사가 A씨에게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B사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A씨도 실제 피해규모에 걸맞은 배상을 받겠다며 항소한 상태다.
한 양돈업계 관계자는 “질병을 예방하려고 접종한 백신이 오히려 질병 발생의 원인이 된 사례”라며 “충분한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채 백신을 제조·판매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