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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네" 생각했던 친구가 나랑 달랐던 것

요약
  • 글쓰기 동료인 문하연 작가가 포기하지 않고 소설을 집필해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본 필자는 이를 통해 끈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 두 사람은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도전하는 노년의 동지적 관계를 지향한다.
[바라는 노년] 함께 도전하고 응원하는 동지같은 친구의 존재기자말

나이 들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변화들을 받아들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유쾌하게 생각해 보는 이야기.

부러우면서도 자극이 되는 친구가 있다. 같이 출발했지만 저 멀리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친구. 나에게는 친구 A가 그런 존재다.

A와는 몇 년 전 한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다. 스무 명 남짓한 수강생 중에서 그런 모임에 올 것 같지 않은 화려한 외모여서 눈에 띄었다. 무난 그 자체인 나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는데, A를 다시 보게 된 건 글쓰기 발표 시간이었다.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았고 결혼한 이후 줄곧 가정주부로만 살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글솜씨였다.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해서 좋았다. 좀 진지해서 무거운 나와 달리 글이 감각적이고 싱싱한 활어 같았다. 아마도 내게 부족한 부분을 갖고 있어서 더 끌렸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 A에게 호감이 생겼고, 내 마음이 통했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해졌다.

▲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책을 냈다.
ⓒ 신소영

우리는 서로의 글을 봐주고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함께 연재하고, 비슷한 시기에 책도 출간하면서 동지적 관계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드라마를 쓴다고 했다. 비슷한 업계에서 일한 나로서는 오십을 앞둔 친구의 도전이 다소 무모하게 느껴졌다. 실력이나 노력과 별개로 데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계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친구

예상대로 A는 몇 년 동안 자신을 갈아 넣는 수준으로 대본을 쓰고 고치며 도전했지만,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즈음 나도 출판사와의 계약이 몇 번이나 어그러져서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우리 둘 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무렵, 친구는 드라마 대본 쓰기를 멈췄고 나 역시 글쓰기에 지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머리를 식힐 겸 같이 여행을 떠났다. 열심히 해도 되는 일이 없었던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여행인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A는 스토리 공모전에 도전해 보자고 나에게 제안했다. '이제 지긋지긋하지 않아?'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이미 A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다. 스스로를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꾼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잘할 자신이 없었고, 내 분수 이상의 것에 더 도전할 에너지도, 의욕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날은 A의 열정 때문이었는지, 순수 소설이 아니라 스토리 공모전이라는 말에 혹했는지, 나도 모르는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박한 희망을 붙잡고 싶었는지, 무언가에 홀린 듯 동의했다. 결국 몇 개월의 준비 끝에 우리는 둘 다 공모전에 출품했고, 보기좋게 똑 떨어졌다.

그 뒤로 나는 글쓰기를 멈췄다. 아무리 써도 인정받지 못하는 글쓰기 노동에 염증이 나서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뒤로 3년이 지난 최근까지 생계형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A는 달랐다. '포기가 뭔가요?' 하는 근성으로 소설을 계속 쓰더니 결국 첫 소설책을 냈다. 그리고 그 책이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추천 도서에 뽑히고, 전국 여러 도서관에서 추천되면서 조금씩 주목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소설을 통해 만난 인연들이 계기가 되어, 포기했던 드라마 작업까지 다시 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막혔던 하수구가 뚫린 것처럼 A의 길은 그렇게 뚫렸다. 갑자기 속도를 내며 뻗어 나가는 A를 보며 그간 고생한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참 기뻤다.

한편으로는 같은 선상에 있다가 어느새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는 A가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나도 쫓아가야겠다 싶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차이가 벌어졌을까 궁금했다.

처음엔 '운이 참 좋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날을 가만히 돌아보니 A가 어느 날 갑자기 행운을 만난 게 아니라, 내가 멈춘 동안에도 꾸준히 자기 길을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안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 결과, 오십 넘어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A를 보며 글쓰기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삶은 글을 낳고, 글은 삶을 돌본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걸 A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내 글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A는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글로 쓰며, 그 글을 통해 다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고 있었던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쓰고 싶은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런 의욕이 반가워서 노트북 앞에 앉아서 더듬더듬 쓰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에서는 먼지가 풀풀 나고, '글빨'은 녹이 슬어 있었다. 이런 상태를 대면하는 게 어찌나 괴롭고 부끄럽던지.

"재능보다 중요한 건 잘할 때까지 못하는 시간을 버티는 능력이다."

도망치고 싶을 때 어디선가 본 이 문구가 마음을 잡아주곤 한다. 그래서 아직은 무뎌진 날을 갈면서 못하는 시간을 버티는 중이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걸 A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내 글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A가 내 글을 보고 잘 봤다는 연락을 해왔다.

"쓰는 삶으로 같이 살아가요. 응원 또 응원합니다. 나의 동지."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고, 멈춰 있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동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동지이고 싶다. 그렇게 함께 도전하고, 서로의 다음 걸음을 응원하며 나이 들어간다면 꽤 괜찮은 노년이지 않을까.

궁금하실까 봐 밝히면, A는 문하연 작가, 앞서 언급한 소설은 <소풍을 빌려드립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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