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9일 시민들이 부캉이를 향해 남긴 쪽지가 붙은 게시판을 촬영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누군가를 좋아하면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이 야근하고 있다는 걸 알면 혹여나 배고프지 않을지, 갑작스레 추위가 닥치면 옷은 따뜻하게 입고 있을지 짧은 메시지로 안부를 묻거나 따뜻한 커피 쿠폰을 보내줄 수도 있다. 때로는 염려가 뒤섞인 마음이 잔소리로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추석을 앞두고 있던 부산의 풍경이 그랬다. 어느 날 좁은 인공수로에 나타난 야생 상어에게 사람들은 ‘부캉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부캉이가 굶을까 봐 수로에 생닭을 던졌다가 해경에게 붙잡힌 아저씨, 비가 내리자 “부캉아! 니 비 맞고 있나? 춥제?”라며 정겨운 사투리로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출했다.
부산시가 선박을 동원해 상어를 먼바다로 내보낼 거라는 소식에는 “지 알아서 하긋지. 고마 나나라(그냥 놔둬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이 역시 걱정이 쌓인 마음이었다. 부산 시민들은 부캉이를 보며 좋아하는 그 사람들의 모습마저 좋아했다. 아니, 오히려 그 풍경을 더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 대체 이 사랑은 어디서 온 걸까?
울타리 안에 사는 수많은 생명을 다시 떠올린다. 밀림의 맹수든 멸종위기 판다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시대. 돌고래와 상어, 물범은 유리벽 뒤에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린다. 살아서 박제된 동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공범이 된 기분이다. 울타리 밖으로 탈출한 동물은 또 어떤가. 대전의 늑대 늑구, 서울의 얼룩말 세로처럼 극적인 이야기들이 이미 존재한다. 그때마다 ‘풀어줘라’ ‘살려줘라’ ‘인간이 미안하다’ 따위 연민과 죄책감이 뒤따라왔다.
북항친수공원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북항을 찾은 이들은 부캉이 ‘직관’을 행운으로 여겼다. 매끈한 지느러미를 가진 상어는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나타나주지 않았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언제든 부산 앞바다를 떠나 먼바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예측 불가능한 자유로움이 우릴 조급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설레게 했다. 그 행복한 우연을 공유한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순도 높은 즐거움을 만끽했다.
공원을 울린 외침 “부캉아! 잘 살아라!”
부캉이가 나타난 곳은 옛 부산항의 항만시설이 시 외곽으로 이동하며 시민들 품에 되돌아온 공간이다. 개장 4년이나 됐지만 부족한 콘텐츠 탓에 동네 주민과 점심시간 직장인들만 주로 찾던 곳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최고의 콘텐츠, 살아 움직이는 상어 덕에 이곳엔 평소보다 50배가 넘는 인파가 몰렸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홍보로 주변 상권까지 들썩였다. 하지만 곧 차가워질 좁은 수로에 야생 상어를 계속 둘 수는 없던 터, 부산시는 부캉이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시민 안전은 물론이고 상어 폐사 우려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부캉이를 먼바다로 돌려보내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첫날(9월29일), 아침부터 사람이 또 몰렸다. 해경과 119 구조선이 동원돼 물줄기를 쏘아 부캉이를 외해로 유도했다. 물줄기 사이로 상어 지느러미가 눈에 띌 때마다 “부캉아! 잘 살아라! 꼭 또 보자!”는 외침이 들렸다. 부산 아저씨들의 굵직한 목소리가 드넓은 공원에 쩌렁쩌렁 울렸다. 영상을 통해 본 이들 사이에선 ‘상어 괴롭히지 말라’는 불만도 나왔지만, 실제로는 꽤 정다운 환송 행사였다. 5시간이 넘는 작업에도 부캉이가 수로를 떠나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환송 연습이 되었다.
상대의 입장과 마음이 아무리 궁금하다지만 야생의 무태상어, 부캉이의 뜻을 사람이 알 길은 없다. 수로 벽에 바짝 붙어 유턴하는 모습을 두고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내놨다. 어떤 이는 길을 잃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먹을 것이 충분해 이 공간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유야 어떻든, 부캉이가 마음껏 바다를 누비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부산의 2026년 가을은 그 마음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