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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청소년들의 읽기 능력이 퇴보한 까닭 [평범한 이웃, 유럽]

요약
  • 2025년 PISA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청소년들의 읽기 능력이 지난 10년 사이 한 학년 반 정도 퇴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 유튜브를 통한 문학 요약 영상 시청 등 디지털 매체 활용이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며 교육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피사(PISA) 추이를 보면 10년 사이에 같은 연령대 학생들의 읽기와 수학 능력이 한 학년 반 정도 퇴보했다. 읽기 능력의 퇴보 현상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잇따른다. 유튜브 채널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에 올라와 있는 호메로스의 &lt;오디세이&gt; 요약 영상. &#169;유튜브 채널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 갈무리 유튜브 채널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에 올라와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요약 영상. ©유튜브 채널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 갈무리

스위스 취리히에서 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엘레아나(15·가명)는 독일어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이 시험에 나오는데 책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 전날, 엘레아나는 유튜브 채널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Sommers Weltliteratur to go)’에 들어갔다. 유명 문학 작품 줄거리를 요약해 설명하는 채널이다. 역시나 〈노부인의 방문〉도 있었다. 엘레아나는 책은 완독하지 못했지만 12분 15초짜리 요약 영상으로 시험 준비를 마쳤다.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은 독일어권 학생들이 시험 직전에 자주 찾는 인기 채널이다. 2015년 시작된 이 채널 구독자는 현재 약 22만명, 올라온 영상은 1000개 이상이다. 운영자인 미하엘 좀머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피규어 장난감인 플레이 모빌을 손으로 움직여가며 간단한 연극 공연 하듯 작품을 설명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조지 오웰의 〈1984〉, 카프카의 〈변신〉 등이 대략 12분 내외의 길이로 요약된다. 12분도 너무 길다고 느끼는 시청자를 위한 쇼츠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58초,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47초짜리 쇼츠로 줄어들었다. “영상 덕분에 책을 읽지 않고도 최고 점수를 받았다”는 식의 댓글이 종종 눈에 띈다.

채널을 만든 좀머는 1976년생이다. 문학을 전공했고 2014년까지는 독일 울름의 극단에서 수석 드라마투르크(극단 내부 비평가 겸 컨설턴트)로 일하다 극단을 그만두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대본 작성, 세트 제작, 촬영, 목소리 연기, 편집까지 모두 혼자서 한다. 채널이 인기를 얻으면서 유서 깊은 독일 레클람 출판사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고, 2018년에는 독일 그리메 연구소가 우수한 온라인 출판물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 ‘그림메 온라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미하엘 좀머는 플레이 모빌을 이용해 고전문학을 12분 전후로 요약한다. &#169;유튜브 채널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 갈무리 미하엘 좀머는 플레이 모빌을 이용해 고전문학을 12분 전후로 요약한다. ©유튜브 채널 ‘좀머의 세계 문학 여행’ 갈무리

12분짜리 〈죄와 벌〉이나 58초짜리 〈햄릿〉 요약 영상이 ‘우수 온라인 출판물’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일간지 〈NZZ〉는 지난 8월 좀머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그의 유튜브 채널은 독일어 시험 전날 밤에 종종 구세주가 되어준다. 그것은 천재적인 발상일까, 아니면 심각한 문화적 퇴보의 징후일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인터뷰에서 좀머는 “내 영상은 독서를 피하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라 반대로 독서를 가능하게 도우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문학의 진입 문턱을 낮춤으로써 흥미를 유발해 실제 독서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지 않다. 벼락치기 시험이 끝난 뒤 엘레아나는 아쉬운 마음에 〈노부인의 방문〉을 제대로 읽을 수도 있고 아예 잊어버릴 수도 있다. 어쨌거나 학생들이 유튜브로 문학 시험에 대비하는 새로운 현상 뒤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문제가 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해력 저하에 대한 경고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이 문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켜졌다. 지난 9월 공개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2025년 피사(PISA) 결과다.

AI 적게 사용하는 국가들 성적 높다



피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으로 전 세계 15세 학생들의 읽기·수학·과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2000년부터 3년 주기로 치러져왔으며 2025년 시험에는 91개국에서 약 76만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시험 외에도 학습환경이나 사고방식 등을 설문으로 조사한다. 평가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큰 규모로 일관적 기준을 적용해 시험을 치르게 하고 결과를 분석하기로는 피사가 거의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번 피사 보고서는 OECD 회원국 중 23개국의 각 영역 점수 평균이 2000년 이후 어떻게 변해왔는지 짚었다. 추이를 보면 점수가 2012년부터 조금씩 떨어지다가 2018년 이후 급락함을 알 수 있다. 과학에 비해 읽기와 수학의 하락이 심했고, 최근에는 특히 읽기 성적이 가파르게 떨어졌다(〈그림〉 참조). 2015년에 497점이던 읽기 평균은 2025년 466점으로, 2015년에 496점이던 수학 평균은 2025년 469점으로 하락했다. 피사 성적 20점은 보통 한 학년치 학습량으로 해석된다. 10년 사이에 같은 연령대 학생들의 읽기와 수학 능력이 한 학년 반 정도 퇴보했다는 의미다.



이번 결과가 공개되자 여러 국가에서 충격적인 역대 최저 성적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는 결과 발표 당일인 9월8일 “교육계의 참사(Descalabro educativo)”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지난 10년간 스페인 학생의 피사 읽기 점수 누적 하락 폭은 45점으로 OECD 평균보다 훨씬 크다. 스위스 일간지 〈NZZ〉는 9월9일 기사에서 “마치 배를 가격당한 듯한 충격(wie ein Schlag in die Magengrube)”이라는 표현을 썼다. 스위스 학생의 읽기 점수는 10년 전보다 22점 떨어졌는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생 10명 중 3명이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을 정도로 읽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과다. 스위스가 피사 결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교육비다. 의무교육에 학생 1인당 연간 2만1000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스위스는 OECD 국가 중 교육비 지출이 큰 나라 가운데 하나다(스위스보다 교육비를 많이 지출하는 나라는 룩셈부르크와 한국뿐이다). 부유하고 물가 높은 나라임을 감안하더라도, 그간 교육비 지출은 계속 늘었는데 성취도가 떨어지니 위기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일부 예만 들었지만 읽기 능력의 퇴보는 전 세계적 추세다. 퇴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러 요소 중 대부분의 나라에서 우선적으로 꼽는 것은 디지털 기기 사용 증가다. 세부적으로는 이것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전자책을 읽고 온라인 교재로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인 매리언 울프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디지털 읽기는 훑어보기, 단어 찍기, 지그재그식 읽기로 이어져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많은 양의 정보를 단시간에 소비하면서 인지적 과부하에 걸리고 결과적으로 지속적·집중적 읽기가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기기의 부산물인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AI) 사용의 부작용이다. 2025년에 피사 시험을 치른 청소년은 2010년 전후에 태어났다. 페이스북(2004)과 유튜브(2005), 트위터(2006), 아이폰(2007), 인스타그램(2010)이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이어 스냅챗(2011), 틱톡(2016)이 탄생했다. 도처에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인내심을 앗아가는 매체가 널린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2022년 말에는 대규모 언어모델 챗지피티(ChatGPT)가 등장해 고도의 창의적 활동인 글쓰기마저 외주화하는 게 가능해졌다. AI 사용과 학업성취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 적어도 이번 피사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이 AI를 가장 적게 사용하는 5개국(일본·아일랜드·영국·핀란드·캐나다)에서 읽기·수학·과학 성적이 모두 상위권에 속했다.

이주민 증가와 교육정책의 실패?



읽기 능력 퇴보의 다른 원인들은 각국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유럽 몇몇 나라에서 공통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주민 증가와 교육정책의 실패다. 우선 이주 환경이 문해력에 미치는 영향을 보자. 피사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의 15세 학생 5명 중 1명은 본인 또는 부모가 이주민인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두 배 높은 수치다. 이주 배경을 지닌 학생은 피사 시험 세 영역 모두에서 스페인 원주민 학생보다 평균 40점이 낮았다. 독일은 이 경향이 더 극단적이다. 이주민 학생은 원주민에 비해 점수가 83점 떨어졌다.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전 교육장관인 마티아스 브로드코르브는 8월16일 스위스 일간지 〈타게스안차이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겠지만, 통제되지 않은 방식으로 너무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주택 부족뿐 아니라 이민자들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그 지역 학생 80~90%가 제대로 된 독일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다른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이들과 교사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사실 이주 배경과 문해력의 상관관계는 겉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주민이라도 사회경제적 배경이 모두 단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민 증가가 문해력 퇴보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처음에 극우 세력의 이주 반대 논거로 이용되다가 이제는 중도 및 좌파 쪽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8월10일 호주 애들레이드의 학교 앞에서 한 청소년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169;시사IN 박미소 8월10일 호주 애들레이드의 학교 앞에서 한 청소년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다음으로 교육정책을 보자. 유럽 각국에서 유행해온 이른바 ‘통합 교실’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스위스에서는 약 20년 전 각 칸톤(州)에서 장애 학생 및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을 일반 학급으로 통합하는 정책이 시작됐다. 초기 반응은 긍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위스 교사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학급의 절반 이상에 특수교육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자폐스펙트럼 장애, 불안장애, 학습장애 등을 가진 학생들이 통합된 교실 내 다양성은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이를 지원할 자원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결국 가장 큰 불이익은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본다는 게 교사들의 주장이다(〈타게스안차이거〉, 9월1일 보도). 스페인에서도 포용성과 학생 인권을 강조한 ‘롬로에’ 교육 개혁안이 2020년부터 시행되었다. 성취도가 낮아도 유급되지 않게 기준을 낮추고 특수교육 대상 학생 및 언어가 다른 난민 학생을 일반 학교에 통합 배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확충한다던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아 교사들의 부담이 커졌고, 누적된 불만은 교사 시위와 파업으로 표출되고 있다.

읽기 능력의 퇴보가 왜 문제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에서 문해력이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가 6000년에 걸쳐 이룬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뇌의 가소성(외부의 자극을 받아 형태나 구조가 바뀐 뒤 그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에 기반한 성취다. 읽기를 배워 뇌를 변화시킨 덕에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고 경험을 전수하며 도덕적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읽지 못하는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는 위험하다. “그동안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다양한 견해들의 표출이 아닙니다. 모든 시민이 지적 능력을 발휘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도록 교육하지 못하는 것이 진짜 위협입니다(위의 책).” 청소년들이 온라인에서 쓰는 약어 “tl; dr(too long; didn’t read, ‘너무 길어서 안 읽었어’)”는 그 위협의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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