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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주영 회장이 마지막 시간 보낸 가회동 집에 얽힌 사연

요약
  •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저택이 최근 경매를 통해 낙찰되었습니다.
  • 이 집은 과거 박흥식, 정주영, 정태수 등 재계 거물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풍수적으로는 명당의 품격을 갖췄으나 물길이 갈라지는 분수령이라는 약점이 공존하는 곳으로 분석됩니다.
[안영배의 웰빙 풍수] 일제강점기 대부호 박흥식이 살던 곳… 정태수 전 한보 회장도 임차해 거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저택. 안영배 제공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저택. 안영배 제공
서울의 대표적 한옥마을 북촌(종로구 가회동·삼청동·계동 일대)은 조선 개국 이후 권력층과 세도가가 모여 살았던 양반촌이다. 현대에도 한옥 운치를 즐기며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재력가들의 관심을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화, 롯데, LG 등 대기업 오너 일가가 이 지역에 자택, 세컨드하우스 또는 영빈관 용도로 초호화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저택은 높은 담장과 나무 등에 가려져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이처럼 외부 노출을 피하는 북촌 재벌가 소유 저택 가운데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끄는 곳이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가회동 집’이다. 2324.2㎡(약 703평) 면적의 대지에 지하 1층~지상 2층, 연면적 524.24㎡(약 158평) 규모인 이 저택은 8월 중순 법원 경매로 넘어가 세 차례 연속 유찰된 뒤 최근 최초 감정가(392억5774만 원)의 절반 수준인 203억 원에 낙찰됐다. 10월 초 마지막 입찰 때 딱 한 명이 경매에 참여해 겨우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 감정가 절반에 경매 낙찰소유주의 채무 불이행으로 경매까지 가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 집의 내력은 예사롭지 않다.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거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저택은 일제강점기에 서양 주택을 본떠 지은 이른바 ‘문화주택’ 중 하나인데, 1931년 화신백화점 창업주인 고 박흥식 씨의 소유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박 씨는 한국인 최초로 국내에 백화점을 설립한 당대 거부 중 한 명이었다. “내가 한참 뛸 때 이병철 씨(삼성그룹 창업회장)는 양조업을 하고, 정주영 씨(현대그룹 창업회장)는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었다”고 한 말이 유명하다. 평안도 용강 출신인 그는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뒤 명당을 물색하다가 거금을 주고 가회동 이 집을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씨는 이 집에서 1988년까지 57년 동안 살았다. 그는 광복 후 일제 식민통치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오명을 썼지만, 오랫동안 한국 10대 재벌에서 빠지지 않는 부를 누렸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운영하던 화신산업과 계열사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모두 해체됐고, 박 씨는 자신의 체취가 담긴 가회동 집까지 팔아야 했다.

물길 갈라지는 분수령 입지가 단점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 한옥마을. 조선시대부터 권력층과 세도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던 곳이다. 동아DB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 한옥마을. 조선시대부터 권력층과 세도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던 곳이다. 동아DB
이 집은 한 무역업자에게 넘어간 뒤 2000년 2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 소유가 되면서 다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좋은 집터’를 구하던 정 창업회장은 55억 원을 지불하고 이 집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정 창업회장이 오래전부터 이 집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는 소문도 나돌았으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튼 정 창업회장은 자신이 직접 지은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2000년 3월 둘째 아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종로구 계동 현대 본사 사옥에서 약 400m 떨어진 이곳 가회동 집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정 창업회장과 이 집의 인연은 그리 깊지는 않았던 듯하다. 정몽구 회장과 다섯째 아들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마찰을 빚자 가회동을 떠나 원래 살던 청운동으로 돌아간 것이다. 정 창업회장은 이듬해인 2001년 3월 21일 타계했고, 그해 9월 부동산업을 하는 정모 씨가 이 집을 샀다.

이후 등장한 재계 인사가 한보그룹 회장을 지낸 고 정태수 씨다. 그는 2003년부터 약 2년가량 이 집에서 고액의 임차료를 내고 살았다. 정 씨는 사업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풍수, 사주 등을 참고한 인물로 유명하다. 한보그룹이 승승장구하던 1980~1990년대 초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에 사무실을 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강남 개발 붐이 일던 1978년 자신이 지은 은마아파트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사업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게 되자, 그곳이 자신에게 재물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나가던 한보그룹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과정에서 부도를 맞았고, 정 씨는 재기를 위해 박흥식부터 정주영 등까지 재계 거목이 살던 가회동 집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 씨는 2005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해외로 도피했고, 2018년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을 대표하던 재계 인사들이 살았다는 화려한 이력과 달리 가회동 집터 역량은 그다지 발휘되지 못한 듯하다.

필자는 2024년 10월 풍수 감정차 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집을 기준으로 왼쪽 산줄기(청룡)에 창덕궁이 자리 잡고 있고, 오른쪽(백호)으로 경복궁을 품에 안은 북악산이 있으며, 바로 맞은편에는 남산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형국이다. 외견상 명당 품격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경남 의령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생가나 경주 최부잣집 마당에 자연 우물이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역시 위로 치솟아 오르는 우물이 형성돼 있는 점도 예사롭지 않았다. 마당 정원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생전에 정 창업회장이 매우 좋아한 나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산등성이, 즉 산 등줄기에 자리 잡은 터는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산등성이 쪽은 물이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분수령(分水嶺)이 되기 십상인데, 이는 분열, 이별, 손재 등을 암시한다. 이 집 역시 물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세워진 것이 약점으로 꼽혔다. 물론 산등성이라 해도 물길이 흩어지지 않도록 형성된 지형은 이런 풍수적 약점을 피할 수 있다.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 자택. 건물 여러 채가 한화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안영배 제공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 자택. 건물 여러 채가 한화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안영배 제공
산등성이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정 창업회장이 살던 집터와 구별되는 곳이 바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저택이다. 정 창업회장 집터에서 북쪽으로 400m 남짓 떨어진 김 회장의 집은 야트막한 산줄기가 이어져 내려오는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새 둥지 모양의 우묵한 터를 형성하고 있다. 빗물이 흘러내리더라도 양 방향으로 갈라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 모이는 곳이다. 생전에 이 집을 방문한 적 있는 고 최창조 서울대 교수(풍수학자)는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라고 평한 바 있다. 최 교수는 또 김 회장의 가회동 저택이 한남동 삼성가보다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흔히 이런 자리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 혈이라고 하는데, 풍수서에 따르면 자손이 번성하고 부귀를 겸전하는 곳이다.

김승연 회장 자택은 금계포란형 명당 현재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김 회장 자택은 건물이 여러 채 들어서 있어 집이라기보다 한화그룹 오너 가족이 모여 사는 타운에 가깝다. 자택뿐 아니라 집무실, 영빈관 등 시설이 같이 있다고 한다. 골목 입구에서 보안요원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집 주위로 나무 수십 그루가 빽빽이 서 있는 형태다. 사실 가회동 김 회장 저택은 백병원 설립자인 고 백인제 원장 가옥, 고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 등과 함께 북촌의 대표적인 명당 집으로 꼽힌다. 가회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김 회장은 누구보다도 북촌 집터의 명당 기운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김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은 눈부실 만큼 성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자산 총액 149조6050억 원으로 재계 서열 5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7위에서 롯데와 포스코를 제치고 두 계단 더 올라선 것이다.

서울 북촌의 명당 집으로 손꼽히는 고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서울 북촌의 명당 집으로 손꼽히는 고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현대 풍수학의 중심은 조상 묘를 다루는 음택풍수에서 사람의 거주지를 다루는 양택풍수로 옮겨가는 추세다. 고전 양택지리서 ‘황제택경’은 “묘지가 흉하더라도 집이 길하면 자손이 관록(官祿)을 얻으며, 묘지가 길하지만 집이 흉하면 자손의 식록(食祿)이 부족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무덤보다 집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인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과 사무실 등 양택은 당사자에게 정신적·육체적·심리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사는 부동산의 물질적 가치뿐 아니라, 터에 담긴 무형의 에너지도 함께 점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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