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저택. 안영배 제공 |
이처럼 외부 노출을 피하는 북촌 재벌가 소유 저택 가운데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끄는 곳이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가회동 집’이다. 2324.2㎡(약 703평) 면적의 대지에 지하 1층~지상 2층, 연면적 524.24㎡(약 158평) 규모인 이 저택은 8월 중순 법원 경매로 넘어가 세 차례 연속 유찰된 뒤 최근 최초 감정가(392억5774만 원)의 절반 수준인 203억 원에 낙찰됐다. 10월 초 마지막 입찰 때 딱 한 명이 경매에 참여해 겨우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 감정가 절반에 경매 낙찰소유주의 채무 불이행으로 경매까지 가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 집의 내력은 예사롭지 않다.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거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저택은 일제강점기에 서양 주택을 본떠 지은 이른바 ‘문화주택’ 중 하나인데, 1931년 화신백화점 창업주인 고 박흥식 씨의 소유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박 씨는 한국인 최초로 국내에 백화점을 설립한 당대 거부 중 한 명이었다. “내가 한참 뛸 때 이병철 씨(삼성그룹 창업회장)는 양조업을 하고, 정주영 씨(현대그룹 창업회장)는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었다”고 한 말이 유명하다. 평안도 용강 출신인 그는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뒤 명당을 물색하다가 거금을 주고 가회동 이 집을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씨는 이 집에서 1988년까지 57년 동안 살았다. 그는 광복 후 일제 식민통치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오명을 썼지만, 오랫동안 한국 10대 재벌에서 빠지지 않는 부를 누렸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운영하던 화신산업과 계열사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모두 해체됐고, 박 씨는 자신의 체취가 담긴 가회동 집까지 팔아야 했다.
물길 갈라지는 분수령 입지가 단점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 한옥마을. 조선시대부터 권력층과 세도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던 곳이다. 동아DB |
그러나 정 창업회장과 이 집의 인연은 그리 깊지는 않았던 듯하다. 정몽구 회장과 다섯째 아들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마찰을 빚자 가회동을 떠나 원래 살던 청운동으로 돌아간 것이다. 정 창업회장은 이듬해인 2001년 3월 21일 타계했고, 그해 9월 부동산업을 하는 정모 씨가 이 집을 샀다.
이후 등장한 재계 인사가 한보그룹 회장을 지낸 고 정태수 씨다. 그는 2003년부터 약 2년가량 이 집에서 고액의 임차료를 내고 살았다. 정 씨는 사업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풍수, 사주 등을 참고한 인물로 유명하다. 한보그룹이 승승장구하던 1980~1990년대 초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에 사무실을 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강남 개발 붐이 일던 1978년 자신이 지은 은마아파트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사업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게 되자, 그곳이 자신에게 재물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나가던 한보그룹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과정에서 부도를 맞았고, 정 씨는 재기를 위해 박흥식부터 정주영 등까지 재계 거목이 살던 가회동 집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 씨는 2005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해외로 도피했고, 2018년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을 대표하던 재계 인사들이 살았다는 화려한 이력과 달리 가회동 집터 역량은 그다지 발휘되지 못한 듯하다.
필자는 2024년 10월 풍수 감정차 이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집을 기준으로 왼쪽 산줄기(청룡)에 창덕궁이 자리 잡고 있고, 오른쪽(백호)으로 경복궁을 품에 안은 북악산이 있으며, 바로 맞은편에는 남산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형국이다. 외견상 명당 품격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경남 의령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생가나 경주 최부잣집 마당에 자연 우물이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역시 위로 치솟아 오르는 우물이 형성돼 있는 점도 예사롭지 않았다. 마당 정원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생전에 정 창업회장이 매우 좋아한 나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산등성이, 즉 산 등줄기에 자리 잡은 터는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산등성이 쪽은 물이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분수령(分水嶺)이 되기 십상인데, 이는 분열, 이별, 손재 등을 암시한다. 이 집 역시 물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세워진 것이 약점으로 꼽혔다. 물론 산등성이라 해도 물길이 흩어지지 않도록 형성된 지형은 이런 풍수적 약점을 피할 수 있다.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 자택. 건물 여러 채가 한화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안영배 제공 |
김승연 회장 자택은 금계포란형 명당 현재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김 회장 자택은 건물이 여러 채 들어서 있어 집이라기보다 한화그룹 오너 가족이 모여 사는 타운에 가깝다. 자택뿐 아니라 집무실, 영빈관 등 시설이 같이 있다고 한다. 골목 입구에서 보안요원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집 주위로 나무 수십 그루가 빽빽이 서 있는 형태다. 사실 가회동 김 회장 저택은 백병원 설립자인 고 백인제 원장 가옥, 고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 등과 함께 북촌의 대표적인 명당 집으로 꼽힌다. 가회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김 회장은 누구보다도 북촌 집터의 명당 기운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김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은 눈부실 만큼 성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자산 총액 149조6050억 원으로 재계 서열 5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7위에서 롯데와 포스코를 제치고 두 계단 더 올라선 것이다.
서울 북촌의 명당 집으로 손꼽히는 고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저택. 안영배 제공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 한옥마을. 조선시대부터 권력층과 세도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던 곳이다. 동아DB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 자택. 건물 여러 채가 한화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안영배 제공
서울 북촌의 명당 집으로 손꼽히는 고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