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서 만난 사람들과 추억 이야기의 마지막 챕터는 낭만의 도시, 파리다.돌아보니 10년이 훌쩍 넘었다. 일주일 남짓 머물렀던 프랑스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 짤막한 메모를 끼적였다.
‘파리는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도시다.’
내가 스물두 살 때다. ‘거장(巨匠)’이라 칭해도 반론이 나올 수 없는 감독 올리버 스톤이 영화 한 편을 연출한다.
<도어즈(The Doors)>. 1960년대 미국 록밴드 도어즈의 보컬리스트 제임스 더글러스 모리슨(1943~1971)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작품이었다.
제임스는 노래하고 춤추는 단순한 가수의 범주를 벗어난 생을 살았다. 염세적인 눈동자를 가진 명민한 영화학도였던 그는 시집을 3권이나 출간한 작가이기도 했고, 총알 쏟아지는 베트남 정글로 청년들을 파병해 죽음으로 내몬 미국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한 반전운동가였다.
그런 열정과 뜨거움이 젊음의 에너지를 일찍 소진시킨 탓일까? 얼음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닮았던 제임스는 겨우 스물여덟에 요절한다. 사망한 곳은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
미 해군의 고위 장성이던 제임스의 부친은 아들의 시체 인수를 거부한다. 군인 아버지는 코카인과 위스키에 찌들어 살던 아들을 일찌감치 제 마음속에서 추방한 것이다. 제임스의 유택(幽宅)이 고향인 미국 플로리다가 아닌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있는 제임스 더글러스 모리슨의 무덤. 이 앞에서 폭음을 하며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젊은 시절 꿈이었다.프랑스로 여행을 간다면 제임스 더글러스 모리슨의 무덤 앞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폭음하며 시보다 더 매혹적인 그의 노래들을 흥얼거리고 싶었다. 그게 내 청춘 시절 꿈 가운데 하나였다.
그 꿈은 마흔다섯이 돼서야 이뤄졌다.
파리에 도착한 후 서둘러 프랑스 대통령들의 이름을 딴 미테랑 도서관과 퐁피두 도서관을 찾아 후다닥 일을 마쳤고, 에펠탑이 보이는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생떼밀리옹(Saint-Emilion) 2병을 마셨으며, 센강 위를 떠가는 유람선 바토무슈에 올랐다가, “지구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트립쇼”라 불리는 ‘크레이지 호스 쇼’까지 몰아치듯 봤다.
급박하게 일정을 소화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능하면 2~3일쯤은 제임스가 영원한 잠에 빠져 있는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 그러니, 몇 시간씩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한 루브르박물관에 가지 않은 건 불언가상(不言可想).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곧 비가 쏟아질 듯한 초여름 흐린 오전. 아일랜드 청년들이 새벽까지 떼창을 하던 탓에 잠을 설친 숙소를 나와 위스키와 포도주를 사서 가방에 넣고 페르 라셰즈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공동묘지에서 묻고 또 물어 제임스의 무덤을 찾았다. 가는 길에 오노레 드 발자크와 에디트 피아프의 묘지도 들렀다. 기이한 형태의 조각상이 즐비한 페르 라셰즈는 묘지라기보단 중세 귀족이 정성 들여 가꾼 거대한 정원을 닮아 있었다.
제임스의 무덤 앞에서 만난 그의 팬들. 그의 이름과 노래만으로 금세 가까워졌다.그날 제임스의 무덤을 찾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독일과 네덜란드, 미국과 스웨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 심지어 방글라데시에서 기꺼이 긴 시간을 들여 제임스 더글러스 모리슨의 영혼과 만나러 온 이들이 수십 명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대학생 둘은 기타를 치며 제임스의 노래를 흉내 냈다.
죽음으로 걸어간 지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전 세계 청년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 그걸 불멸(不滅) 외에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맞다. 제임스는 앞으로도 불멸할 것이 분명한 예술가다.
가져간 위스키와 포도주를 나눠 마시며 해가 질 때까지 무덤 앞을 서성거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청년만이 남아 있었다. 아쉽지만 페르 라셰즈를 떠나야 할 시간. 제임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묘지를 나와 도도해진 취기 속에서 어두워진 파리 시내와 센 강변을 돌아다녔다.
공원에도, 카페에도, 강가 벤치에도, 성당 앞에도, 광장에도 입을 맞추는 연인들이 지천이었다. 심지어 공동묘지에서도 키스를 하는 젊은이들을 봤다. 그게 부러웠던가?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 “입맞춤에서 멀어지면 청춘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떠올린 것 같다. ‘진짜(?) 키스’는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푸른 에너지와 붉은 정열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것. 그러니, 젊음의 터널을 지나는 세상 모든 청춘들은 어떤 시선에도 신경 쓸 것 없다. 쭈뼛대지 말고 입맞추며 살아라. 그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니.
공원에도, 광장에도, 심지어 무덤 앞에서도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연인들이 있었다.그리고 마지막. 제임스 더글러스 모리슨은 백만 번의 키스도 죄가 되지 않는 스물여덟 청춘을 영원히 살고 있다. 그가 부러운 또 하나의 이유다.
<끝>
[필자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 경북매일을 거치며 ‘쓰는 자’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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