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 아라로아, 나에게로 나오미 아널드 지음
신정은 옮김
그림나무
흔히 인생살이를 길 걷기에 비유한다. 잘나가면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방황할 땐 ‘길을 잃었다’고 한다.
거꾸로 길을 걸으며 인생을 통찰하기도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산책』, 리베카 솔닛의 『길잃기 안내서』 등이 그런 사유를 담은 책들이다.
비슷하지만 더 하드코어(?)한 걷기 책들도 있다. 셰릴 스트레이드가 멕시코~캐나다 국경을 잇는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약 4270㎞)을 걷고 쓴 『와일드』가 그렇다. 뉴질랜드 남·북섬을 종단하는 테 아라로아(마오리어로 긴 길이란 뜻, 약 3000㎞) 완주기를 담은 이 책도 후자 쪽이다. 두 책은 저자가 여성이란 공통점도 있지만 성격은 좀 다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와일드』는 마약 중독, 혼외 임신, 낙태 등으로 인생의 바닥을 친 저자가 길 위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인간승리 서사다.
반면 이 책에는 그런 ‘극적인 영웅’은 나오지 않는다. 솔직한 ‘현실 하이커’가 주인공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걷기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식의 “뻔한 자기계발식 담론”을 비웃는다. “그저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내가 해낼 수 있는지 궁금해서 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9개월간의 사서 고생을 날것 그대로 옮긴다. 진흙 범벅이 돼 욕하고, 폭풍우에 갇혀 울부짖고, 극심한 고관절·발바닥 통증으로 약을 달고 살고….
하지만 마침내 그 길의 끝에 도착했을 땐 “무언가 부드럽게 잡아끄는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 기분은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느낌, 만족감이었다.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끝냈다는 담백한 사실에서 오는 평온이었다”고.
그리고 인정한다. 테 아라로아가 자신을 바꿨다고. “겁이 없어졌고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됐고 더 친절해졌으며 더 차분해졌다. 매사에 더 감사하고 더 사랑하고 더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또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더 궁금해졌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꿋꿋이 버티는 것뿐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