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노동시장 마비시킨 극심한 한파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
미국 L 피자가게 구인 광고 [게티이미지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DB 및 재판매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2024년에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구직자가 2년여간 2천300여곳에 지원서를 넣었으나 여전히 무직 상태인 사연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소개됐다.
WSJ는 17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출신이며 고향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잭 와이스(30) 박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라이스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2018년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 진학해 화학 원리와 분자간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얼음 형성에 관한 그의 연구는 노벨위원회가 2024년 노벨물리학상을 발표할 당시 기계학습의 과학적 활용 사례로 인용하기도 했다.
와이스 박사는 처음에는 제약회사 연구직이나 국립연구소의 명망 높은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노리고 수많은 지원서를 보냈으나 대부분 아무런 답이 없었고, 간간이 불합격 통지만 받았다.
그는 업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지원 범위를 넓혔으나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나중에는 냉동 크랩케이크를 판매하는 회사의 식품 조리·준비 업무에도 지원했으나 아예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학연이 도움이 될까 싶어서 프린스턴대와 라이스대 동문들에게 전화로 연락해보기도 했으나, 결국 '회사 채용 사이트를 다시 보라'는 것이 도움의 전부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는 올해 1월에는 전문가를 고용해 인공지능(AI)을 훈련하는 스타트업에서 시간당 70달러(9만3천원)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1주일에 20시간을 일할 때도 있고 4시간만 일할 때도 있었으나 일감이 없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더니 몇 주씩 일이 끊겼고 결국 3월 중순 단체방 메시지로 계약 종료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가게에 붙은 구인 광고[게티이미지 AFP=연합뉴스. DB 및 재판매 금지]
와이스 박사는 로스쿨 진학도 고민하며 11월 입학시험에 응시하기로 했으며 AI로 침입성 잡초를 제거할 드론을 설계하며 창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는 "내게 정말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직접 나서서 그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부부인 와이스 박사의 부모는 아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 여전히 충격을 받고 있다.
모친 홀리 카버스는 고용주가 망설일 만한 문제가 있는지 아들의 지원서를 살펴봤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고 지원서는 잘 쓰인 것 같았다며 "정말 뜻밖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친 존 와이스는 "이 아이가 어려움을 겪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사를 쓴 린지 엘리스 기자는 와이스 박사를 처음으로 인터뷰했을 때는 그의 만 30세 생일 직전이던 작년 말이었다면서 "미국 50개 주 모두에서 구직자를 만나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50개 주 전역에서 수십 명을 인터뷰한 뒤에도 와이스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지난 몇 년간 노동시장을 마비시킨 극심한 한파를 그의 사연이 고스란히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는 현재 미국 구직·구인 시장의 상황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저채용·저해고' 환경이라며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갖고 있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아 다른 이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제한된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마치 요새 밖으로 내몰린 것 같아서, 성장하는 경제에 진입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WSJ에 따르면 최근 미국 고용보고서는 시장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실업률은 여전히 낮지만 올여름 실업자 가운데 27주 이상 장기 실업자의 비중은 코로나19 유행기와 그 직후를 제외하면 10여년 만에 가장 높았다.
8월 갤럽 조사에서 지금이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에 좋은 때'라는 미국인은 34%에 그쳤다.
지난달 발표된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는 미국 응답자의 70% 이상이 AI 탓에 전체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limhwaso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