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이 AI 학습을 위해 한국에서 사간 한국어 책이 총 165.69t(톤)에 달하는 것으로 18일 추가 확인됐다. 약 41만권으로, 한국에서 6~7년간 출간된 신간을 1종당 1권씩 모두 사간 것과 맞먹는 규모다. 지난 17일 중앙일보와 중앙SUNDAY는 앤트로픽이 한국 업체로부터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5차례에 걸쳐 매입한 책이 약 80t이라고 보도했다. 발송처는 국내 1위 도서도매유통사 웅진북센이고, 구매 업체는 ‘베터 월드 북스’(Better World Books·BWB)였다. BWB는 앤트로픽이 도서 조달·배송을 위해 계약한 회사다.
18일 수출입·선적 정보를 제공하는 임포트키(ImportKey)를 상세 분석한 결과 지난해 3월 추가 선적 기록이 2건 더 발견됐다. 2일에 20.55t(864박스), 8일에 61.05t(2592박스)의 책이 더 배송됐다. 역시 발송처는 웅진북센이었고, 부산항에서 선적됐다.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로 도착해, BWB로 책은 향했다. 앞서 웅진북센은 “앤트로픽과 책 공급 계약을 한 건 맞다”고 밝혔다.
‘바츠 대 앤트로픽’ 소송에 제출된 자료와 판결문을 보면, 이런 책들은 BWB가 받은 뒤 책 스캔 회사 데이터메이션(Datamation)으로 보내진다. 데이터메이션은 책등을 잘라 스캔한 뒤 파일은 앤트로픽에 넘기고, 책은 폐기한다. 165.69t은 책 한 권의 무게를 평균 400g이라고 봤을 때 41만4000권에 해당하는 양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 기준으로 2020~2025년 6년 동안 국내에서 발행된 신간은 총 38만3792종이었다. AI 기업은 같은 책을 AI에 두 번 학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1종당 1권씩만 매입한다. 다만 웅진북센은 계약의 비밀 유지 조항을 이유로 구체적인 도서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정도 규모면 문학·비문학 가리지 않고 한국 작가들의 책 상당수를 학습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최근 앤트로픽이 해적 사이트에서 받은 디지털 도서에 한강·김영하·황석영 등 한국 주요 작가의 책 영문 번역본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됐다. 그런데 앤트로픽이 한국에서 수입한 종이책 규모를 봤을 때 디지털 도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작가들의 저작권 피해 규모는 크다.
‘바츠 대 앤트로픽’ 소송의 12호 증거자료인 앤트로픽의 내부 회의 자료. 2024년 11월 27일 회의 내용엔 동아시아 도서유통사와 계약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 구입 규모 등 구체적인 수치는 가려져 있다. 사진 미국 법원 제출 자료 캡처 ━
대만은 563t…중국 책 우회 구입?
이번에 임포트키를 상세 분석하면서 앤트로픽이 일본과 대만에서 매입한 책 규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방송사 니혼TV는 수출입 데이터 분석 도구 사야리를 활용해 “지난해부터 주요 일본 출판사 그룹사가 50t 이상의 일본 도서를 미국으로 수출한 기록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그룹사’는 도서도매유통사 일본출판판매(닛판·日販)의 자회사 닛판IPS다. 앤트로픽이 미국 법원에 제출한 내부 회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1월 21일 기준으로 앤트로픽과 닛판은 책 공급 계약을 완료했다.
그런데 임포트키에는 더 많은 선적 자료가 등장했다.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때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8차례에 걸쳐 122.155t의 책이 닛판IPS에서 발송돼 BWB에 도착했다. 화물 인수지가 일본 도쿄인 경우만 계산한 것이다. 이 외에 판매자가 닛판IPS이고, 구매자도 BWB인데 화물 인수지와 선적지가 부산인 경우도 3개 사례가 있었는데, 이 사례들의 책 선적량은 80.799t이었다. 이 수출 건의 성격은 확인하지 못했다.
한 손님이 지난 7월 31일 대만 타이중의 한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다. EPA=연합뉴스 앤트로픽은 대만의 도서유통사 연합발행(UDC)으로부터도 책을 매입했다. 2024년 11월부터 올해까지 선적 기록을 분석해보니, 16차례에 걸쳐 563.143t의 책이 UDC에서 BWB로 수출됐다. 선적항은 대만의 타이베이, 가오슝, 지룽이었다. 지난달 4일 미국에 도착한 책 화물도 있었다. 2024년 11월 27일 기준 앤트로픽 내부 회의 자료에는 UDC에 대해 ‘4차 주문’이라는 문구가 등장하고, 계약과 관련해 ‘내부 승인을 받고 있음’이라는 문구가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문구는 ‘중국 본토에서 오는 간체자 중국어 도서’라는 부분이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중국에서 직접 책 수입이 어렵자 대만으로 우회해 중국 책을 수입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대만은 번체를 쓰고, 중국 본토는 간체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