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빚 갚으려 내수 웃도는 물건 헐값에 해외펀매
무역흑자 1조달러 규모로 확대…유럽 반발에도 中은 기조 안바꿀 듯
중국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 참삭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기술·군사 초강대국으로 키우기 위해 수조 달러를 쏟아붓는 사이 중국의 부채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이 부채가 세계 경제에까지 부담을 주는 악순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많은 나라에서 부채 부담이 커지며 투자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중국만큼 증가세가 가파른 곳은 드물다.
지난해 중국의 비금융부문 신용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00%를 넘어섰다. 비금융부문 신용은 기업과 정부, 가계의 차입금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부채 지표다. 이는 2019년 말보다 60%포인트(p) 높아진 수준으로, 현재 미국을 크게 웃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말 이후 중국의 비금융부문 신용 규모는 43조달러(약 5경7400조원)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이렇게 끌어온 자금의 상당 부분이 낭비됐다는 점이다.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공장과 아파트를 짓는 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면서 기업과 지방정부의 빚이 불어났다.
그럼에도 중국이 당장 금융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판단이다. 늘어난 부채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투자자가 아닌 국내 저축이 떠받치고 있어서다. 외국인 투자자는 위험이 커지면 투자금을 재빨리 빼낼 수 있지만, 중국의 부채 구조는 이런 자금 유출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의 부채 급증은 점차 전 세계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막대한 빚을 상환해야 하는 중국 기업들은 내수를 훨씬 웃도는 자동차와 태양광 패널, 전자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남아도는 물량은 헐값에 해외 시장으로 쏟아져 나가고 있고, 그 결과 중국의 무역흑자는 1조달러(약 1338조4000억원) 규모로 불어났다.
중국산 전기차 등 수출품이 대거 밀려들면서 유럽의 반발이 거세지는 등 각국과의 무역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기존 정책 기조를 바꿀 뜻이 없어 보인다고 WSJ은 전했다.
적자 기업들이 떠안은 막대한 부채도 중국이 직면한 과제다.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이들 기업이 보유한 부채의 상당 부분은 상환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기업에 대한 신규 대출을 줄이자니 중국 국유은행들이 막대한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로디움그룹의 카미유 불누아 부국장은 “이 시스템을 바꾸려면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중국 정부는 아직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상황이 서서히 악화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점진적으로 쇠퇴하고, 경제성장을 창출하는 효율성도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가 부채 문제 해결을 뒷전으로 미루는 동안 시 주석은 신기술과 군사력 등 전략적 우선순위에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당국자들은 지금이 미국과 맞먹는 강대국으로서 위사을 굳힐 기회라며, 인공지능(AI)과 우주기술, 에너지 등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수라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부채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몇 년간 중국 중앙정부 부채는 GDP의 약 30%에 불과해 미국 연방정부보다 낮다는 것이다.
중국 동부 장쑤성 하이완에 위치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에버그란데의 주택 단지 [AFP]그러나 중국 부채의 대부분은 지방정부 몫이다. 지방정부와 연계된 자금조달기관들은 경제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고 지역 일자리를 지킬 만큼 사업을 벌이기 위해 차입을 늘렸고,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수조 달러의 새 빚을 쌓았다. 이들 기관 상당수가 지역 부동산 개발에 발을 담갔다가 수년째 이어지는 부동산 침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공식 지방정부 차입금에 지방정부융자기구(LGFV) 부채까지 합친 중국의 광의의 정부부채가 지난해 GDP의 127%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2020년 98%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기업부채도 늘었다. 수익성 높은 투자 프로젝트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기업들은 계속 빚을 늘렸다.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했다. 저렴한 차입 비용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로디움그룹이 인용한 중국 중앙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신규 기업대출의 절반 넘게가 은행의 최우량 기업 고객에게 적용되는 대출우대금리(LPR) 이하로 이뤄졌다. 불과 몇 년 전보다 훨씬 높아진 비중이다. 지난해 중국 상장 제조업체의 대출금리 중간값은 약 2.4%에 그쳤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부채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중국 정부가 가계 소비를 늘리는 정책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GDP 대비 가계소비 비중은 40%로, 70%에 육박하는 미국보다 크게 낮았다.
올해 2분기 GDP는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에 그쳐 3년여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성장의 상당 부분은 수출이 이끌었다.
중국 당국이 현재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가운데,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중국연구소(MERICS)의 야코프 군터 경제·산업 프로그램 책임자는 “현재 중국 경제 시스템이 일정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며 “지방정부들은 적자를 내는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이 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가 거둘 수 있는 이익 관련 세수 역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