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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사람을 봤다"… 차석용의 '매직'

요약
  •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이 경영 철학을 담은 회고록 '하심'을 출간했다.
  • 그는 숫자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리더십과 겸손의 자세를 강조하며, 경영은 결국 인간의 두려움과 희망을 다루는 일임을 밝혔다.
차석용 前 LG생건 부회장
상사에 'NO'하는 구성원이
위험서 조직 지켜주는 인재
회고록 '하심'에 성찰 담아
시와 소설로 인간 이해 배워
높이 오를수록 밑바닥 생각




2005년 지휘봉을 잡았다. 그 후 18년간 '7연임'을 이뤘다. 2022년 후진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용퇴를 결단하지 않았다면 20년을 훌쩍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단지 '긴 시간'이 아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중국의 사드 보복,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1조원대였던 LG생활건강 연매출을 8조원대로 키우며 최고 실적을 수차례 갈아치운 그의 행보는 기적이나 마법에 가깝다는 평이 늘 뒤따랐다. '차석용 매직'이란 말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차석용 휴젤 명예회장(전 LG생활건강 부회장·사진)의 회고록 '하심'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됐다. 한국P&G와 해태제과 사장을 거쳐 LG생활건강을 이끌었던 그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 책이다. 대외에 얼굴을 비치는 대신 늘 정중동의 자세였던 그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무엇을 이루었다'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 빚을 헤아리고자 책을 썼다"고 했다.

왜 책 제목을 '하심'으로 정했을까. 우선 '아집과 교만을 내려놓는 태도'를 뜻하는 불교 용어로서의 하심(下心)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직과 시장은 언제나 경영자의 생각보다 크고 복잡하다. 성공을 하고 있을 때도 위기와 밑바닥을 생각해 미래를 대비한다는 뜻을 담았다. 겸손은 자신을 작게 만드는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숫자'보다 '사람'을 앞에 뒀던 그의 시선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P&G 시절 뉴욕 공장에 방문했을 때 노동자들이 향수 분사 장치 5개 중 하나를 구부려 원가를 낮추는 모습을 본 기억이 책 첫 부분에 놓였다. 원가를 절감해 공장 폐쇄를 막으려던 노동자들의 계산이었다. 품질 기준에서 보면 용납이 불가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서 '실직의 공포'를 봤다. 고민 끝에 그는 노동자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불안까지도 감안한 대안을 제시했다.

P&G를 거쳐 해태제과 사장으로 일하던 때 그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만난다. 대화 도중에 구 회장은 그에게 직을 제안했다. 그는 직위나 연봉을 묻지도 않고 LG행을 결정한다. "어떤 직책을 맡고 얼마의 보상을 받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가치를 공유하며 일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게 '차석용 매직'의 시작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가 사용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중국 최상위 고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던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더 히스토리 오브 후'에 관한 비화도 눈길을 끈다.

"브랜드는 회사가 자신에 관해 하는 말이 아니라, 고객이 제품을 사용한 뒤 마음속에 남기는 기억이다. 신뢰는 제품의 진실성과 일관된 경험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다. '100명의 칭찬보다 한 명의 부작용 경험이 더 무섭다'고 책에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에 담긴 그의 문장은 담백하다. '개미의 원형 선회'에 관한 책 속의 문장이 특히 그렇다. 원 모양으로 제자리를 도는 개미 떼의 모습에서 그는 그릇된 경영의 단면을 포착한다. '앞선 개미를 따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 그렇다. 리더는 반문을 들을 귀부터 열어둬야 한다.

"리더에게 '틀렸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구성원은 조직을 위험에서 지켜주는 사람이다. 리더의 역할은 늘 옳은 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조직이 잘못된 결정을 스스로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동의는 충성이 아니며, 생각 없는 추종은 협력이 아니다."

그의 회고록에는 뜻밖에도 박목월, 장석주, 나희덕, 김훈의 문장이 스며든다. 그 덕분에 책은 성공한 경영자의 회고록이 아닌 한 사람의 성찰록으로 읽히는 지점이 있다.

"재무제표에는 성과가 기록되지만 그 성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외로움이나 간절함까지 기록되진 않는다. 시와 소설, 영화는 내가 숫자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도록 붙잡아주었다. 경영은 숫자를 다루는 일이지만 결국 사람의 두려움과 희망, 자존심과 상처를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은 경영의 장식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훈련이기도 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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