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측정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계절이다. 기온이 1도 내려갈 때마다 수축기 혈압은 약 1.3mmHg 오른다. 질병관리청이 2021년 건강정보로 정리한 수치다. 문제는 하루 중 혈압이 가장 가파르게 뛰는 시간이 잠에서 깬 직후라는 점이다. 찬 공기와 기상 직후 혈압 급등이 겹치는 가을 아침, 뇌졸중과 심근경색의 뇌관이 당겨진다.
◆ 눈 뜨고 두 시간, 혈압이 20 뛴다
잠에서 깨면 몸은 활동을 준비하느라 교감신경을 켠다. 미국심장협회(AHA) 학술지에 2023년 실린 연구는 기상 후 2시간 동안 수축기 혈압이 20mmHg 이상 급등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른바 '모닝 서지(아침 혈압 급상승)'다.
대한고혈압학회가 2023년 낸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 보고서도 뇌졸중·심근경색 같은 중증 질환 상당수가 기상 후 3시간 안에 몰린다고 짚었다. 아침 식탁에 앉기도 전에 가장 위험한 시간이 지나간다.
학회가 올해 5월 개정한 제6판 고혈압 진료지침은 이 급등폭이 큰 사람을 따로 들여다봤다. 밤사이 최저치보다 아침 혈압이 가장 많이 치솟는 상위 10%는 심혈관 위험이 30% 높았다.
여기에 찬바람이 더해지면 혈관은 한 번 더 조여진다. 대한뇌졸중학회가 2024년 분석한 자료에서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면 고령층의 허혈성 뇌졸중 위험은 약 30% 늘었다. 요즘처럼 낮과 밤의 온도가 벌어지는 때가 딱 그 구간이다.
◆ 진료실선 정상, 집에선 160
병원에서 잰 혈압이 정상이라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평소 진료실 혈압은 125/80으로 정상이던 사람이 환절기 아침 두통으로 집에서 재 보니 160/100까지 올라간 사례를 학회는 환자 교육자료에 실었다. 낮에는 정상, 아침에만 치솟는 '가면고혈압'이다.
학회가 2021년 가정혈압 등록사업 보고서에서 집계한 가면고혈압은 고혈압 환자 다섯 명 중 한 명꼴이었다. 학회 진료지침위원회는 낮 진료실 혈압만 믿으면 이런 환자의 심혈관 합병증을 방치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아침 혈압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일본 지치의과대학이 2015년 유럽고혈압학회에서 발표한 추적 연구가 보여 준다. 아침 수축기 혈압이 155mmHg를 넘는 사람은 135 미만인 사람보다 뇌졸중 위험이 4.13배 높았다. 조금 높은 구간에서도 위험은 두 배를 넘었다.
◆ 집에서는 135/85부터 고혈압
그래서 가정혈압은 기준부터 다르다. 진료실에서 잰 혈압은 140/90이 고혈압 기준이지만, 집에서 잰 혈압은 수축기 135 또는 이완기 85부터 고혈압으로 본다. 올해 제6판 진료지침이 다시 못 박은 수치다. 병원보다 편한 환경에서 재는 만큼 기준도 낮다.
집에서 잰 혈압이 이 선을 넘으면 병원 수치가 정상이어도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전날 밤이 아니라 눈 뜬 직후의 숫자가 판독의 기준이다.
◆ 등 기대고, 팔은 심장 높이, 입은 다물고
문제는 측정 자세다. 자세가 틀리면 멀쩡한 사람도 고혈압이 된다. 학회 환자용 교육책자(2022년)를 보면 등을 기대지 않고 재면 이완기 혈압이 약 6mmHg 높게 나온다. 올해 측정 가이드라인은 커프를 감은 팔을 심장보다 아래로 늘어뜨리면 수치가 최대 10mmHg 높아진다고 정리했다.
재는 동안 움직이거나 말을 하면 오차는 더 커진다. 학회 책자는 이 경우 혈압이 10~15mmHg 더 높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대한심장학회 혈압모니터연구회는 손목형 혈압계나 잘못된 자세가 위팔 동맥 압력과 비슷한 폭의 오차를 낸다고 지적한다. 위팔형 혈압계를 쓰라는 이유다.
◆ 약 먹었다고 새벽까지 안전한 건 아니다
약을 먹는 사람도 아침은 비어 있을 수 있다. 학회 임상연구팀은 아침에만 약을 먹으면 약효 지속시간의 한계로 다음 날 새벽 모닝 서지를 누르기 어렵다고 본다. 저녁에 나눠 먹는 '시간치료'를 검토하라는 이유다.
다만 환자가 알아서 바꿀 일은 아니다. 학회 진료지침위원회는 가정혈압이 높게 나왔다고 임의로 용량을 늘리거나 복용 시간을 옮기면 저혈압 쇼크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침 수치를 기록해 의사에게 보여 주는 데서 멈춰야 한다.
◆ 동네의원 등록하면 본인부담 20%… 내년 1월이 고비
이 기록을 받아 줄 제도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본사업으로 전환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에 등록하면 외래 본인부담률이 30%에서 20%로 내려간다. 혈압 관리 목표를 실천한 환자는 건강생활실천지원금을 연간 최대 8만 원까지 받는다.
지자체가 따로 운영해 온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센터도 바뀐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30일 전국 19개 지자체의 센터를 만성질환 통합관리센터로 개편해 전국으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사업은 전국 시·군·구의 한 자릿수 비율에서만 돌아갔고, 시범지역 고혈압 환자 가운데 등록 관리를 받는 비율은 6.6%에 그쳤다.
개편안은 내년 1월 시행된다. 쟁점은 혜택의 형태다. 이 개편안을 보면 기존 사업은 65세 이상 환자의 진료비를 연간 최대 4만2천 원까지 정액으로 깎아 줬는데, 이를 없애고 앱 기반 실천포인트로 옮기면 스마트폰이 서툰 고령층의 혜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와 의료계에서 나왔다. 학회가 2025년 기준으로 집계한 65세 이상 고혈압 환자는 609만 명이다. 이들이 새 제도로 무사히 옮겨 탈 수 있을지가 다음 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