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서른여섯 살 남성이 대사이상 지방간(MASLD·대사이상지방간질환) 진단을 받고 한 대학 한방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23주 동안 생활습관 개선과 통합 치료를 병행했다. 치료가 끝났을 때 이 환자의 당화혈색소와 복부 내장지방은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이 병원이 보고한 임상 사례다. 간 때문에 시작한 치료의 성적표가 혈당과 뱃살로 매겨진 셈이다.
◆ 술이 아니라 '대사'가 기준이 됐다
이 남성이 받은 병명 자체가 새 이름이다. 대한간학회는 지난해 5월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비알코올 지방간질환'을 '대사이상지방간질환'으로 공식 전환했다.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가 아니라 어떤 대사이상을 갖고 있느냐를 앞세운 것이다.
진단 기준도 바뀌었다. 간에 지방이 쌓여 있고, 심장대사 위험인자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MASLD로 진단한다. 복부비만이나 혈압, 혈당, 지질 이상 가운데 하나만 겹치면 지방간은 더 이상 '단순 지방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대사이상과 음주가 함께 있는 환자를 따로 가려내는 혈중 생체표지자 검사는 아직 국내 임상에서 제한적이라고 학회는 밝혔다.
◆ 성인 넷 중 하나, 청년층은 더 빠르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올해 8월 내놓은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을 보면 국내 성인의 MASLD 유병률은 24.1%다. 성인 넷 가운데 하나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전 세계 성인의 유병률을 38% 안팎으로 추정한다.
속도는 젊은 층이 더 가파르다.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이 국민건강영양조사 16년치를 분석한 결과 19~44세 청년층의 연간 증가율은 중장년의 네 배였다. 대한당뇨병학회 통계에서는 20~30대 2형 당뇨병 환자 열에 여덟이 지방간을 함께 갖고 있었다.
◆ 간수치가 정상이어도 끝이 아니다
국가일반건강검진에서 간 질환을 보는 혈액검사 항목은 AST, ALT, 감마GTP 세 가지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이 안내하는 AST·ALT의 일반적인 참고 정상 범위는 0~40이다. 검진표에서 이 숫자가 범위 안에 들어오면 대부분 안심한다.
대한간학회 가이드라인 개정위원회는 여기에 제동을 건다. 간수치가 정상 범위여도 간 섬유화나 진행성 지방간염이 배제되지 않는다. 간경변증이 소리 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학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내 MASLD 환자의 26.7%는 연령을 보정한 FIB-4 지표 기준으로 유의한 간 섬유화를 갖고 있다.
검사끼리도 어긋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가 올해 1월 다국적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MASLD 환자의 30%는 혈액 FIB-4 수치와 초음파 간경직도 결과가 엇갈렸다. 이 불일치군은 합병증 위험이 네 배 높았다.
◆ 간보다 심장이 먼저 위험하다
지방간은 간만의 병이 아니다. 대한간학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방간 환자는 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이 일반인의 2.2배, 심혈관질환 위험은 1.6배다. 국립보건연구원이 한국인 환자를 조직학적으로 추적한 코호트에서는 진행성 간 섬유화를 동반할 경우 심혈관 위험이 아홉 배 넘게 뛰었다.
음주가 겹치면 더 나빠진다. 국립보건연구원이 검진 수검자 35만 명을 9년간 추적한 결과 MASLD 환자의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은 19% 높았다. 여기에 중등도 음주가 겹치면 위험은 28%까지 뛰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해 진료지침에 MASLD 관리 항목을 넣으면서 2형 당뇨병 환자의 MASLD 동반율이 65%를 넘는다고 적었다.
◆ 탈출 공식은 체중 5%부터
치료의 출발점은 체중이다. 대한간학회는 체중을 7~10% 줄이면 지방간염과 섬유화가 호전된다고 권고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올해 7월 발표한 코호트 분석을 보면 체중 5% 감량 시 간경직도 호전 가능성이 27% 높아졌다. 반대로 체중이 5% 늘면 악화 위험이 24% 커졌다.
생활습관은 묶어서 바꿀 때 효과가 컸다. 국립보건연구원 분석에서 건강한 식생활, 신체활동, 비흡연을 동시에 실천한 사람은 MASLD 위험이 32% 낮았다. 약도 등장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24년 대사이상지방간염 경구 치료제 레스메티롬을 처음 승인했고, 대한간학회는 이 약을 새 가이드라인에 수록했다. 가이드라인 개정에 참여한 이 관계자는 "첫 대사이상지방간염 치료제가 미국 승인을 받은 만큼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와 건강보험 급여 심사가 연말로 예정돼 있다.
다만 대한당뇨병학회 진료지침위원회는 한계를 짚는다. 선별 범위는 넓어졌지만 치료 전략이 엄격한 체중 감량과 식습관 교정에 쏠려 환자 순응도가 낮다는 지적이다. 23주를 버텨 당화혈색소와 내장지방을 되돌린 서른여섯 살 남성의 사례가 보고 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과거에는 음주로 인한 지방간을 주로 걱정했지만 요즘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복부비만이나 당뇨병, 고혈압 같은 대사이상이 있으면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