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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과·알·세] "전자선만 쐈을 뿐인데, 극강 악취 싹∼"…99.9% 이상 제거

요약
  •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를 활용해 축산 및 산업 현장의 악취를 99% 이상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 이 기술은 반도체 공정, 화생방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하며, 현재 연구소기업을 통해 상용화 및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르포]정읍방사선연 전자선실증연구동, 저·중·고에너지 전자가속기 3종 가동
저에너지 전자가속기, 축산·반도체·화생방 악취까지 ‘깔끔하게’
두 대 가동 악취제거 효율 높여...연구소기업 상용화, 시장 확대 나서
전북 정읍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내 전자선실증연구동. 전북 정읍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내 전자선실증연구동.

"악취 민원은 연간 4만건에 달할 정도로 많아 3대 생활 민원 중 하나입니다. 축산, 하수뿐 아니라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화생방 등 국방 분야에 이르는 악취 제거에 전자가속기의 활용도는 앞으로 점점 확대될 겁니다."

최근 전북 정읍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전자선실증연구동에서 만난 김병남 방사선융합기술연구부 박사는 전자가속기의 효용성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길쭉한 돔 형태의 이곳에는 저에너지부터 중에너지, 고에너지에 이르는 전자가속기 3대가 구축된 국내 유일의 연구시설이다.

김 박사를 따라 저에너지 전자가속기 연구시설에 들어서자 축산 농가를 지날 때 나는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느다란 투명 호스에서 나오는 악취였다. 냄새는 연구시설을 뛰쳐 나갈 정도로 점점 심해졌다.

첨단방사선연구소 전자선실증연구동에 구축된 200킬로전자볼트 저에너지 전자가속기. 첨단방사선연구소 전자선실증연구동에 구축된 200킬로전자볼트 저에너지 전자가속기.

연구진이 가로 1.4m, 세로 1.7m 크기의 연구장비 두 대를 작동시키자 코를 강하게 자극했던 악취는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지더니 아예 사라졌다.

한 대는 김 박사팀이 개발한 전자가속기였고, 다른 하나는 기술 출자를 통해 설립된 연구소기업이 상용화한 전자선가속기였다. 두 대의 전자가속기를 연결해 악취 농도 제거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날 악취는 소의 분뇨와 식품 공장의 다시마 찌꺼기, 폐수슬러지 등을 혼합한 '극강의 악취원'에서 나왔다.

짧은 시간에 지독한 악취에서 벗어나게 해 준 구세주는 첨단방사선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200keV(킬로전자볼트)급 저에너지 전자가속기와 연구소기업의 전자가속기였다.

김 박사는 "저에너지 전자가속기 2대를 연결해 연구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라면서 "생활 속 악취부터 산업용, 군사용 등 다양한 악취원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살균까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선은 전자총으로 발생시킨 전자를 높은 전압으로 아주 빠르게 가속해 나오는 방사선이다. 전자선을 물질에 조사하면 분자 구조가 변형되거나 미생물이 사멸되는 데, 이를 활용해 소재 성질을 바꾸거나 멸균·정화 등에 쓴다.

전자선을 이용한 전자가속기는 첨단 소재 개발, 산업현장 악취 저감, 문화유산 보존, 우주부품 성능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첨단 연구장비이다.

전자선실증연구동은 총 190억원(국비 130억원, 지방비 60억원)을 들여 연면적 3864㎡에 지상 2층 규모로 2018년 완공됐다.

윤진문 책임연구원이 중에너지 전자가속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진문 책임연구원이 중에너지 전자가속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준공 당시 고에너지 10MeV(메가전자볼트)와 중에너지 2.5MeV 두 대의 전자가속기가 구축됐고, 이후 200keV 저에너지 전자가속기가 추가되면서 현재의 저·중·고에너지 통합 전자선 조사 서비스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고에너지 전자가속기는 대형 제품과 우주용 부품 및 소재, 중에너지 전자가속기는 기능성 소재 및 의료기기 연구,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는 산업 악취 및 대기정화 연구에 각각 쓰이고 있다.

김 박사가 개발한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는 악취 물질의 농도를 거의 99% 이상 저감시키는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전자선 기반 축산악취저감시스템은 2022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고, 중소기업에 기술이전됐다.

최근에는 산업현장에서 많이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을 높은 효율로 제거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에어컨 수준으로 낮춘 기술을 토대로 연구소기업 설립 등 상용화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김 박사는 "고분자 필터, 플라즈마 등 기존 방식에 비해 제거 효율이 높고 운영비도 줄일 수 있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 적용하기 위한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화생방 등에도 대응할 수 있어 국방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연구소기업과 협력해 가속기를 소형화하고, 기술성숙도(TRL)를 8∼9단계로 높여 사업화에 나설 계획이다.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저·중·고에너지 전자가속기를 전고체 배터리, 우주용 소재·부품, 내방사선 반도체, 우주용 태양전지 등 첨단 분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정병엽 첨단방사선연구소장은 "첨단 소재, 의료분야, 산업현장 악취 저감, 문화유산 보존·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거둔 전자가속기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우주, 이차전지, 반도체 등 다양한 수요에 맞춘 연구와 실증에 활용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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