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부터 유학·취업비자까지 전방위 축소
중앙아시아 99%·아프리카 89% 폭락
中 31%·日 25%·韓 19% 감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이후 강도 높은 비자 제한 조처를 단행하면서 미국으로 향하는 합법 이민 문턱이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불법 입국자 단속에 이어 영주권과 유학, 취업 비자 등 합법적인 입국 경로까지 전방위로 차단하면서 전 세계에서 미국행 비자 발급이 반토막 났다. 한국인이 받은 이민 비자 역시 20% 가까이 줄었다.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주 티후아나에 위치한 샌이시드로(San Ysidro) 국제 출입국 검문소에서 사람들이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1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종합하면 미 국무부가 지난 2월 발급한 영주권용 합법 이민 비자는 2만6000건에 그쳤다. 트럼프 취임 이전인 2023~2024년 월평균 발급량(5만2000건)과 비교해 절반으로 급감한 수치다. 이민 증가를 지지하는 자유주의 성향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데이비드 비어 이민 전문가는 NYT에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제외하면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허버트 후버 행정부가 적격 이민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비자 발급을 거부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합법 이민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도입한 고강도 심사 규정은 전 세계 절반 가까운 국가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이민자가 적은 국가 출신에게 영주권을 추첨 배정하는 다양성 비자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지난 1월부터는 이란과 예멘, 수단 등 3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비자 발급과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여기에 52개국에 비자 발급 일시 중단 조처를 내리면서 총 91개국에서 미국 이민 길이 사실상 막혔다.
발급을 아예 일시 중지한 국가와 별도로 다른 61개국에서는 발급 물량이 줄었다. 그 결과 무슬림 다수 국가 출신 이민이 90% 이상 급감한 것을 비롯해 중앙아시아(-99%), 아프리카(-89%), 동유럽(-84%), 중동(-81%) 순으로 타격이 컸다.
한국인 신규 이민 비자 발급 건수도 2023~2024년 월평균 420건에서 지난 2월 340건으로 19% 감소했다. 중국(-31%)과 일본(-25%), 인도(-16%) 등 아시아 주요국도 일제히 내리막을 걸었다. 반면 제한 조처에서 비켜난 캐나다(142%)와 멕시코(17%)는 오히려 발급량이 늘어 전체 이민 비자 물량 가운데 약 30%를 차지했다.
영주권 목적이 아닌 비이민 비자 문호도 좁아졌다. 지난 2월 기준 유학생과 근로자 비자 발급은 전년 동기 대비 30% 줄었다. 단기 관광 및 상용 비자(B1/B2)도 약 25% 감소했다. 전문직 취업비자 H-1B 비자는 기존 무작위 추첨제가 폐지되고 까다로운 신규 규정과 수수료가 부과되면서 인도와 중국 등 입국 금지 대상이 아닌 국가에서도 발급량이 크게 꺾였다. 계절 농업 근로자와 교환 방문자 비자만 예년 수준을 유지했을 뿐 숙박업과 관광업 종사자용 비자도 감소세를 피하지 못했다.
수년간 합법 절차를 밟아온 이민 신청자들과 미국 내 가족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권자 대니얼 브래킨스는 NYT에 카자흐스탄 출신 아내가 합법 이민 마지막 단계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 아들이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 브래킨스는 “아내와 나는 여러 번 무너져 내렸고, 특히 영상 통화로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은 부부 관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고 했다.
미 연방 법원은 지난 8월 말 두 건에 달하는 소송에서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비자 발급 중단 조처에 제동을 걸고 발급 재개를 명령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다수 대기자들이 여전히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추방 작전과 더불어 난민 프로그램 축소, 국경 망명 신청 차단 등 행정 권한을 동원해 20세기 초 의회가 제정했던 대대적인 반이민법과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