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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증시] 폭락장 구원투수 옛말… 국민연금 방파제는 왜 무너졌나

요약
  • 올해 국민연금은 리밸런싱 유예 조치로 인해 국내 주식 매수 여력이 제한되면서 과거와 달리 증시 폭락장에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 국민연금 측은 리밸런싱 유예가 상반기 상승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2008년 연기금, 외국인 순매도 75% 받아내
올해는 7월 제외 순매도 행렬이었던 연기금
국민연금 리밸런싱 유예 조치로 매수 여력 없어

2008년 10월 ‘리먼 사태’ 당시 국민연금을 필두로 한 연기금은 폭락장에서 외국인의 매물 폭탄을 전부 받아내며 ‘증시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코스피 지수가 9000선 돌파라는 사상 초유의 대기록을 쓴 뒤 가파르게 주저앉은 올해는, 연기금이 도리어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며 시장의 방파제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증시를 덮쳤던 2008년 10월 24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10.96포인트(10.57%) 폭락한 938.75로 장을 마치며 그해 최저점을 찍었다. 약 3년 만에 코스피 1000선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하락 폭이 컸지만, 구원투수가 있었다. 그날 하루동안 외국인이 2720억원 순매도한 가운데 연기금은 3720억원 순매수에 나섰다. 외국인이 쏟아낸 매물 폭탄을 연기금이 전부 받아낸 셈이다.

리먼 사태가 본격화했던 2008년 9~10월 두 달간 연기금이 국내 증시에서 사들인 순매수액만 5조968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7조9320억원)의 무려 75%를 연기금이 홀로 받아냈다. 2008년 한 해 동안 연기금은 12개월 내내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순매수를 이어갔으며, 연간 누적 순매수액은 19조7850억원에 달했다.

반면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4309.6으로 출발한 코스피 지수는 올해 상반기 최고점인 9114.55까지 오르며 무려 4084.92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7월부터 하락장이 찾아오며 이날까지 상승 폭 3346.54포인트를 그대로 반납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지난 4개월 동안 연기금은 방파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7월부터 지난 16일까지 연기금은 국내 증시에서 4260억원을 순매도했다.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연기금이 순매수 우위를 보인 달은 7월 한 달(7430억원)뿐이었는데, 이마저도 같은 달 외국인이 쏟아낸 매물 폭탄(9조8140억원)의 7.6% 수준에 그쳤다. 올해 연기금의 누적 순매도액은 9조2830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이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 조치를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하면서, 시장에서 국내 주식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는 ‘손발이 묶인’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통상 국민연금 수급은 증시 급락 시 일시적인 하방 완충 역할을 해왔다. 국민연금은 정해진 자산 비중을 맞추기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자산배분 리밸런싱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증시가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들이는 시스템적 저가 매수가 가능했다.

리밸런싱 유예로 국내 주식의 매도 속도를 조절하는 사이, 포트폴리오 내 국내 주식 비중이 줄어들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증시 폭락 이후에도 저가 매수에 나설 실탄 여력이 제한됐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리밸런싱을 유예하면서 국민연금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 국내주식 비중이 너무 높아졌다”라면서 “그렇다 보니 매수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고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매도 구간일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향후 증시 반등을 견인할 새로운 매수 주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수의 반등을 지속시킬 매수 주체가 필요하다”면서 “7월 급락장의 손실을 소화하느라 개인의 여력이 소진된 데다, 연기금 역시 자산배분과 리밸런싱 제약에 묶여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연금 측은 상반기 상승장에서 리밸런싱을 유예하지 않았다면 증시에 더 큰 충격을 줬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리밸런싱을 유예하지 않았다면 하루 약 8000억원을 매도해야 했을 것”이라며 “전체 코스피 거래대금의 10% 이상을 던져야 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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