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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 미국 기록 어디에도 없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요약
  •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대한민국은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한다"고 발언해 한국의 영토주권을 축소시킨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 이는 기존의 38선이나 군사분계선 등 미국의 공식 기록과도 다른 발언으로, 전작권 반환이나 주한미군 활동 범위 확대와 관련된 우회적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한국 영토주권 축소 발언 논란... 한미 관계 갈등 새 불씨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의 발언이 파장을 낳았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미국 시각으로 지난 14일 골드국제전략연구소가 워싱턴DC에서 주최한 제2회 연례 인도태평양 서밋에서 "군사분계선에서 북쪽과 남쪽으로 각각 2천 5백 미터 지점에 철책선이 있다. 유엔군사령부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한다"라며 "정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그 구역을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발언했다.

이해하기 힘든 발언

▲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미 싱크탱크 '골드 국제전략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10.15
ⓒ 연합뉴스

브런슨 사령관이 언급한 남쪽 철책선 이북의 비무장지대에 대한 경계 업무는 한국군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 홈페이지의 '유엔군사령부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코너는 일명 JSA 경비대대인 이 부대가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를 경비할 책임"을 지고 있다면서 "비무장지대(DMZ)에 완전히 배치된 유일한 유엔군사령부 단위"라고 설명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배치된 JSA 대대가 '비무장지대에 완전히 배치된 유일한 유엔군 부대'라고 했다. 이런 유엔군 부대가 비무장지대 전체가 아닌 JSA에만 유일하게 있다는 것은 유엔군 단독으로 군사분계선을 방위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유엔사 자신의 설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2500미터 구역 역시 한국군 없이는 지킬 수 없다.

유엔사가 그 2500미터 구간에서 출입통제나 정전협정 감시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는 하지만, 유엔사가 그곳에서 영토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 2500미터 이남에서부터 대한민국이 시작한다고 발언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브런슨은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에 대해 우월적 권한을 갖고 있음을 인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최근의 불편한 한미관계를 보면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대한민국 영토를 축소시키는 듯한 그의 발언은 전작권 반환(이른바 '전환') 및 환수 등과 관련해 갈등을 빚는 한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 '대한민국은 군사분계선이 아닌 그 이남에서 시작한다'는 발언을 통해 북한과의 갈등을 축소하고 중국 견제에 좀더 치중하며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넓히려는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의도든 그의 발언은 선을 넘었다. 대한민국의 영토주권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해석하기에는, "대한민국은 남쪽 철책선에서 시작한다"라는 대목이 너무도 강렬하다. 한국을 지키겠다며 들어온 미군 사령관이 한국 영토를 축소시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엉뚱하고 황당하다.

제이비어 브런슨은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던지는 인물은 아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멋있고 짧은 말을 정제해서 전달하는 모습이 그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미군이 운영하는 디지털 시각정보 배포 사이트인 <dvids>에 실린 2022년 2월 16일자 인터뷰 기사에서 브런슨은 이런 말들을 했다.

"나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기를 원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안주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을 볼 필요가 있고, 나는 잘 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육군이 계속해서 전진하는 한,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성공에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무심코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서는 듣기 힘든 정제된 표현들이다. 이처럼 언어 표현을 신중히 선택하는 사람이 동맹국의 영토를 축소시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한국 경계선에 대한 기존 미국의 입장

그동안 미국 당국자들의 발언에서 시사된 대한민국의 실질적 북쪽 경계선은 크게 셋이다. 그중 하나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미국 시각)에 발표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문에 시사됐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운영하는 <해리 트루먼 도서관·박물관> 홈페이지에 실린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문은 "합중국 정부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가 침략군을 북위 38도선 북쪽으로 철수시키기 위해 행동한 속도와 단호함에 만족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뒤, 북한군이 38선을 넘은 것을 "불법적 행동"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경계선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38선을 넘은 것을 불법으로 규정함으로써 한국의 북쪽 경계선이 어디인지를 시사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미국은 한국의 실질적 북쪽 경계선을 지금의 군사분계선으로 간주했다. 이는 미국이 언급한 또 다른 경계선이다. 그러나 휴전선은 미국이 생각하는 항구적이고 확정적인 경계선은 아니었다.

이는 1953년 11월 20일 작성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대한 사무국장(레이)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외교문서집 1952~1954: 한국 제15권 제2부>에 수록된 이 문서의 첫 대목은 "한반도에 관한 장기적 목표는 자족적인 경제와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대의제 정부를 갖춘 통일 한국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문서는 그같은 장기 목표를 제시하는 한편, 한국 정부가 휴전협정을 준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반도 통일이 미국의 장기 목표라는 언급은 압록강·두만강을 한국의 북쪽 경계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구상에 포함됐음을 시사한다. 이 단계가 실현되기 전까지 일단은 휴전선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 이 시기 미국의 입장이었다.

대한민국 땅을 지켜야 할 사람이

이처럼 그동안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북쪽와 관련해 38선과 군사분계선을 거론하는 한편,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를 통해 압록강·두만강 라인이 미래의 한국 국경이 될 여지를 남겨뒀다. 그런데 이번에 브런슨 사령관이 언급한 라인은 그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가 말한 한국의 출발점은 38선이나 압록강·두만강이 아님은 물론이고 군사분계선도 아니다. 그는 군사분계선 이남 2500미터에서 한국이 시작한다고 말했다.

브런슨은 주북미군사령관이 아닌 주한미군사령관이다. 그는 꼭 북한과 대결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땅을 지켜야 할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대한민국 영토주권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 그가 한국 방위에 관한 책임을 올바로 수행하고 있다면 결코 나오기 힘들었을 발언이다.

최근 한·미 간에 갈등이 많기는 했지만, 브런슨의 이번 발언은 한국인들이 예상치 못했던 데서 갈등의 소지를 이끌어냈다. 남북이나 북미가 아닌 한미 사이에서 한국의 북쪽 경계선에 관한 갈등의 소지가 생기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상당부분은 환상으로 가득했던 한미관계에 대한 과거의 인상을 지울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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