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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연구자 “한국 내 산업안전 문제 심각해졌다” [한국이 빌려 쓴 청춘]

요약
  • 네팔 연구자 지반 바니아는 한국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입국했던 네팔 노동자들이 귀국 후 본국 노동시장에 안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 이들은 한국에서 습득한 기술의 현지 적용 한계와 자본 부족으로 인해 취업과 창업 모두에서 위축된 상태다.
지반 바니아 박사는 네팔에서는 드물게, 한국에 다녀온 네팔 귀환노동자에게 주목했다. 그는 네팔 귀환노동자 다수가 본국 노동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한국에는 구인난을 겪는 일터가 많다. 주로 임금이 낮거나 업무가 고된 곳이다. 한국 정부는 이 자리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을 불렀다. 그것도 만 18세에서 39세 사이 청년만. 이들에게는 ‘비전문취업(E-9)’ 자격이 주어졌다.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EPS) 이야기다. 외국의 청년 5만~10만명이 매년 E-9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다. 이들은 내국인이 일하기 꺼리는 곳에서, 한국 사회의 ‘밑바탕 노동’을 지탱해왔다.

한국인들에게 E-9 이주노동자는 한국을 스쳐 지나가는 존재다. 고용허가제의 본질이 ‘단기 순환’이기 때문이다. E-9 비자 소지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기본 3년, 재계약 시 최장 4년 10개월이다. 이 제도로 최대 두 번 입국할 수 있어 길어도 약 10년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딱 한국에 체류할 때까지다. 한국 정부와 언론 모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들의 ‘다음 이야기’는 주목하지 않았다.

〈시사IN〉은 지난 9월 네팔·캄보디아·베트남을 찾아갔다. 3개 나라는 지난해 EPS 입국 규모 1~3위 국가다. 직접 방문한 그곳에서 한국이 빌려 쓴 청춘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의 노동은 고향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에게 흔적을 남겼다. 그들이 본국에서 살아가는 삶은 이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 이번 호 네팔·캄보디아에 이어 다음 호에 베트남 기사가 실립니다.



지반 바니아 박사(46)는 네팔 사회과학연구소 바하(Social Science Baha) 소속 연구자다. 노동과 이주 분야 전문가인 그는 네팔에서는 드물게, 한국에 다녀온 네팔 귀환노동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바니아 박사가 총괄한 프로젝트 중 하나가 ‘2024년 네팔 귀환노동자 실태조사’다. 2024년 네팔 노동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한국산업인력공단이 2018~2022년 네팔에 돌아온 고용허가제(EPS) 귀환노동자 144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바니아 박사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귀환노동자들의 한국 내 경험과 귀환 후 창업·고용 현황을 분석했다. 그는 네팔 귀환노동자 다수가 본국 노동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9월1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바니아 박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9월1일 네팔 사회과학연구소 바하 소속 지반 바니아 박사가 &lt;시사IN&gt; 카메라 앞에 섰다. &#169;시사IN 이명익 9월1일 네팔 사회과학연구소 바하 소속 지반 바니아 박사가 <시사IN> 카메라 앞에 섰다. ©시사IN 이명익

네팔 청년들이 왜 한국으로 가나?

우선 말레이시아나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등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받는 임금이 높다. 한국으로 가는 데 드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다(민간 중개업소를 통해 이주하는 다른 국가와 달리 EPS 제도는 국가 간 계약을 거친다. 아눕 다칼 네팔 EPS 부서장은 항공료와 보험료 등으로 약 1100달러(약 150만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 공식적인 비용 외에 또 다른 비용이 들고 있었다. 우리는 이걸 ‘보이지 않는 비용(unseen costs)’이라고 정의했다.

‘보이지 않는 비용’은 무엇인가?

한국어능력시험(EPS-TOPIK) 준비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보통 한국어학원에 다니며 6개월에서 1년, 길게는 2년까지 공부한다. 한국어학원은 카트만두나 몇몇 주요 도시에 집중된 반면 지원자 90% 이상이 카트만두 바깥 출신이라 방세, 교통비 등 체류비도 필요했다. 한국어시험을 준비하려고 본국의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기회비용이다. 이주에 실패할 때 받는 사회적 낙인도 문제다. 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실패했다’고 손가락질받는다. 그런데 2020년 (한국) 일자리 1만50개에 9만2356명이 몰렸다. 대다수가 탈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탈락한 이들은 몇 번이고 시험을 보며 재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네팔 귀환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국한 43%가 무직 상태였다.

귀환노동자들에게 네팔 현지 취업시장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재취업자 평균수입은 3만 네팔 루피(약 26만원) 정도였다. EPS로 한국에서 체류한 기간에 따라 구분해서도 봐야 한다. 한국에서 4년 10개월 일한 뒤 돌아온 집단은 귀국 후에도 딱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 번 더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재이주를 원한다. 반면 9년 이상 한국에서 일한 집단은 상대적으로 어떤 경제활동이든 참여하는 편이다. 한국어 실력을 갖춘 귀환노동자들은 한국어학원 등 교육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결론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며 비교적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부만 경제활동에 적극적이다. 귀환노동자 대다수가 노동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취업과 창업 모두 위축되어 있다.

구직에 소극적인 이유는 왜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국에서 기술을 배워 오더라도 네팔에서는 그와 유사한 기회를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공장에서 특정 기계를 다루며 숙련도를 쌓았다고 해도, 네팔은 한국과 생산시스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기계나 설비가 없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왔다는 걸 증명할 자격증이나 기술 인증서가 없다. 한국에서 일한 시간이 (네팔 노동시장에서는) 고스란히 공백이 되는 셈이다. 귀환노동자가 자신이 가진 경력과 기술을 증명할 수 있다면 노동시장에서 더 많은 시도를 할 것이다.

귀환노동자 대다수가 사업가를 꿈꿨다.

네팔 정부의 귀환노동자 재정착 지원 정책도 창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귀환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번 돈이 있으니 사업을 지원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사업가가 될 수는 없다. 사업을 시작하려면 충분한 지식과 자원이 필요하고 비즈니스 생태계도 갖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귀환노동자 대다수가 사업을 할 만한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벌어온 돈을 일차적으로 토지와 주택 구입에 사용한다. 귀국했을 때 부동산 자산은 갖고 있지만 사업을 시작할 만한 현금자산은 부족하다.

네팔 카트만두 바그바자르의 한 서점. 한국어 교재가 놓여 있다. &#169;시사IN 이명익 네팔 카트만두 바그바자르의 한 서점. 한국어 교재가 놓여 있다. ©시사IN 이명익

한국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노동 이주 정책은 단순히 인력을 데려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이주노동자와 예비 인력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코이카는 네팔 현지에서 K-HaMi(네팔 귀환근로자의 안정적 재정착을 위한 단계별 지원체계 강화사업)와 한국-네팔 직업훈련원(Korea Nepal Polytechnic Institute) 등을 통해 예비 인력을 훈련시키고, 귀환노동자의 재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귀환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축적한 기술을 네팔 노동시장에서도 활용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2024년 네팔 귀환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18%가 산업재해를 겪었다.

현재 2차 실태조사가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2차 실태조사에서 이 수치가 증가했다. 한국 내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안전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는 의미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네팔 현지에서도 출국 전 산업안전 교육을 진행하지만 한계가 있다. 중요한 건 실제 한국에서 일할 작업장이 안전해야 하고, 노동자가 기계를 안전하게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걸 네팔에서 미리 가르치는 건 불가능하다. 네팔에는 그런 공장 인프라나 기술·장비가 없다. 따라서 실질적인 산업안전 교육은 한국 현지 작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프면 네팔에 있는 부양가족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한국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의 안전문제에 의무를 다하도록 한국 정부가 사업주에게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

다쳐 돌아온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건강이 악화하거나 부상을 입고 귀국한 이들이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이들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왔기 때문에 귀국 후에도 가족을 돌봐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동시에 장기적인 치료와 돌봄이 필요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린다. 네팔 정부와 한국 정부 모두 이 집단을 어떻게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재정착 사업 안에 이러한 부분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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