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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3600㎞ 날아 속헹 씨 유족에게 도착한 한국 정부의 사과

요약
  • 2020년 한국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눈 속헹 씨의 유족에게 고용노동부 장관의 사과 서한이 전달되었습니다.
  • 이는 대법원이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에 대한 국가의 관리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이나, 행정 절차와 예산 부족으로 인해 배상금 지급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눈 속헹 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을 두고 대법원은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을 관리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판단했다. 〈시사IN〉은 지난 9월 캄보디아에서 유족을 만나 사고 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0년 12월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눈 속헹 씨의 유족에게 사과 서한을 보냈다. 9월14일 눈 속헹 씨의 언니 눈 속하 씨가 서한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사IN 지난 2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0년 12월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눈 속헹 씨의 유족에게 사과 서한을 보냈다. 9월14일 눈 속헹 씨의 언니 눈 속하 씨가 서한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월 고 눈 속헹 씨 유족에게 보낸 사과 서한이 유족 손에 전달됐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인 눈 속헹 씨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일하다 귀국을 겨우 20여 일 앞둔 2020년 12월20일 경기도 포천시 한 농장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한겨울 날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눈 속헹 씨 사연은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불씨가 됐다. 이번 김 장관의 사과 서한은 1월29일 대법원이 속헹 씨 유족에 배상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판결한 뒤 나온 후속 조처다. 사법부가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에 대한 국가의 관리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시사IN〉은 9월14일 캄보디아 최남단인 타케오주 키리봉에서 속헹 씨의 유족을 만났다. 속헹 씨 넷째 언니 눈 속하 씨(39)는 취재진에게 사과 서한을 꺼내 보였다. 서한에는 “노동환경에 취약한 점이 없는지, 체류자격에 따른 보호의 사각지대가 없는지 다시 살피겠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더 촘촘하게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재설계할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9월14일 만난 눈 속헹 씨의 유족. 부모는 집 근처 과수원에서 과일을 재배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9월14일 만난 눈 속헹 씨의 유족. 부모는 집 근처 과수원에서 과일을 재배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장관의 사과 서한은 유족에게 도착했지만, 배상금은 1월 대법원 판결 후 아홉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미지급 상태다. 배상금 이체가 늦어진 데는 수령자가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국가배상금은 원고가 직접 받거나 법률대리인을 통해 지급받을 수 있는데,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족은 배상금을 직접 수령할 수 없다. 산재 유족보상금은 외국 계좌로도 받을 수 있지만 국가배상금은 국내 은행 계좌로만 입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법률대리인을 통해 대리 수령한다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속헹 씨 유족은 국내에 주소지가 없고 외국인 등록도 되어 있지 않아 인감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없었다. 이를 대신해 외국 서류의 유효성을 확인받는 ‘영사증명’ 절차를 밟았지만,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위임의 진위 여부를 수차례 확인하며 과정이 또 한 번 늘어졌다. 결국 9월이 지나서야 영사증명이 발급됐다.

어렵사리 행정 처리를 마쳤지만 지금은 법무부의 예산이 부족해 지급이 늦춰지고 있다. 유족 법률 대리를 맡은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10월19일 〈시사IN〉에 “현재 예산 부족으로 판결금 지급이 지연되고 있다. 속헹 씨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눈 속헹 씨의 부모가 생활하는 주택의 모습. ©시사IN 박미소 눈 속헹 씨의 부모가 생활하는 주택의 모습. ©시사IN 박미소

막내딸이 남기고 떠난 것



이주노동자 거주 환경의 현실을 세상에 드러낸 ‘눈 속헹’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유족들은 속헹 씨가 가족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속헹 씨가 한국에 가겠다고 말을 꺼낸 건 약 11년 전이다. 당시 속헹 씨는 고향을 떠나 프놈펜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머니 난 님 씨는 “속헹이 한국은 선진국이고, 본인이 한국에 가면 가족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돈을 벌어서 집을 지어주겠다며 가족을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2016년 캄보디아를 떠나 2020년 한국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속헹 씨가 고향으로 돌아온 건 딱 한 차례뿐이었다. 그 당시 속헹 씨는 어린 조카 지와 양을 위해 커다란 곰 인형을 사왔다가 “왜 큰돈 들여서 인형을 사오냐”라고 가족들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조카는 속헹 씨가 사온 제 몸집만 한 곰 인형을 매우 아꼈다. 그 인형은 이제 소중한 유품이 됐다. 난 님 씨는 생전 딸이 춥다고 털어놓은 이야기를 여전히 곱씹는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했지만, 속헹은 ‘한국에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IN 박미소 ©시사IN 박미소

속헹 씨는 생전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되고 싶다던 바람을 대부분 이뤘다. 고향에 있는 가족은 속헹이 한국에서 보낸 돈을 모아 허름한 오두막집을 허물고, 그 공터에 다시 방 1칸짜리 현대식 단층 주택을 올렸다.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아담한 집이 완성됐다. 가족은 집 벽면에 속헹 씨 사진을 걸어뒀다.

그러나 속헹 씨의 소원대로 번듯하게 올린 집에, 정작 부모님은 살지 않는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떨어진 낡은 주택에서 따로 지내고 있다. 눈 속하 씨는 “부모님은 동생의 죽음과 바꾼 돈으로 지은 집에서는 차마 살 수 없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아버지 눈 이엠 씨는 다시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오토바이는 흙길을 따라 우거진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시사IN 박미소 ©시사IN 박미소

※ 〈시사IN〉은 지난 9월 네팔·베트남·캄보디아를 찾았다. 지난해 고용허가제 입국 인원이 가장 많았던 상위 3개국이다. 세 나라에서 한국에서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 그리고 한국 땅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을 현지에서 만났다. 고용허가제 제도 아래 한국을 거쳐 간 이들의 기록은 〈시사IN〉 제996호부터 연속 게재되고 있다. 고 눈 속헹 씨와 유족의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발간되는 〈시사IN〉 제998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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