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는 승계 호재·소액주주는 ‘투자금 벼랑’…상폐 퇴출 역설
주식병합·감자 증가…퇴출 정책 실효성 재점검 목소리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명분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시가총액 하위 기업 퇴출 기준 강화 정책이 오히려 자본시장을 혼란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기업을 솎아내 주식시장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정책 취지와 달리 기계적 상장폐지가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관계를 왜곡하고 투자자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거래소가 상장 유지 기준을 올려 잡으면서 소액주주들은 기업이 주가를 부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가총액 180억원인 코스닥 시장 상장기업이 높아진 기준(시총 200억원)을 맞추려면 주가가 약 11% 이상 올라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상폐가 낫다”…대주주 외면하면 개미만 눈물
문제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고 자금 조달 필요성이 낮은 중소 상장사의 경우 상장 유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주가가 하락해 시가총액 미달로 상폐 수순을 밟게 되면 기업의 영업 기반과 순자산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상장사 타이틀만 사라지게 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런 회사가 상장폐지로 주가가 하락하면 최대주주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승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어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대주주가 상장사의 지분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면 시세에 따라 상속·증여세를 내야 하지만 비상장사는 이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지분을 넘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고정 비용이 사라지고 공시 의무 등 외부 감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진다. 이른바 알짜 비상장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클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시가총액 기준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되면 대개 주가가 하락하고 상장폐지 결정 뒤 정리매매에 들어가면 주가는 더 떨어진다. 소액투자자들이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을 던지는 사이 대주주나 최대주주 측 특수관계인은 적은 자금으로 지분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안정적인 자산을 축적하고 양호한 영업 기반을 갖춘 기업임에도 시가총액 미달 기준으로 상장폐지될 경우 소액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코넥스’ 이전 상장으로 보완? 사실상 휴면 시장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코넥스 이전상장’ 카드를 보완책으로 제시했지만 기업과 투자자들은 무늬만 보완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코넥스 시장으로 이전해도 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는 물론 주식을 거래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지난 9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단순 시가총액 미달만으로 상장 폐지될 경우 요건을 따져 코넥스로 이전 상장할 수 있도록 코넥스시장 상장규정을 보완·시행한다고 밝혔다. 흑자 기업이 단순히 시총 미달로 상장 폐지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보완책을 낸 것이다.
코넥스 시장 이전을 위해선 최근 3개년도 중 ▲2개 연도의 영업이익이 흑자거나 ▲1개 연도의 영업이익이 흑자면서 자기자본이 2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거래소는 “상폐 요건 강화로 인한 시장충격을 완화하고 코넥스 이전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여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코넥스시장은 사실상 거래가 막힌 ‘휴면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거래소 코넥스시장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7~9월 코넥스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9억4000만원 수준이었다. 올해 1분기(1~3월) 15억9000만원, 2분기(4~6월) 10억1000만원을 기록한 데 이어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코넥스 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21년으로 74억1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코스닥시장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 10월 1일 기준 코스닥시장 거래대금은 8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코넥스 시장은 코스닥 시장의 0.1%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넥스 시장은 유동성이 매우 작아 소액주주들이 주식을 매도하고 싶어도 이를 받아줄 투자자가 사실상 없는 시장”이라며 “코넥스 이전상장은 상장폐지에 따른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격리소 역할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병합·감자 등 ‘임시방편’ 성행…정책 재점검 목소리
시총 기준 미달 등으로 상폐 위기를 겪는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주식병합이나 감자를 통해 주가를 올리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안유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코스닥 상장폐지 요건 강화 이후 위험기업의 대응 현황과 평가’에서 코스닥 시장 기업들의 주식병합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안 선임연구원은 “코스닥 주식병합 결정 관련 공시 기업은 과거 연간 10여 개사 수준이었으나 올해의 경우 지난달 4일 현재 220개사로 대폭 증가했고 코스닥 감자 결정 기업은 2022년 23개사에서 올해는 지난달 4일 기준 65개사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시가총액 200억원 미달 사유가 포함된 기업은 38개사(63.3%), 주가 1000원 미만인 기업은 30개사(50.0%)로 집계됐다. 두 요건에 모두 해당하는 기업은 8개였다. 이들 60개사 가운데 27개사가 관리종목 지정 이후 유상증자나 액면병합, 감자, 자기주식 취득 등 하나 이상의 사후 대응 조치를 진행했다.
안 연구원은 “시장가격 요건에는 미달하더라도 재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기업이 일부 확인되는 만큼 실제 퇴출 기업의 특성을 점검하고 추가 기준 상향이 기업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