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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쇼핑하고 예약하는 시대…결제는 코인이 맡는다?![비트코인 A to Z]

요약
  • AI 에이전트가 쇼핑과 예약을 수행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기계 간 결제를 위한 블록체인 기반의 '머신 네이티브 경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 블랙록은 블록체인의 토큰화 구조가 AI 에이전트의 접근성과 확장성에 유리하다고 분석하며,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주요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AI 에이전트 시대가 왔다. 메타가 지난 9월 미국에 출시한 개인용 AI 에이전트 ‘뮤즈(Muse)’는 22일 만에 다운로드 500만 건을 넘겼다. 앱 분석업체 센서타워 추정으로 챗GPT는 같은 기록에 56일이 걸렸다. 스타트업 인스팅트(Instinct)도 주목받는다. 앱을 내려받지 않고 왓츠앱이나 문자메시지로 지시하면 예약과 답장을 대신 처리하는 서비스다. 아직 초대받은 사람만 쓸 수 있는데도 몇 주 사이 기업가치가 1억달러에서 25억달러로 뛰었고 9월에는 100억달러 가치로 투자 유치를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AI 서비스는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챗봇에서 코딩·법률·회계 같은 고급 화이트칼라 업무를 장시간 맡는 서비스로, 다시 사람 대신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지금의 에이전트 단계까지 왔다.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9월 23일 익스피디아, 에어비앤비, 부킹홀딩스 주가가 떨어졌다. 에이전트가 예약을 대신하면 중개 플랫폼의 지위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아마존은 9월 20일 뮤즈가 자사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이용약관 위반을 이유로 들었지만 자사 서비스가 남의 에이전트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신경전에 가깝다. 반면 이커머스 후발주자인 월마트는 뮤즈의 유통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9월 21일부터 사흘간 아마존 주가는 내렸고 월마트는 올랐다. AI 에이전트가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주가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AI 에이전트 시대에 코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이 질문을 다룬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머신 네이티브 경제: 디지털자산은 지능, 커머스, 컴퓨트를 어떻게 연결하는가’다. 본고에서는 이 보고서에서 코인과 연관된 내용을 소개하고 시사점을 정리한다.

블랙록 디지털자산 리서치팀의 출발점은 간단하다. AI는 ‘기계 네이티브 지능’이고 디지털자산은 ‘기계 네이티브 화폐’라는 것이다. 근거는 두 기술이 공유하는 ‘토큰화’라는 구조다.

LLM은 사람의 문장을 그대로 읽지 못한다. 문장을 단어나 그보다 작은 조각인 토큰으로 쪼개고 각 토큰에 숫자 ID를 붙인 뒤 이를 임베딩 벡터라는 숫자 배열로 바꿔 계산한다. 블록체인도 비슷한 일을 한다. 현금, 펀드 지분, 증권 같은 실물자산(RWA)을 표준화된 디지털 토큰으로 바꿔 원장에 기록한다. 예컨대 머니마켓펀드 지분 100달러는 자산 ID, 보내는 주소, 받는 주소, 수량, 거래 적격 여부 같은 항목으로 표현된다. 하나는 정보를, 다른 하나는 가치와 소유권을 기계가 처리할 수 있는 형식으로 옮기는 셈이다. 블랙록도 두 과정이 기술적으로는 다르다고 선을 긋지만 기능은 닮았다고 본다.

이 유사성이 중요한 이유는 에이전트의 접근성이다. 은행 전산과 증권 예탁 시스템은 기관마다 형식이 다르고 닫혀 있다. 반면 블록체인 데이터는 처음부터 기계가 읽도록 구조화돼 있다. 에이전트는 잔고와 규칙을 직접 확인하고, 승인된 거래를 실행하고, 정산이 끝났는지 검증할 수 있다. 자산 종류가 달라도 형식이 같으니 여러 자산을 엮는 복잡한 작업도 기관별 맞춤 연동 없이 처리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AI가 어떤 돈을 고르느냐다. 블랙록은 비트코인정책연구소(BPI)의 실험을 인용한다. 36개 AI 모델에 화폐 선택이 필요한 상황을 9072차례 제시했더니 일상 결제에는 스테이블코인을, 장기 가치 보존에는 비트코인을 고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스테이블코인이 거래용 화폐,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수단을 맡는 ‘AI 네이티브 화폐 구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다만 블랙록은 이것이 실제 에이전트의 행동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응답이라는 한계를 분명히 적었다. 에이전트, 일하려면 돈 내야 한다에이전트가 일을 하려면 돈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블랙록은 기존 결제망이 이 용도에 맞지 않는 이유를 네 가지로 든다. 첫째, 계정 개설과 인증에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 둘째, 가맹점 수수료 때문에 초소액 거래는 남는 것이 없다. 셋째, 정산과 확정에 시간이 걸린다. 미국 은행 간 이체망은 대부분 하루 안에 정산되고 카드는 승인은 즉시 나지만 가맹점 정산과 분쟁 확정에는 더 오래 걸린다. 넷째, 기계가 만들어내는 거래량을 감당할 확장성이 불확실하다.

API 호출, 데이터 조회, 쓴 만큼 내는 컴퓨트처럼 1센트에도 못 미치는 거래가 24시간 쏟아지는 기계 간 결제에는 블록체인 레일이 적합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표준은 빠르게 깔리고 있다. 바닥에는 에이전트를 외부 데이터·도구와 연결하는 앤트로픽의 MCP(2024년 11월)와 에이전트끼리 소통하게 하는 구글의 A2A(2025년 4월)가 있다. 그 위에 결제 프로토콜이 올라간다. 코인베이스의 x402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쓰이지 않던 HTTP 402 ‘결제 필요’ 코드를 되살려 기계가 요청과 동시에 결제하게 한다. 특정 블록체인에 묶이지 않으며 USDC가 초기의 주된 결제 수단이다. 스트라이프와 템포의 MPP는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결제수단을 가리지 않고 정산하고, 스트라이프와 오픈AI의 ACP는 판매자가 기존 결제 시스템을 그대로 쓰면서 에이전트의 주문을 받게 한다. 구글의 AP2는 사용자가 승인했다는 증거를 암호학적으로 남기고 비자의 TAP는 가맹점이 믿을 수 있는 에이전트인지 확인하게 해준다.

보고서의 예시를 보자. 사용자가 “2500달러 안에서 여행을 예약해줘”라고 지시한다. 주 에이전트는 MCP로 캘린더와 결제 정보를 확인하고 A2A로 여행 전문 하위 에이전트에 조사를 맡긴다. 하위 에이전트는 유료 항공·숙박 요금 API를 호출하면서 건당 요금을 x402로 낸다. 정산은 온체인에서 끝난다. 주 에이전트는 ACP로 항공사와 호텔의 기존 결제 시스템에서 예약을 마치고 일정표와 영수증을 돌려준다. 사람 눈에 보이는 결제는 한 번이지만 그 뒤에서는 기계끼리 소액 결제가 여러 번 오간다.

결제 수단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이 앞설 것으로 본다. 가격이 안정적이어서 값을 매기고 정산하기에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026년 9월 기준 3000억달러를 넘었다. 2025년 조정 거래량은 11조달러를 넘어 비자·마스터카드의 연간 결제액과 비슷한 범위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이 올라타는 블록체인의 코인도 수혜를 보는가. 블랙록의 답은 조건부다. 이더리움 같은 무허가형 네트워크에서는 사용량이 늘면 블록 공간과 검증인 서비스 수요가 늘어 ETH 같은 네이티브 자산의 수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치가 실제로 얼마나 귀속되는지는 네트워크마다 다른 수수료, 스테이킹, 가스 대납 설계에 달렸다고 명시했다. 서클의 결제 전용 체인 Arc는 아예 USDC를 가스 자산으로 쓴다. 결제가 늘수록 USDC의 쓰임새가 깊어지는 구조다. 코인-블록체인의 핵심 사용자는 사람이 아닐 수도
AI 업계 리더들은 앞으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AI 에이전트를 거느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 주체는 국가, 기업, 개인에서 AI 에이전트로 넓어진다. 스트라이프가 키운 결제 블록체인 템포 관계자에 따르면 금액으로는 앞으로 10년쯤 사람의 거래가 더 크겠지만 거래 건수는 갈수록 기계 쪽으로 쌓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인과 그 근간인 블록체인 기술은 이 새로운 경제 주체의 돈이자 금융시스템이 될 잠재력이 있다.

코인과 블록체인은 그동안 실사용이 어렵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코인-블록체인 관련 온체인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보다 중앙화 거래소에서 코인을 투기적으로 트레이딩하는 수요가 훨씬 크다. 당연한 일이다. 지갑 주소는 외우기 어렵고, 복구 문구를 잃으면 돈도 사라지며, 가스비와 브리지는 일반인에게 여전히 낯설다. 그런데 AI에게는 이것들이 장애물이 아닐 수 있다. 24시간 열려 있는 시장은 당연한 조건이고 1센트보다 훨씬 작은 단위까지 쪼개지는 결제는 오히려 필요한 기능이다. 은행 계좌를 열 수 없는 AI도 지갑을 만들 수 있다.

어쩌면 코인과 블록체인의 진짜 사용자는 사람이 아니라 AI 에이전트일지 모른다. AI 에이전트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커머스 결제를 하고, 밈코인을 만들고, 주식 토큰을 거래하고, 용역 수수료를 모아 비트코인으로 저축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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