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미평양냉면의 한상.선주후면(先酒後麵). 술을 먼저 즐긴 뒤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코스를 일컫는 말로 냉면의 고향 평양에서부터 유래한 풍습이다. 평양냉면과 소주가 그토록 오래 붙어 다닌 이유를 네 글자로 정리한 셈인데, 많은 미식가들이 지금도 이 선주후면의 규율을 지켜나가고 있다. 서울의 번화가 강남 한복판에서도 맛있는 평양냉면을 즐기는 미식가들로 늘 붐비는 식당이 있다. 논현에 위치한 ‘진미평양냉면’이다.
진미평양냉면은 2016년에 문을 열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는 아니다. 그런데도 개업 직후부터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몰렸던 이유는 사람에 있다.
오너 셰프인 임세권 대표는 의정부 평양면옥에서 3년, 장충동 평양면옥 논현점에서 17년간 주방을 지킨 인물이다. 합쳐서 20년.
냉면의 ‘근본’이라 불리는 식당들에서 내공을 쌓은 임 대표의 실력은 오픈 직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탄탄하고 일관적인 맛을 내고 있다. 전통의 노포들이 주로 강북 쪽에 몰려 있기 때문에 강남에서 좋은 냉면을 맛보고 싶다면 이 집이 제일이다.
이런 이유로 늘 손님들이 많은 편인데 원래는 본관 하나만 운영하다 몇 해 전 몰려드는 손님들을 소화하기 위해 맞은편에 별관을 새로 만들었다. 본관과 별관을 합하면 상당히 큰 규모라 실내는 늘 북적이지만 대기 없이 바로 앉는 경우가 많아 찾기에 편안하다.
평양냉면은 오랜 노포들을 중심으로 한 분류에 따라 의정부 계열, 장충동 계열 등으로 나뉘는데 오너 셰프의 경력에 따라 이 집은 장충동 계열로 분류된다. 다만 평가는 조금 다르다. 장충동 계열의 뼈대에 의정부 계열의 장점을 겹쳐 놓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손님이 만족할 만큼 맛있는 냉면을 위해 정통성은 지키면서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를 꾀한 맛이다.
냉면을 받아보면 우선 국물은 맑고 투명하다. 슴슴한 듯하지만 간이 잡혀 있는 편이라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한 그릇을 비울 수 있다. 육수는 깔끔하면서도 진한 육향이 부드럽게 다가오는 맛이다. 평양냉면 초보자에게 이 집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면은 가늘고 까끌까끌한 질감이 살아 있다. 씹으면 툭툭 끊기면서도 저항감이 살아 있고, 씹을수록 구수한 메밀향이 올라온다. 가장 좋은 점은 냉면 육수를 무료로 리필해준다는 점. 부드러운 고기 안주와 함께 소주를 즐기고 냉면으로 마무리하려면 시원한 국물을 꽤나 많이 들이켜게 되는데 이 집은 국물을 다 마시고 나서 남은 면을 위해 다시 부탁하는 것이 실례가 아니다.
냉면에 곁들인 사이드 메뉴로는 이북식으로 큼직하게 빚은 ‘접시만두’와 소고기 수육인 ‘편육’, 돼지고기 수육인 ‘제육’이 있다. 고루 준수한 맛이지만 특히 제육의 맛이 상당해서 꼭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집의 제육은 삼겹살 부위를 사용해 쪄내 보쌈과 같은 모양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냥 보쌈이라 부르기엔 아까운 물건이다.
쫀득하면서도 아주 촉촉하게 삶아내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적당한 비계가 어우러져 지방의 고소함과 육향이 서서히 올라오는데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고기 한 점만 맛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 한 점을 입에 넣고 나면 왜 이 집이 ‘제육 맛집’으로 따로 불리는지 이해가 된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제육을 완성하는 열쇠는 바로 양념장이다. 붉은 빛 소스는 살짝 매콤새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밸런스 좋은 맛이다. 제육의 고소함을 덮지 않으면서 한 끗을 더하는 정확한 균형. 고기에 곁들이면 그냥 소주도 술술 넘어갈 맛이라 만두나 어복쟁반 등 무엇을 찍어 먹어도 맛있다. 이 집 단골들의 팁으로는 양념장에 겨자를 조금 더해 섞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맛있는 양념에 겨자향이 더해지면서 맛이 훨씬 다채로워진다. 강남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평양냉면과 제육을 찾는다면 결국 이 집으로 향하게 된다.
안병익 식신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