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 훈련장에서 제3군단 예하 제60독립기계화여단 ‘케르베로스’ 지상무인체계중대 소속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전투용 지상무인로봇을 운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photo 뉴시스·AP2025년 여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의 요새화된 러시아 진지에서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제3독립강습여단의 로봇강습부대가 드론과 무인지상차량(UGV)만으로 진지를 포위하자, 벙커에 갇힌 러시아 병사들은 연막탄과 포탄의 연기에 질식되기 직전임을 깨닫고 어디선가 골판지 조각을 찾아내 항복 의사를 적었다. 그리고는 인간이 아닌 지상로봇에게 '항복'했다.
현장을 지켜본 우크라이나 소대장은 "러시아 군인들이 로봇 주위를 돌면서 팻말을 흔드는 걸 지켜봤다"고 증언했다. 이를 두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월 "오직 무인 플랫폼만으로 적 진지를 점령했다"며 전쟁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라고 선언했다. 수천 년 전쟁사에서 항복은 언제나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행위였으나, 그 오랜 관행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어느 참호에서 소리 없이 깨졌다. 인간이 기계에게 백기를 드는 광경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가 걸어온 경로를 복기하는 일은 미래 전쟁의 예고편을 미리 읽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후방의 소멸'이다. 전쟁터에서 후방은 익숙한 개념이다. 후방은 전쟁 당사국에 무언의 '약속'이다. 그러한 약속을 전제로 지휘소와 군수창고와 의무대가 후방에 자리 잡았다. 도네츠크의 의무실에서 목격한 죽음을 보도한 AP통신에 의하면, 군의관은 병사의 사인(死因)으로 후송에 걸린 시간을 지목했다. 조종수가 표적을 관측하며 때리는 1인칭 시점(FPV) 드론이 전선 20㎞ 후방까지를 '살상지대(kill zone)'로 바꾸면서 벌어진 일이다.
로봇 무기의 초고속 진화
지상로봇이 전장에서 처음 얻은 직업은 '짐꾼'이었다. BBC에 따르면 도네츠크주 동부의 도시 포크로스크 일대 전선으로 향하는 보급의 최대 90%가 이미 무인지상차량으로 이루어진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전선 병참의 100%를 로봇체계가 수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못박았다. 월간 임무는 지난 3월 9000회에서 4월 1만회를 돌파했고, 로봇 운용 부대는 4개월 만에 67개에서 167개로 2.5배 늘었다. 확산의 동력은 세련된 교리와 무관한 투박한 산수다. 보급품 500㎏을 운반하려면 40~50㎏
씩 짊어진 병사 10명이 살상지대를 통과해야 하지만, 로봇 1대는 200㎏을 싣고 엉금엉금 기어다닐 수 있다. 기계에는 체열이 없고 피로가 없으며, 무엇보다 '유족'이 없다.
후송의 무인화는 한발 더 나아가 장갑 캡슐과 부상병을 들어올리는 로봇 팔까지 달았다.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병사를 구하러 로봇 1대가 적진 4㎞를 뚫고 들어가 지뢰 3발을 밟고도 병사를 살려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도 나왔다.2023년 118㎏의 부상병을 등에 업고 후송하다 허리의 추간판 여섯 곳이 터졌던 병사는 로봇 후송이 가능해진 것을 처음 본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회색지대를 몇 시간 걸어나온 77세 노인 앞에 도착한 로봇에는 담요와 함께 "할머니, 타세요"라는 조종수의 손글씨가 놓여 있었다.
'짐꾼'은 이내 '전투원'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2024년 12월 하르키우 북방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제13여단이 인간 보병을 단 1명도 투입하지 않은 사상 최초의 '전(全)로봇 강습'을 감행했다. 5개월의 준비 끝에 50대가 넘는 지상·공중 무인체계가 투입되고, 일부 드론은 항복 권유 방송까지 송출했다. 그러자 러시아군은 30분간 자신들이 인간 병력에게 공격받는 줄로 착각했다고 한다.
로봇 군대를 낳은 진짜 엔진
이들 무기의 계보에는 뜻밖의 진실이 숨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진화된 지상로봇 군대를 만든 것은 소프트웨어 천재들이 아니다. 실제로는 용접공과 정비병이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혼차루크 전 총리는 공중 드론이 "고도로 창의적인 IT 인력의 손"이 있었던 반면, 지상로봇은 전선 보병부대의 "무언가를 볼트로 조여 작동하게 만드는 일"에서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제93기계화여단의 로봇대대장 올렉산드르 하르코베츠 대위의 이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그는 2023년 바흐무트의 폐허에서 벽 뒤에 웅크린 채, "기계가 이걸 할 수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퇴각하며 전우들의 시신을 남겨두고 나온 뒤, 죽었든 살았든 병사를 버리지 않기 위해 정비 기술을 무기로 바꾸기로 작심했다. 원격조종 차량에 갈고리와 기관총을 볼트로 고정한 그의 최초 작품은 특수부대가 1주일간 근처에도 가지 못한 시신 한 구를 회수해 왔다. 지휘부가 그 영상에 크게 감명을 받자, 아이디어는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로봇전쟁의 다음 관문은 '자율성'이다. 전자전이 조종 링크를 끊어버리는 전장에서 양측의 무인체계는 통신이 두절되면 탑재된 프로그램이 조종간을 넘겨받아 임무를 계속하도록 진화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우크라이나가 운용하는 독일제 자율드론은 인공지능(AI)으로 표적을 찾아내지만, 인간의 승인을 받아야 타격이 이루어진다. 반면 러시아제 자율드론에는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회로 자체가 없다. 이유는 윤리적 성찰과 무관한 '결핍' 때문이다. 도덕적 결단 대신 통신 인프라 접근권이 자율의 수준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자율무기 논쟁의 전제를 뒤흔든다. 지난 4월에는 무인수상정에서 발진한 요격 드론이 러시아 샤헤드 무인기를 격추했다. 무인 함정에서 출격한 무인기가 날아오는 무인기를 요격한 교전의 현장에 인간은 없었다.
21세기 로봇 전쟁의 경제학은 '교환비'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장갑보병차량 1대 값이면 지상로봇 77대를 살 수 있다. 이는 "인명 손실 없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77회의 시도"를 뜻한다. 무기의 성능 대신 '실패의 가격'을 따지는 방식이다. 인명으로 환산하면 계산의 무게가 드러난다. 로봇강습부대 NC13은 164회의 로봇강습과 동일한 효과를 내려면 병력 2300명이 필요하고, 그중 절반이 죽거나 다쳤을 것으로 평가한다. 화면 위에서 뒤뚱거리는 로봇들이 우크라이나인 1000명을 살린 셈이다. 러시아 병사들이 폭약을 실은 이 로봇에 붙인 별명은 '조용한 죽음'이다. 10m 코앞에 와서야 소리가 들리지만, 그때는 이미 늦는다. 폭발 반경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혁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 중이고, 어느 쪽도 결정적 승리에 이르지 못했다. 군사전문가 마이클 코프먼은 "전쟁의 혁명은 자주 선언되지만, 좀처럼 도래하지 않는다"고 했다. 로봇은 죽음을 재배분했을 뿐,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로봇이 증명한 것은 기계의 힘 이전에 '절박함의 힘'이다. "로봇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전쟁을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더 오래 지속시키는 저주이기도 하다. 병역 자원이 반토막으로 줄어드는 한국에 우크라이나가 건네는 질문은 "어떤 로봇을 구매할 것인가?"가 아니다. "무엇이 없어서 병사가 죽어가는가?"를 물을 준비, 나아가 그 해답을 '계절'의 속도로 만들어내는 한국형 K-회로를 만들어낼 각오가 되어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