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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6-08-09 · 키워드 대한민국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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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제돌이에서 비봉이까지…세월이 흐르며 바뀐 질문 [주말엔]
야생이라면 40년을 사는 동물이, 제주 서귀포의 한 돌고래 쇼장에서는 반입 후 평균 5년 3개월을 살고 죽었습니다. 개장 12년간 폐사한 돌고래는 8마리. 그 시간 동안 제주 바다에서는 등지느러미에 '1번'을 새긴 제돌이가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같은 바다를 두고 두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흘러갔습니다.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1번) ⓒKBS 제주 바다로 돌아간 춘삼이(2번) ⓒKBS ■ 등지느러미에 새긴 숫자, '1번’ 2013년 7월 18일, 제주 성산항 거두리에서 적응 훈련을 마친 수애기돌고래(남방큰돌고래, Indo-Pacific bottlenose dolphin) 제돌이와 춘삼이가 방사됩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수족관 돌고래의 야생 방사였습니다. 함께 훈련받던 삼팔이는 이미 20여 일 전에 가두리에서 스스로 탈출해 고향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방사를 코앞에 두고 뜻밖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등지느러미에 일련번호를 새기는 문제였습니다. 한쪽에서는 "번호가 선명하면 바다에서 이들을 본 사람들이 '돌고래 보호'의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동결 표지'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등지느러미 모양만으로도 개체 식별이 가능한 자연적인 방법이 있는데, 굳이 낙인을 찍는 건 인간의 흔적을 영원히 남겨 공연 돌고래를 자연 속에서도 관람하겠다는 의도 아니냐"라며 '동결 낙인'이라 맞섰습니다. 늘 합의로 안건을 처리해 오던 '제돌이 성공적 야생 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약칭'제돌이 시민위')가 이 문제만큼은 다수결로 결정했습니다. 16명 위원 중 3명은 끝까지 반대했고, 그중 한 명은 방사를 일주일 앞두고 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결국 제돌이 지느러미엔 '1번'이, 춘삼이에겐 '2번'이 새겨졌습니다. 용어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팽팽했던 긴장감. 그만큼 이 방사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 삼팔이는 새끼를 낳았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암컷 삼팔이·춘삼이·복순이는 야생에서 출산까지 하며 완전히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3년 1차 방사(삼팔·제돌·춘삼)에 이어, 2015년 2차(태산·복순), 2017년 3차(금등·대포), 그리고 2022년 마지막 남은 '비봉'이까지. 수애기돌고래 8마리가 4차례에 걸쳐 고향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수애기돌고래 8마리가 고향 바다로 돌아갔다. ⓒKBS 다만 모두가 순탄했던 건 아닙니다. 금등이와 대포, 비봉이는 여전히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상 야생 적응 과정에 실패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5년 방류된 태산이는 7년여 동안 단짝 복순이와 친구들과 함께 고향 바다를 마음껏 누비다가, 2022년 6월 27세 추정의 나이로 성산읍 앞바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습니다.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방사의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1차 방사 때는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한 발 물러서 있었고, 비용 조달까지 시민단체가 부담했습니다. 하지만 2차 방사부터는 정부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습니다. 시민운동에서 시작된 일이, 어느새 국가사업으로 자리를 옮긴 셈입니다. 시민 주도의 돌고래 방사 사업은 시간이 흐르며 국가 주도의 사업으로 변경된다. ⓒKBS ■ 바다로 못 간 돌고래들…마린파크의 비극 그러나 모든 수족관 돌고래가 제돌이처럼 바다로 돌아간 건 아닙니다. 퍼시픽랜드 전직 조련사가 2010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에 독립해 문을 연 또다른 돌고래 쇼장 '마린파크'는, 오히려 그 반대편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곳은 일본에서 수입한 '큰돌고래'(Common bottlenose dolphin)로,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함께 수영하고 먹이를 주는 '체험형' 쇼를 표방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개장 이후 12년간 8마리의 돌고래가 폐사했습니다. 반입일로부터 평균 5년 3개월. 야생에서라면 40년 넘게 살 수 있는 돌고래들이었습니다. 2009년 일본에서 포획돼 12년간 이용되던 '화순'이마저 2021년 숨을 거두면서, 결국 영업이 중단됐습니다. 마린파크의 마지막 생존 돌고래 ‘화순’. 2009년 일본에서 포획된 큰돌고래종으로 12년간 수족관에서 이용되다 2021년 8월 숨을 거뒀다. 사진제공: 핫핑크돌핀스 2019년, 이 수족관을 점검한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심각한 '정형행동'을 목격했다고 기록합니다. 특히 '낙원'이라는 돌고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구석에 들어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수면 위에 가만히 떠 있었습니다. 정형행동이란 야생동물이 좁은 공간에 갇혀 있을 때 나타나는 목적 없는 반복 행동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신호입니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 수족관에서 폐사한 고래류는 모두 46마리로, 이 가운데 제주 지역의 폐사 고래류는 22마리에 달합니다. 전국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한 수족관 사업자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얘네들이 아무래도 자연적인 환경에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도 폐사되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은 해요. 돌고래가 자산인데, 그게 없으면 못 하는 거니까." 그러나 통계는 그 '노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 그럼에도, 수족관은 늘어난다 역설적인 건,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간 이후에도 국내 수족관 산업은 오히려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2012년 한화 아쿠아플라넷(여수·제주), 2014년 롯데월드 아쿠아리움과 거제씨월드가 잇따라 문을 열었습니다. 숫자가 그 역설을 보여줍니다. 돌고래 해방 운동이 처음 시작된 2011년, 국내 수족관은 4곳, 고래류는 27마리였습니다. 그런데 한때 이 숫자는 8곳 40마리까지 불어났습니다. 돌고래 방류가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동안, 다른 페이지에서 돌고래 수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핫핑크돌핀스 조사에 따르면 2026년 3월 기준으로는 5곳 19마리까지 줄었습니다. 절반 가까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법과 제도는 이 흐름을 뒤늦게 뒤쫓아갔습니다. 제돌이 등이 바다로 돌아갔지만, 국내 수족관 사업은 오히려 성장했다. 시민단체는 공연을 위한 돌고래 의 수입 중단을 요구했다. ⓒKBS ■ 뒤늦게 정비한 법과 제도 2012년, 수애기돌고래가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됐습니다. 2016년엔 국내 최초로 동물원과 수족관을 통합 관리하는 '동물원수족관법'이 제정됐습니다. 1909년 창경원이 문을 연 지 100년도 더 지나서였습니다. 같은 해 '해양생태계법'이 개정돼 관람용 목적의 고래 포획이 사실상 금지됐고, 2018년엔 잔인하게 포획된 국제적 멸종 위기종 수입을 금지하는 '야생생물법 시행령'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국내 돌고래 수입 대부분이 잔인한 포획 방식으로 알려진 일본 다이지에서 왔다는 점을 참작하면, 이는 사실상의 수입 금지 선언이었습니다. 2021년 해양수산부는 '제1차 수족관 관리 종합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수족관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먹이 주기·만지기·올라타기 같은 체험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신규 수족관에서는 고래류 전시 자체를 아예 금지하겠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이 내용은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에 반영돼 2022년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2월 14일, 법이 실제로 이빨을 갖추는 날이 왔습니다. '동물원수족관법' 하위 법령이 시행되면서, 수족관 등록제는 한층 까다로운 '허가제'로 전환됐습니다. 이날 이후로는, 어떤 수족관도 관람 목적으로 고래류를 새로 들여올 수 없게 됐습니다. 신규 시설뿐 아니라 이미 영업 중이던 기존 시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손님이 돌고래 등에 올라타거나 몸을 만지는 체험 프로그램도, 이날부터는 처벌 대상이 됐습니다. 같은 날 '야생생물법' 개정안도 함께 시행됐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야생동물 카페 같은 시설에서 살아있는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 역시 전면 금지됐습니다. 1986년 제주에서 처음 문을 연 돌고래 쇼장 '로얄마린파크'가 문을 연 지 37년, 2011년 야생 돌고래의 포획과 거래를 적발한 해경 수사가 있은 지 12년 만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전시 동물 보호를 위한 법적 안전망이 한층 촘촘해졌습니다. 물론, 법이 촘촘해졌다고 해서 이미 수조 안에 있는 돌고래들이 저절로 바다로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법은 '내일'을 막을 뿐, '어제'를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뒤늦게 관련 제도와 법령이 정비에 들어갔다. 법은 촘촘해졌지만, 돌고래가 완전히 자유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었다. ⓒKBS ■ 세월이 흐르며 바뀐 질문 돌이켜보면, 1984년 서울, 1986년 제주에 돌고래쇼장이 들어선 이후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동물은 지금 행복한가.' 관람객도, 업체도, 심지어 정부도 그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돌고래는 그저 사고파는 자산이었고, 재롱을 부리는 구경거리였습니다. 그 질문이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 던져진 건 2011년 여름이었습니다. 그 이후 10여 년 만에 최소한 제도적으로는 답을 마련했습니다. 수애기돌고래는 더 이상 사유재산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해양생물이 됐고, 수족관은 더 이상 아무런 감시 없이 운영될 수 있는 사업이 아니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도 변화로 모든 돌고래가 고향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여전히 전국 곳곳의 수조 안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돌고래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또 다른 '자연 수족관'이 생겨났습니다. 수족관 밖으로 나온 돌고래를, 이번엔 배를 타고 '관찰'하겠다는 새로운 관광산업이 등장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돌고래를 가두지 않습니다. 대신, 바다까지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연관 기사] 제주 바다의 기억, ‘수애기’…돌고래 이름에 담긴 비밀 [주말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56703 제주 바다의 고래 ‘수애기’…‘신화와 공포 사이’ [주말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02370 제주 바다의 귀염둥이 ‘수애기’…아직 안심할 수 없는 이유 [주말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08433 왜 일본은 제주 바다까지 들어왔나…제주 바다를 연 제국의 포경 [주말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14187 돌고래 쇼의 탄생…수애기돌고래의 강제이주 [주말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20205 제돌이, 바다로 돌아가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26292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유튜브, 다음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해양수산부수입 금지아쿠아리움대한민국스트레스 -
경제필리핀 바다 휘젓는 함정에 '한국산 두뇌'…"납기도 빨라"
[K방산 체크리스트]④한화시스템 '함정 전투체계(CMS)' [편집자주] K방산이 대한민국의 대표 수출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뛰어난 성능과 완벽한 납기 준수 등의 강점을 앞세운 '메이드 인 코리아' 무기에 대한 러브콜이 쇄도하는 중이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K방산의 핵심 제품들을 차례로 소개해본다. 한화시스템 전투체계(CMS)가 탑재된 필리핀 최신예 호위함 '호세리잘함' /사진제공=한화시스템 필리핀 해상을 가르는 3200톤급 호위함. 거대한 함정이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가운데 그 안에서 상황을 읽고 전투를 지휘하는 '두뇌'는 다름 아닌 한국산이다. 바로 '함정 전투체계(CMS)'로 레이더 등 각종 센서가 포착한 정보를 한곳에 모아 위협을 판단하고 무기·통신체계와 연동하고 있다. 전술 데이터를 통해 다른 함정과 작전 정보도 실시간 주고 받는다. 바다 위 군함에선 순간의 판단이 작전의 성패를 가르는 만큼 함정 전투체계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크다. 사람으로 치면 눈과 귀로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 판단을 내리고, 필요하면 곧바로 손발을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역할인 셈이다. 함정 전투체계가 '함정의 두뇌'로 불리는 이유다. ━ 사명감에 개발…함포 정밀 통제 기술 최고 수준 정확도 ━ 한화시스템 '함정 전투체계(CMS)' 주요 내용/그래픽=윤선정 국내에서 함정 전투체계를 개발하는 기업은 사실상 한 곳뿐이다. 한화시스템은 대한민국 해군의 고속전투함·대형상륙함·구축함·호위함·잠수함 등 다양한 수상·수중 함정에 순수 자체 기술력으로 국산화한 함정 전투체계를 공급해온 국내 유일의 기업이다. 지난 40여년간 해군이 운용하는 거의 모든 함정에 전투체계를 납품해왔다고 보면 된다. 한화시스템이 함정 전투체계 기술 개발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다. 과거 해외에서 전투체계를 도입하던 시기엔 우리 해군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즉각 반영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탑재 장비를 변경하려면 해외 제작사에 소프트웨어 수정을 의뢰해야 하는 등 기술 종속에 따른 제약이 컸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해군 전투력 발전을 위해서도 함정 전투체계의 국산화는 필수적이었다"며 "사명감이 개발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함정 전투체계는 함정에 탑재되는 다양한 무장과 센서를 연동하고, 탐지부터 교전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 매우 복합적인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개별 장비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해군의 운용개념 정립부터 전투 전반을 아우르는 이해가 뒷받침돼야 했다. 이를 통합해 최종 성능을 완성하는 높은 기술력 또한 필요했다. 특히 함정 전투체계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함포 정밀 통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상이 좋지 않은 날에도 출항해 실사격을 반복하고, 데이터를 수정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듭했다. 그 결과 한화시스템은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갖춘 함포 제어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 동남아·중동·유럽 진출 추진…맞춤형 체계 공급 ━ 한화시스템 직원들이 울산급 Batch-III 전투체계(CMS)의 함정 탑재 전 사전 시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시스템 한화시스템 함정 전투체계의 강점은 다양한 작전 경험과 해군의 운용개념을 폭넓게 축적해왔다는 데 있다. 새로운 무장과 센서는 물론 미래 무인체계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 가능한 구조로 설계된 점도 경쟁력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무엇보다 타 국가 대비 개발과 양산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전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술력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필리핀에는 2017년 2600톤급 호위함 2척을 시작으로, 2019년 3000톤급 호위함 3척 성능개량사업에 이어 2022년 3100톤급 초계함 2척, 2023년 2400톤급 원해경비함 6척에 수출했다. 지난해에는 3200톤급 차기 호위함 2척에도 함정 전투체계를 공급했다. 한화시스템은 필리핀을 발판 삼아 동남아를 비롯해 중동, 유럽, 남미 등으로 시장을 넓힌다는 목표다. 핵심 전략은 각국 해군의 요구와 작전 환경에 맞춰 전투체계를 발전시켜 공급하는 것이다. 실제 필리핀의 경우 7600여개 섬으로 이뤄진 복잡한 작전 환경과 특수한 해양 안보 상황을 고려한 전투체계를 공급한 것이 수출에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미래 전력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최근에는 유·무인 복합운용 등 미래 무인체계로 확장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며 "도입국 해군의 현재 소요뿐 아니라 향후 전력 발전 방향까지 함께 담아내는 방식으로 차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ECS·CBMS 개발 성공…글로벌 수준 무인함정 기술 확보 ━ 해군이 양만춘함(DDH-I) 통합기관제어체계(ECS) 장비를 운용하는 모습 /사진제공=한화시스템 한화시스템은 미국·이탈리아·노르웨이 등 일부 선진국만 보유하고 있던 통합기관제어체계(ECS) 및 상태기반진단체계(CBMS) 개발에도 성공했다. 통합기관제어체계는 함정 운용에 필요한 추진·전력·보조기기·손상계통 시스템을 하나의 네트워크 기반으로 통합해 함정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첨단 제어장비로 함정의 '심장'과 같다. 함정 추진체계 상태기반진단체계는 △엔진 △감속기어 △해수펌프 △냉동기 등 50여개 장비로 구성된 함정 추진체계의 운용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진단하고, 필요시 승조원에게 정비를 권고하는 시스템이다. 첨단 머신러닝 기술이 적용돼 단순 모니터링뿐 아니라 성능평가를 통한 경향분석, 고장진단 및 잔여 수명 예측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기술 개발대한민국이탈리아필리핀 -
사회"논두렁에 숨어있다 성폭행 살해"...9세 여아→71세 할머니까지 노렸다[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사진=뉴시스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한 남성의 DNA가 나왔다.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부산교도소에 수감돼있던 '이춘재'였다. 첫 범행 후 33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끝나버렸고, 죄 없는 사람이 누명을 써 20년간 옥살이를 한 시점에서 경찰은 뒤늦게 진범을 찾아내 사건의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 9세부터 71세까지 여성만 노렸다…경찰력 205만명 동원 ━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총 14건에 걸쳐 발생한 대한민국 최대 영구 미제사건이었다. 이춘재는 논두렁, 수풀 등에 숨어있다가 밤늦은 시간 귀가하는 여성을 노려 성폭행 후 살해했다. 피해자는 9세 초등학생부터 71세 노인까지 전부 여성이었다. 이춘재는 대부분의 살인에 스타킹, 양말 등 피해자의 소지품을 이용했다. 14건 중 11건이 경기 화성에서 벌어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건은 수원에서, 나머지 2건은 충북 청주에서 발생했다. 수십년간 미제 사건이었던 이 사건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찰력이 동원됐다. 연인원 205만명에 달하는 경찰이 투입됐고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을 대조 당한 사람은 무려 4만116명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2003년 4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선보여 다시 한 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 사진=살인의 추억 포스터 봉준호 감독이 2003년 4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선보여 다시 한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 군 전역 후 무료한 생활…범행은 '욕구불만 표출 수단' ━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사진=뉴시스 진범을 찾아낸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DNA 분석기술'에 있었다. 당시 DNA 검출·분석기술이 발전해 정확도가 대폭 높아진 상황이었다. 경찰은 과거 DNA를 검출하지 못해 미제가 된 사건의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이 사건의 증거물도 국과수로 보내졌다. 2019년 8월 9일 9차 사건 피해자의 증거물에서 처음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이어 3·4·5·7차 사건의 피해자 유류품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등을 중심으로 수사팀을 꾸렸고 2019년 9월 18일 이춘재를 접견하면서 재수사를 시작했다.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던 이춘재는 9월 24일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프로파일러와 라포(정서적 신뢰감)가 형성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9번째 조사가 이뤄졌던 10월 1일 드디어 자백했다. 11차 조사에서는 모방범죄로 분류됐던 8차 사건까지 자신의 범행이라고 털어놨다. 경찰은 2019년 12월 사건 명칭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변경했고 이듬해 7월 이 사건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춘재의 범행에 대해 경찰은 '욕구불만의 표출 수단'이었다고 봤다.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지 못했던 그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주체적인 역할을 맡아 성취감을 느꼈으나, 전역 후 주도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해 가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이춘재는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의 상태였다"며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와 살인을 지속했음에도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졌고, 범행 수법도 잔혹해졌으며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한 것 같다"고 봤다. 이춘재는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음에도 이 사건과 관련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그는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복역 중이다. 이춘재는 2020년 11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진범으로 특정된 데 대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사건이 영원히 묻힐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모든 것이 스치듯 지나갔다"고 했다. ━ 3차례 수사하고도 풀어줘…죄 없는 사람 20년간 옥살이 ━ 진범이 밝혀진 후에는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과거 경찰이 이춘재를 용의선상에 올려 3차례 수사를 진행하고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점도 비판 여론에 불을 지폈다.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만리 가정집에서 당시 14세 소녀 A양을 상대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8차 범행이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서 체모가 발견됐고 분석 결과 일반인보다 300배 많은 티타늄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분석 결과에 따라 기계 관련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수사했고 수사를 시작한 지 10개월여가 흐른 1989년 7월 25일 경운기 수리센터에서 일하던 윤성여씨(당시 22세)를 체포했다. 이후 경찰은 윤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폭행과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고 허위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기도 했다. 참여하지도 않은 참고인을 참여한 것처럼 속여 허위공문서도 작성했다. 윤씨는 소아마비 환자로 치밀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상태로 보기 어려웠고 본인도 교도소에서 지속적으로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아 20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2009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경찰은 이춘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되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분과 그의 가족, 그 외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손해를 입으신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씨는 재심 끝에 2020년 12월 17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 국가가 억울하게 형을 받게 된 사람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 25억1000만원, 경찰의 가혹행위 등에 대한 국가배상금 18억7000만원을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살인 사건부실 수사대한민국스트레스 -
사회김희철, 거꾸로 태극기에 "X 돌았네"·"좌우 문제 아냐"
김희철/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이 상하가 뒤집힌 태극기가 프린트된 광복절 현수막에 분노한 것과 관련 정치색 논란에 휩싸이자 입장을 밝혔다. 김희철은 지난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물에 "X 돌았네"라는 댓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 해당 게시물은 '인천시 태극기 반대로 그린 광복절 현수막'이라는 제목으로, 문제가 된 현수막의 사진이 같이 포함돼 있었다. 사진에는 '제81주년 광복절, 빛을 되찾은 그날'이라는 문구 옆 태극 문양과 괘의 위아래가 뒤집혀 있었다.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인천시가 제작한 현수막을 지적한 내용의 게시물인 것. 이에 김희철은 댓글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같은 그룹 멤버인 최시원도 김희철의 댓글 아래 태극기 이모티콘을 달며 공감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후 김희철의 행동을 두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나타나며 팬들이 우려하자, 결국 김희철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많은 분께서 태극기 얘기에 정치적인 걱정을 해주시는데, 좌우를 떠나 우리나라 국기이지 않나. 투어 돌 때 해외 팬들도 태극기를 알기에 그 나라의 국기와 태극기를 같이 들기도 하고, 잘못 들면 다시 알려주고 서로 웃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누구를 뽑건, 몇 번을 찍건 자유인 대한민국에서 참정권 침해라는 건 너무 말이 안 되긴 한다"면서 "저 역시 많은 투표를 해봤고, 팬분 중 저와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 당연히 다른 사람을 지지하는 팬들도 있기에 '모두를 존중하며 살자'라며 노래와 춤으로만 보여드리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제 팬들은 안 엮이길 바라겠지만 태극기를 거꾸로 다는 이슈. 게다가 좌우 발언도 아니고, 참정권만으로는 제가 칭찬을 받을 일도, 욕먹을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니까"라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추가로 글을 올려 "해외 무대 올라가기 전에 대기실에서 꼭 그 나라의 국기를 검색하고 올라간다. 국기를 뒤집어 든다는 건 굉장히 실례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희철은 "좌우 상관없는 일. 유치원생도 아는 건 칭찬받을 일도, 욕먹을 일도 아니고 외국 팬들조차 다 아는 태극기 위치로 이러니 황당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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