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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귀신, 살인마 보다 무서운... 40년 시달린 공포의 실체
[영화로 '오싹한' 여름나기] <할로윈(2018)> 속 트라우마 여름만 되면 스스로에게 '이 여름, 이겨낼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겨울의 추위는 견디기만 하면 되는데, 어째서인지 여름의 열기와는 싸워서 이겨야 할 것만 같다. 아침저녁으로는 많이 선선해졌지만, 오후의 뙤약볕은 여전하다. 학창 시절은 물론 대학 생활까지 전부 첩첩산중에서 보내며, 유독 여름이 무서웠다.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감각에 숨죽이고 하교하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고라니를 마주치고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체육관에 올라가는 길목에서 씩씩거리는 멧돼지와 눈이 마주쳐 기겁할 뻔했다. 산속 생명체를 만날 때마다 공포스러웠다. 순간적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 내게 놀라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균형도 못 잡는 내가 산짐승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예견된 패배다. 그런데도 생존 본능 때문인지 눈앞의 위협을 만났을 때 '싸움'을 떠올렸다. 가까스로 아찔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나면, 싸움을 각오했던 스스로의 비장함이 무섭게 느껴졌다. 이성이 아니라 순간적인 감정을 쫓으려 한 내 자신에게 놀랐다. 그때, 순간적인 판단을 따랐다면 어땠을까. 몸의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았거나 지금 이 자리에서 감상을 남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내가 여름에 무서워하는 건 귀신이나 초자연 현상이 아니다. 인간의 본능, 위협 상황에 인간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또 그 선택이 얼마나 많은 걸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하면 어느새 서늘해진다. 매 여름, 인간의 마음을 다룬 호러 영화 <할로윈(2018)>을 보는 이유다. 쫓기는 공포에서 쫓는 공포로 ▲ 영화 <할로윈> 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할로윈(2018)>은 호러 장르의 전설적인 작품이 된 <할로윈>의 후속 작품이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은 연쇄살인마에게 살아남은 지 40년 된 주인공 '로리 스트로드(제이미 리 커티스 분)'의 심리적 변화에 집중한다. 이 영화는 기존 호러 영화와는 다르다. 전통적인 '살인마 호러'는 관객이 쫓기는 쪽에 이입하도록 한다. 처음에는 함께 등장하던 주인공 일행이 하나둘씩 살인마의 손에 죽어가고, 최후의 생존자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영화가 계속되는 식이다. 악령이나 악한과 대결해 유혈이 낭자한 사투를 벌이다 마지막에 생존하는 이는 대개 여성이다. 그래서 서구영화사에서 이러한 스토리의 공포영화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여성을 '파이널 걸'(final girl)이라고 부른다. 파이널 걸을 비롯한 공포 영화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살아남으려' 애쓴다. 살인마가 화면 너머의 관객마저 죽일 것만 같은 공포를 전달하는 동안 주인공은 무력하게 그려진다.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주저앉아 울거나, 중요한 순간에 길을 잘못 드는 등 번번이 실수해 관객이 가슴을 치게 만든다. 그런데 <할로윈>은 주인공에게 힘을 준다. 40년이 지나 노인이 된 로리는 온갖 총기를 다룰 수 있는 전사가 됐다. 집에 치밀한 함정을 여럿 파 놓는 등 강인한 존재로 살고 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던 살인마 '마이클'에게 지지 않아 보인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주인공과 살인마가 대등해진다면, 공포 영화가 아니라 액션 영화가 아닐까? 연쇄 살인마와 대등한 힘을 지닌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의 어디가 '공포'일까. <할로윈>은 오랜 폭력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인간을 변하게 하고 가두게 하는 폭력, 즉 로리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40여 년을 발버둥 친다. 괴물 쫓던 주인공의 변화 ▲ 영화 <할로윈> 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주인공 로리는 40년 전, 연쇄 살인마에게 죽을 뻔한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과거 순수한 마음의 가정교사던 로리는 어느새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됐다. 자기 딸과 손녀를 비롯한 가족에게도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연쇄 살인마(마이클)를 기다리느라 고립된다. <할로윈>은 러닝타임 절반을 로리의 성격이 어떻게 변했고 이로 인해 얼마나 고립된 삶을 사는지 설명하는 데 할애한다. 연쇄 살인마라는 괴물에 쫓기던 주인공은 괴물을 쫓느라 트라우마 안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려 노력한다. 나는 로리를 40년간 고통스럽게 하며 그를 변하게 한 트라우마가 가장 공포스러웠다. 물론 지금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과거보다는 사회적으로 공유되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센터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치료하거나 극복하는 건 평생을 노력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영화 속 로리는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기 트라우마를 살필 겨를도 없이 그저 몸을 강하게 단련하고 집안을 기지로 만든다. 추격자를 쫓아 복수해야만 겨우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삶을 진짜 무섭게 만드는 것 역시 이런 것 아닐까. 자기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이나 사람을 돌아보고, 회복을 살필 겨를 없이 다시 그 사건이 반복될까 만반의 준비를 하며 사는 일상. 평생을 과거의 공포(사건)에 만반의 대비를 하며 지내야만 하는 시간. 영화 후반부, 탈옥한 연쇄살인마 마이클이 로리의 일가족을 쫓는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로리의 대비에 맥을 못 춘다. 하지만 마이클도 만만치 않다. 가면과 칼 한 자루로 무장한 이 연쇄 살인마는 로리에게 머리를 가격 당해도, 과도에 찔리고 총에 맞아도 다시 살아난다. 마이클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로리 대신 그녀의 딸 '카렌(주디 그리어 분)'을 노린다. 이를 보며, 카렌을 향한 마이클의 모습이 로리에게 또 다른 공포,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싶었다. 살인마를 혼자 감당하려 40년 동안 스스로를 강하게 몰아세웠는데, 이 위협이 가족에게 향한다니, 로리가 느꼈을 절망감은 얼마나 깊었을까. 물론 영화는 마이클을 가두며 끝난다. 모녀는 서로를 지킨다. 이제, 로리는 자기를 돌볼 수 있을까. 지난한 싸움이 끝났으니 비로소 트라우마를 살필 수 있을까. 당신은 평소 어떤 두려움, 무서움과 맞서고 있는가. 벗어날 수 없을 거 같은 과거 기억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나. 여기, 40년에 걸쳐 트라우마에 시달린 여성이 있다. 목숨을 잃을 만큼 큰 사건을 겪었지만, 그 트라우마를 마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미처 그것에 신경 쓸 여유 없이 버텨야 하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느끼는 진짜 공포는 바로 이런 부분이다. 영화는 연쇄 살인마의 죽음을 전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마이클이 죽었다고 로리가 하루아침에 괜찮아질 리 없다. 40년 전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까. 트라우마를 마주해야 하는 그가,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그리고 나를 포함해 우리 각자가 자기의 트라우마를 마주할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심리적 변화고등학생데이비드연쇄살인여성 -
사회세계 0.003% 희귀질환 유튜버… 목숨 걸고 여행합니다
[ㅇㅌㅂ] ‘유리몸이군’ 운영자 이견우 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유튜브 채널 ‘유리몸이군’을 운영하는 여행 유튜버 이견우씨가 지난 10일 경기 부천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격한 신체활동은 안 돼요. 수영이나 다이빙처럼요. 놀이기구도요. 딱딱한 바닥에서 자면 안 되고요. 아, 너무 오래 걷거나 앉아 있는 것도 안 돼요. 아래쪽으로 쏠리니까요. 그러다 피가 나면 주사를 맞아도 잘 안 멎거든요.” 이견우(35)씨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피해야 할 환경이 많다. 날 때부터 품고 살아온 지병 탓이다. 병명은 중증 혈우병 A타입. 12가지 혈액응고인자 중 8번(VIII) 인자가 결여돼 생긴다. 몸 안팎을 가리지 않고 남들보다 쉽게 출혈이 생기며, 한번 난 피는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출혈 부위가 장기나 뇌라면 큰일이다. 기대 생존율은 의학의 발전 덕에 크게 높아졌다지만 평생 약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30대 중반에 도전을 택했다. 무대는 유튜브, 종목은 세계여행. 동행인은 없다. ‘유리몸이군’ 채널을 운영하는 이씨는 지난 10일 경기 부천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혼자 힘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채널 대문에는 ‘전 세계 0.003% 유리몸으로 살살 여행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의 여행에 따라붙는 여러 조건과 제약을 함축한 문구다. 강도 높은 신체활동이나 과도한 장시간 이동, 딱딱한 방바닥까지 모두 피해야 할 대상이다. 시간과 온도도 신경 써야 한다. 주사약은 별일이 없어도 일주일에 두 번씩 맞아야 한다. 한 번에 8회분 처방이 원칙이다 보니 해외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최대 한 달로 제한된다. 더운 나라를 여행할 땐 숙소 객실에 약을 보관할 냉장고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처음 혈우병 진단을 받은 것은 말문도 트이기 전이었다. 부모는 돌배기 아이가 바닥에 앉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어대자 병원에 데려갔는데, 시간이 지나도 엉덩이에 든 멍이 빠지지 않아 혈우병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어찌 보면 참 운이 좋았던 셈”이라며 “아기 때 크게 넘어지거나 부딪히기 십상인데, 그래도 탈 없이 자랐다”고 했다. 30년 넘게 병과 함께 살아오면서 통증은 일상이 됐다. 관절에서 발생하는 출혈이 대표적이다. 이씨는 “한 번은 평소처럼 관절 마디가 아프길래 평소처럼 출혈 때문에 생긴 염증이겠거니 주사약을 맞았는데도 낫질 않았다. 검사를 받아보니 이번엔 통풍이라더라”며 웃었다. 여전히 가슴 철렁한 순간은 가끔 한 번씩 찾아온다. 최근에는 중앙아시아 기차여행 도중 딱딱한 돌 구조물에 머리를 부딪혔다. 하필 전날 약도 안 맞았던 터였다. 불안한 마음에 객차 화장실에서 부랴부랴 주사를 꽂았다. 보통의 여행자라면 아무 문제 안 될 짐가방 하나도 이씨에게는 유독 묵직하다. 그는 “2주 전쯤 한국에 들어왔는데, 입국하자마자 나흘을 앓아누웠다”며 “(짐 때문에) 어깨부터 날개뼈, 허리까지 다 멍이 들어서 밥숟가락도 잘 못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가 떠나는 이유는 즐거워서다. 이씨는 “다양한 삶을 보고 느끼는 것이 좋더라”고 했다. 유명 관광지보다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직접 보고 나면 배우고 느끼는 게 많다”며 “내가 가진 고민이란 얼마나 별 게 아니었는지 깨닫게 되더라”고 말했다. 7년 전 이씨 손에는 카메라 대신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예술대학원을 다니면서 밴드를 꾸려 앨범을 준비했다. 생계를 위해 음악학원에서 강사로 일했고 불안정한 수입은 고깃집이나 PC방,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충당했다. 고등학생 때 연애를 시작한 한 살 연하 아내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함께 입시를 준비했고 대학까지 함께 졸업했지만 “둘 중 하나는 벌이가 안정적이어야 한다”며 직장생활을 택했다. 삶에 균열을 낸 것은 감염병 팬데믹이었다.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학원 수강생은 10분의 1로 줄었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사라졌다. 이씨는 “한 달 수입이 8만원, 12만원씩 찍혔다. 그게 몇 달 동안 계속됐다”고 회상했다. 스치기만 해도 멍드는 몸으로 물류창고에 나가고, 고객센터에서 전화를 받고, 전단지를 돌렸다. 배달 일도 했지만 근본적 대책은 안 됐다. 음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며 쓴 이력서가 100장에 달했지만 합격 소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끊긴 것은 수입만이 아니었다. 음악 작업도 멈춰 섰다. 연주를 도와줄 멤버, 녹음을 도와줄 엔지니어, 홍보를 도와줄 마케터까지, 이씨 표현을 빌리자면 다들 먹고살기 바빴다. 그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떠오른 게 유튜브였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한 데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다다른 나이도 한몫했다. 그는 “전부터 딱 서른다섯까지 음악을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아내가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데 안 되는 걸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여행 유튜버 이견우씨가 지난 6월 18일 유튜브 채널 ‘유리몸이군’에 올린 첫 영상에서 스스로 혈우병 주사를 놓고 있는 모습. 장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숙소. 그가 처음으로 혼자 나선 해외 여행이었다. 해당 영상 캡처 유튜브라고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아내와 2년간 브이로그 채널을 운영했지만 구독자 6000명에서 성장이 멈췄다. 예행연습이라 여기며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아내 없이 이씨 혼자, 평소 좋아하던 여행에 오롯이 집중해 채널을 꾸몄다. 그렇게 이씨는 서른다섯 살에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에 나섰다. 목적지는 인도네시아. 아내를 제외한 주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였다. 첫 영상은 그의 생일 나흘 전인 지난 6월18일 업로드됐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이달 12일 기준 104만회를 넘겼다. “지금도 소름이 돋아요.” 이씨가 말했다. 업로드 하루 뒤 160명이던 구독자는 이튿날 1000명, 그 다음날엔 다시 몇 배로 불어났다. 그는 “오히려 너무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좋아하는 순간 다 무너질 것 같아 불안했다”고 말했다. 안 나오던 눈물은 생일 아침 터졌다. 아내도 함께 울었다. 포화시장인 유튜브 세계에서도 여행 콘텐츠는 대표적 레드오션이다. 차별화 없이 생존을 도모하기 어렵다. 여행 유튜버들이 앞다퉈 관광 인프라가 부족한 벽오지를 찾거나 극한 체험에 도전하는 이유다. ‘하면 안 되는 것’투성이인 이씨에게는 그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 “나름대로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했는데 결론은 없더라고요. 편집 기술도, 기획력도 다들 저보다 대단해요. 훨씬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요. 무엇 하나 이길 수 없다면 캐릭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외모일 수도, 성격일 수도, 말투일 수도, 건강 상태일 수도 있죠. 이 몸으로 여행하는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에게 거창한 ‘꿈의 여행지’는 없다. 굳이 꼽으라면 우유니 소금사막, 마추픽추가 그나마 버킷리스트에 가깝다고 한다. 이씨는 “남미라든지 아프리카 같은 곳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여정 자체가 도전”이라고 말했다. 채널 운영의 목표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같이 오랫동안 여행하는 것”이었다. “몸은 혼자여도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다 보면 곁에 누군가 함께 있는 것 같거든요. 저는 엄청나게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제가 좋아서 여행하는 거고요. 그런 저를 재밌어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찍습니다. 제 몸이 언제까지 버틸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같이 오래 여행하고 싶다, 그런 소박하면서도 큰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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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김라경과 눈만 마주치면 우는 세계 최고의 투수..."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랄까요" [WPBL 현장]
여자야구 월드컵 3회 최우수선수(MVP) 선정된 레전드 72년 만에 부활한 무대에서, 韓·日 에이스가 나란히 쓴 역사 사토 아야미와 김라경이 서로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웃고 있다. ⓒ사토 아야미 관계자 제공 지난 2일(한국시간), 여자 프로야구 역사가 다시 쓰였다. 72년 만에 부활한 미국 여자프로야구(WPBL) 개막전 마운드에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투수가 나란히 선발로 등판했다. 원정팀에선 세계 최고의 투수 사토 아야미(37·LA 퀸즈)가, 홈 팀에선 그를 '사토 센빠이('선배'의 일본말)'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던 후배 김라경(26·뉴욕 하이츠)이 야구장 가장 높은 곳에 섰다. 둘은 이날 각자의 이름으로 역사를 썼다. 사토 아야미는 스타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대회인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3회 연속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한 유일무이한 선수다. 수많은 야구하는 소녀들이 알음알음 그의 투구를 보고 야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이중 한 명인 김라경이, 이제 그와 나란히 마운드에 서는 동료가 됐다. 사토와 김라경이 처음 만난 건 일본 여자 실업팀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였다. 실력뿐 아니라 인성과 야구를 대하는 태도에 반해, 김라경은 단번에 사토를 정신적 지주이자 우상으로 삼았다. 둘은 눈만 마주쳐도 운다.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두 사람을 여러 차례 목도할 수 있었다. 이날 사토와의 인터뷰 자리에 잠시 응원 차 놀러온 김라경은 사토와 눈이 마주치자 "사토 선배의 눈망울을 보면 안 울 수가 없어요"라며 울컥했다. 지난해 6월,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향해 세이부에서 뛰던 김라경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존경하는 사토 선배와 약속을 하나 한 게 있어요. 바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자'였어요. 우리는 현재 선수로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공감대를 나눴어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다부진 각오였다. 그 약속이 1년여 뒤 개막전에서 현실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사토 아야미와 김라경이 지난 2일 WPBL 개막전 등판을 앞두고 서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사토 아야미 SNS 그 약속이 현실이 되기까지, 사토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일본의 작은 섬, 가고시마현 아마미시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까지 남자 야구부에서 유일한 여자 선수로 뛰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홀로 도심으로 나와 여자 고등학교 야구부에 입단했다. 그제야 비로소 동성 친구들과 함께 야구를 할 수 있었다. 2009년, 사토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일본에 여자야구 프로리그 JWBL이 야심차게 창설됐다. 이듬해 사토는 꿈에 그리던 일본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2014·2016·2018년에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주관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3회 연속 MVP라는, 대회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누가 봐도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화려한 기록 뒤에는 남몰래 삼킨 좌절도 있었다. 리그 주축 선수로서 JWBL의 몰락을 겪었고, 언제나 흔들림 없어 보였던 그는 입스와 대표팀 탈락까지 경험하기도 했다. 그 몰락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이름은 프로 리그였지만 좀처럼 흥행하지 못했다. 한때 4개 팀까지 늘었던 리그는 선수 이탈이 이어지며 서서히 쪼그라들었고, 2021년 소속 선수가 0명이 되면서 그해 12월 소리소문 없이 무기한 중단을 선언했다. "야구를 하고 싶어 하고, 하고 있는 소녀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장이 사라져버린 것이 정말 안타까웠어요."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위치한 WPBL 선수단 숙소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사토는 그때를 이렇게 돌아봤다. 지난해 WPBL 창설 계획이 발표된 후 사토에게 물었을 때, 사토는 WPBL의 성공 조건에 대해 이렇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야구의 '본질'을 알려야 해요." 그는 일본 여자 프로야구 리그 실패의 이유를 되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이 아이돌처럼 옷을 입고 행동했고, 연맹도 아이돌을 홍보하듯 여자야구 리그를 홍보했어요"라는 뼈아픈 자기비판이었다.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건 예쁘게 치장한 여자 선수가 아니라, '야구'하는 여자 선수였다는 것을, 그는 리그가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리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사토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대단한 각오가 아니었다. 그저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 그뿐이었다. "제가 뛸 수 있는 곳에서, 야구를 시작했을 당시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줄곧 이 야구에 매진해 왔어요." 사토는 미국에서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 동기 부여의 원천이 다른 무엇도 아닌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 있다고 밝혔다. 후배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스스로 야구를 좋아하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롤모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과거 자신도 야구를 계속할 환경을 찾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후배 선수들만큼은 그런 어려움을 덜 겪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그가 지금도 공을 놓지 않는 이유였다. 그 마음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미 위대한 투수임에도,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캐나다 남자팀의 문까지 두드렸다. 2024년 12월 3일, 사토는 캐나다 세미프로리그인 인터카운티 야구 리그 소속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와 계약하며 해당 리그 최초의 여성 선수가 됐다. 직구 최고 128km/h에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지는 그는, 명성과 이름값에 비해 소탈했고 야구 앞에서는 한없이 순수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캐나다 남자팀의 문까지 두드릴 만큼 다부졌던 그였지만, 정작 여자야구 프로 무대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는 사실 그 자신조차 믿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만난 인터뷰에서 사토는 담담히 말했다. "한 번 일본에서 프로 리그가 사라진 뒤에, 다시 프로 리그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기대도 희망도 없었지만, 사토는 손에서 공을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WPBL의 탄생은 그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이 시점에 여자 프로 야구가 생겼다는 건, 정말 저 자신도 깜짝 놀랐고, 정말 기쁘고, 기쁘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꿈만 같은 시간이에요." 그리고 2026년, 그 야구 사랑은 새로운 무대로 이어졌다. WPBL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로스앤젤레스(LA) 퀸즈의 지명을 받은 사토는 동시에 리그의 특별 고문으로도 영입됐다. 사실 그의 역할은 리그가 채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시작됐다. 리그 창설을 주도한 저스틴 시걸 등 관계자들은 세계 대회에서 줄곧 우승해온 일본 여자야구 선수들의 수준을 눈여겨봤고, "이 리그도 프로 리그로 만들고 싶다"며 일본 선수들도 많이 참가해주길 바란다는 뜻을 사토에게 전해왔다. 국제무대 경험이 많은 현역 일본 선수가 많지 않았던 터라, 사토는 자연스럽게 일본과 WPBL 사이의 가교가 됐다. "WPBL의 정보를 일본인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어요." 다만 일본에서 유일하게 여자 프로야구가 있었던 시절의 경험을 전해줬을 뿐, 스타일도 문화도 다른 미국 무대의 역사와 브랜딩까지 참견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그는 선을 그었다. "선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정도"라는 겸손함이었다. JWBL의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통과한 레전드로서, 그는 "WPBL에선 야구의 본질을 제대로 전해준다면 성공하지 않을까 해요"라고 말했다. 선수이자 조언자, 두 개의 이름표를 동시에 단 채로. WPBL에서 뛰고 있는 사토 아야미(LA 퀸즈)의 모습. ⓒWPBL 사무국 제공(사진작가 jackie kalafut 촬영) 지난 2일 개막전은, 그 모든 서사가 한 장면으로 응축된 순간이었다. 서로를 너무나 아끼는 두 선후배가 나란히 마운드에 오른 순간이었다. 승부는 걸려 있었지만, 그 무게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 것은 다른 감정이었다. 리그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던 선배와, 그 선배를 보며 꿈을 키워온 후배가 마침내 같은 꿈의 무대 위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 1년여 전 김라경이 다짐했던 약속,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자'는 말은 이날 두 사람이 나란히 선발 마운드에 오르며 비로소 현실이 됐다. 사토는 김라경의 야구 인생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전 세계 여자 야구 선수들에게 의미 있는 이 개막전에서 나란히 선발로 맞대결을 펼친 순간은 그에게도 각별했다. 결과에 대해서는 웃으며 이렇게 평가했다. "김라경의 투구 내용이 더 좋았지만, 우리 팀이 이겨서 다행이었어요." 실제로 이날 사토는 3이닝 10피안타 7실점(4자책)으로 고전했고, 김라경은 4이닝 4실점(2자책)으로 제몫을 해냈지만, 사토의 LA 퀸즈는 김라경의 뉴욕 하이츠를 상대로 막판 대량 득점을 뽑아내며 10-8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결과적으로 두 선발투수 모두 개인 승패 기록 없이 마운드를 내려온 셈이다. 유머러스한 한마디 속에 후배를 향한 다정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김라경이 생활 패턴부터 야구를 대하는 자세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신기하면서도, 그렇게 노력하는 선수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인터뷰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전해주는 후배에게, 사토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WPBL에서 뛰고 있는 사토 아야미(LA 퀸즈)의 모습. ⓒWPBL 사무국 제공(사진작가 jackie kalafut 촬영)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사토에게 남은 시즌을 완주하는 방법을 묻자, 그는 결과를 먼저 좇기보다 자신이 준비해온 것을 온전히 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낯선 해외 생활이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페이스를 찾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 그 자체를 그는 '책임감'이라 정의했다. 준비를 마친 뒤에는 그저 실행에 옮길 뿐, 결과는 해봐야 아는 것이므로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데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실제 성적표는 아직 요동치고 있다. 2일 뉴욕 하이츠와의 개막전에서 3이닝 10피안타 7실점(4자책)으로 고전했던 그는, 8일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전에서는 5이닝 4피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선보이며 12-3 대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13일 같은 상대와의 재대결에서는 4이닝 10피안타 6자책으로 무너지며 2-8 패배를 안았다. 세 경기 평균자책점은 크게 출렁였지만, 그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숫자가 하나 있다. 12이닝 동안 내준 볼넷은 단 1개. 안타를 맞고 실점을 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무너지는 법이 없는, 흔들림 없는 제구였다. 그가 말한 '책임감'이 숫자로 드러난 셈이었다. 성적은 오르내려도, 경기장 밖에서 그의 시선은 늘 다음 세대를 향해 있다. 미국의 어린 소녀 팬들에게 사인을 요청받을 때마다 사토는 더없이 기쁘다고 말한다. 뛰어난 경기력만큼이나, 아이들이 동경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 역시 여자 프로야구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경기장을 찾은 팬 누구도 그날의 발걸음을 후회하지 않도록, 안팎에서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선수들 각자가 짊어진 책임감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정작 경기장 분위기는 축제처럼 즐겁다. 사토는 그 이유를, 야구를 계속하기 어려웠던 선수들이 이제야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즐거움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선수와 관중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이 분위기가 더 널리 퍼져, 더 많은 사람들이 리그를 응원하고 더 많은 소녀들이 야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그는 바란다. 국적과 나이를 넘어 전 세계 선수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진짜 동료로 뛰고 있는 이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사토는 덧붙였다. 스스로 조용히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이날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마친 사토는 소속팀 경기가 없는 날이라 숙소에서 쉬겠다고 했지만, 이내 조용히 경기장을 찾아 빈자리를 묵묵히 채웠다. 선수로서 이 리그에 기여하고, 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동료들의 플레이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봤다. 사토 아야미가 미국의 어린 소년, 소녀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WPBL 중계화면 인터뷰의 끝에서 사토는 이 무대를 가능하게 한 이들을 잊지 않았다. 리그 창설자인 저스틴을 비롯해, 과거 야구를 계속할 환경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야구를 포기하거나, 여자 리그가 있는 소프트볼로 전향해야 했던 스태프들에게 그는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이 꿈의 무대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리그가 비단 야구뿐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 환경 속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에게 희망과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며,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 어려움과 억울함에 부딪힌 이들에게 그는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노력한 경험과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은 오직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어려움에 굴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도전을 계속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 초반, 사토는 WPBL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 나라를 불문하고, 야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여자 야구 선수들이 꿈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그는 말을 이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전 세계의 여자 선수들이 이곳에 모여 경기를 펼친다는 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예전의 여자 프로야구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야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소녀가, 리그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본 어른이 되어, 이제는 자신을 우상으로 여기는 후배와 나란히 그 꿈의 마운드 위에 섰다. 그 눈물의 정체를 물었을 때 사토는 이렇게 한마디로 답했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랄까요." 여성신문과 인터뷰한 사토 아야미가 활짝 웃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황혜정 객원기자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국가대표팀퍼포먼스고등학생 -
생활공포 영화 틀었을 뿐인데... 10분만에 우리 가족이 겪은 일
[영화로 '오싹한' 여름나기] 처참히 실패한 공포 영화 도전기가 준 의외의 선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대를 막론하고 아이들의 영원한 스테디셀러는 공포 이야기다. 달걀귀신부터 홍콩 할머니 귀신,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괴담까지, 공포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모습만 바뀔 뿐이다. 특히 공포물은 더위를 잊게 하는 특별한 묘미가 있다. 등줄기를 타고 찌릿하게 내려오는 서늘함,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순간의 짜릿함! 오싹함을 즐기기에 이보다 완벽한 장르가 또 있을까. 얼마 전, 중학생인 딸이 자기 친구들이 다 공포물 마니아라며 친구들이 공포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소외감을 느낀다는 고민을 얘기했다. 친구들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 귀신 이야기며, 잘 때도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잔다는 거였다. "까짓. 우리도 보면 되지 뭐" 하고 고등학생인 아들과 나는 함께 공포 영화를 봐주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고르려니 서로 눈치를 보며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참 OTT를 헤매다 아들이 "요즘은 살목지가 유행이니까 그거 보자"라고 했다. <살목지>는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 속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공포 영화다. 딸은 이 영화를 본 친구들이 무섭다고 했다며, 괜찮을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이거 다 허구야. 분장한 사람들이라고! 세상에 귀신은 없어" 호기롭게 공포 영화 틀었는데... ▲ 영화 <살목지> 촬영 현장. ⓒ 쇼박스 그러면서 완벽한 공포 체험을 위해 "중간에 자리 이탈하기 없기"라고 했다. 암막 커튼을 치고 TV 화면을 가까이에 두었다. 과자와 음료까지 준비하니 그럴듯한 영화관이 완성됐다. 처음에는 모두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아들은 "이 정도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라며 큰소리를 쳤고, 딸도 태연한 척 화면을 바라봤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을 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묘한 긴장감이 거실을 압도했다. 온 집안을 휘감는 기분 나쁜 음향. 컴컴한 화면 너머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인물들의 동작 하나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공포 영화 특유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설마… 여기서 뭐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싶어 마음이 졸아 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눈을 가릴 듯 말 듯,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숨을 죽였다. 아이들과의 이런 스킨십은 얼마 만이려나. 어느 순간부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나와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고 몸도 마음도 멀어지는 듯한 기분에 괜스레 서운한 감정이 몰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나에겐 귀신보다 더 서늘하고 무서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은 감상에 젖어있었다. "으아아아악!!" 그때 딸이 목이 찢어지라 비명을 질렀다. 나와 아들은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 "왜? 왜?" "뭔가 내 다리를 스쳐 지나갔어!" 딸아이는 다리를 끌어올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얼른 안심시키려 했다. "느낌적인 느낌일 거야." "하루살이가 붙었다가 날아간 거 아닐까? 에어컨 바람이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우리 셋 모두, 소파 주변을 힐끔힐끔 살피고 있었다. 내가 분위기를 풀어보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진짜 귀신 아니야?" 그 순간, 아들과 딸의 짜증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우아아아악" 방문 앞의 흐릿한 형체 ▲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결국 우린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끝이 뭐야. 영화 시작한 지 10여 분 됐을 때 일어난 일인 걸. 아직 본격적으로 누군가 다치지도 그렇다고 귀신이 등장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야심 찬 공포 영화 관람은 <살목지> 초반에 실패로 끝났다. '더위를 날려버리겠다'며 시작했는데, 더위는커녕 밤새 끈적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날 밤, 새벽에 자고 있는데 방문 앞 인기척에 갑자기 눈이 뜨였다. 흐릿한 형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겁하며 상체를 벌떡 일으킨 순간, 흐릿한 형체가 입을 열었다. "엄마... " "어후 깜짝이야"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 자꾸 아까 영화에서 본 장면이 생각나." "우리가 무슨 영화를 봤다는 거야.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껐잖아." 고작 몇 분이나 봤다고, 베개를 꾹 껴안은 딸이 안방으로 피신해 왔다. 뒤이어 아들 녀석까지 이불을 질질 끌고 쭈뼛쭈뼛 기어들어 왔다. "엄마, 나도… 무서운 꿈 꿨어. 오늘만 여기서 잘래." 결국 그날 밤, 우리 집 안방은 합숙소가 되었다. 아이들은 쾅 닫혀있던 방문을 스스로 열고 찾아왔다. 평소라면 쑥스럽고 어색해서 하지 않았을 스킨십과 대화까지 이어준 공포 영화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오싹하게 더위를 날려줄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런 효능까지 있다니. 공포 영화 관람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사춘기라 평소엔 말 한마디 섞기도 힘들던 아이들과, 살 맞대고 엉겨 붙었던 '스킨십'은 성공적인 여름밤이었다. 언젠가부터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방문을 꼭 닫고 지내나요? 겁 많은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올여름이 가기 전, 공포 영화 관람을 추천합니다.
촬영 현장고등학생유튜브부작용OTT -
경제 | 생활문화KoN, ‘파가니니’로 증명한 끝나지 않은 무대…“바이올리니스트 넘어 진짜 예술가로” [SS인터뷰 ②]
집시바이올리니스트 그 이상…끝없는 예술 확장 수식어 모두 떼고, 오로지 ‘KoN’이라는 이름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KoN(본명 이일근, 47세)은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술가다.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로 출발했지만 재즈와 현대음악, 집시 음악 등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음악적 영역을 넓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 후 개인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는 작곡가이자 뮤지컬 배우, 화가,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KoN은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19세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자유로운 영혼을 무대 위에 되살리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KoN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도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오래 이어갔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집시바이올리니스트’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바이올린과 음악, 연기, 미술을 넘어 ‘KoN이라는 예술가’ 자체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 6살에 시작한 바이올린…“무대에 서면 살아있는 느낌” KoN이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것은 6살 때다. 오랜 시간 무대에 선 만큼 공연 자체가 익숙할 법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순간을 특별하게 여긴다. 현재 출연 중인 ‘파가니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매회 공연을 앞두고 긴장하기보다 모든 무대가 소중하고 행복하다. 무대에 서면 ‘여기에서 왔다’라는 감정을 느낀다. 살아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체력적인 부담은 분명하다. 무대 위에서 3층까지 오르내리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데다 바이올린 연주까지 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뒤 커튼콜에서 쏟아지는 박수를 마주하면 힘들었던 순간이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했다. 그가 매 공연을 ‘럭키드로우’라고 표현하는 이유에 대해 “오늘 공연을 본 관객에게는 오늘의 무대가 평생 한 번뿐인 경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오늘 잘하고 내일 못하면 ‘별로였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매번 팔이 부러져라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 관객이 많을수록 더 커져야 하는 아티스트의 에너지 KoN에게 관객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존재다. 그는 관객이 두 명뿐인 작은 재즈클럽부터 6만 명 규모의 스타디움까지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특히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에 앞서 펼쳐진 생방송 축하 무대를 장식했다. 당시 관중 앞에서 연주하면서 “떨리는 수준을 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에너지를 느꼈다. 6만 명의 파동이 밀려오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다”라고 회상했다. 무대를 대하는 방식은 명확하다. 관객에게 압도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 관객의 기운에 함몰되는 순간 무대의 주도권을 잃는다는 설명이다. KoN은 “플레이어는 관객보다 한 명 더 큰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관객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아티스트에게서 나와야 그 안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장르와 무대를 넘나들며 얻은 자신만의 공연 철학이다. ◇ 부전공으로 선택한 성악…‘음악의 본질’ 깨달음 KoN의 음악 세계가 넓어진 데에는 성악 공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울대 음악대학 재학 당시 성악을 부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미래의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꿈꿨던 대학에 진학한 뒤 또 다른 영역을 공부하며 바이올린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성악을 배우며 KoN은 ‘노래하듯 연주한다’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이해했다. 그는 “바이올린은 악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반면 성악은 사람의 몸 자체가 악기”라고 설명했다. 악기는 연주자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체를 거쳐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악은 자신의 몸과 목소리가 곧 악기다. 서로 다른 방식의 음악을 경험한 것”이라며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라고 덧붙였다. ◇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액터뮤지션으로…‘파가니니’를 만나다 KoN에게 뮤지컬은 단순한 외도가 아니다. 바이올린 연주와 연기, 퍼포먼스를 하나의 무대 언어로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다. 바이올리니스트와 배우가 하나의 인물 안에서 만나는 액터뮤지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파가니니’는 실제 파가니니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클래식, 현대음악, 탱고, 집시 음악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뒤섞어 극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극 중 ‘악마의 연주’가 3파트로 펼쳐진다. 특히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2막 마지막 바이올린 독주 ‘라 깜파넬라(La Campanella)’는 악기 하나만으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관객 몰입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이때도 KoN은 그만의 음악 세계를 확장, 파가니니의 분노와 환희를 교차시킨 연주로 숨통을 조이는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연주 장면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KoN은 “진짜 파가니니 곡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서 뮤지컬 속에서 악마처럼 보이는 건 아니다. 관객이 ‘저 사람이 악마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라며 극 중 일부러 노이즈와 굉음까지 음악의 일부로 활용하는 이유를 밝혔다. 뮤지컬과 클래식 공연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파가니니’는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 기사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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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헬멧 없이 오토바이 질주한 10대…차량 들이받고 사망
[앵커] 헬멧도 없이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몰던 고등학생이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았습니다.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신선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도로를 역주행합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 옆을 지나칩니다. 그 뒤를 순찰차가 쫓아갑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고등학생 A군, 헬멧을 쓰지 않고 번호판도 없는 오토바이를 몰다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달아나는 겁니다. 경찰을 피해 도주하다 그만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사고가 난 현장입니다. 오토바이는 차량과 부딪친 뒤 이곳까지 튕겨져 날아왔습니다. [김진영 / 목격자] "쿵 소리가 났는데 오토바이는 여기 가 있고, 그분(운전자)은 여기 떨어져 있었어요. 경찰차가 바로 와가지고 심폐소생술 하고."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 A군은 결국 숨졌습니다. 경찰은 사고를 우려해 추격을 중단하고 서행하며 뒤쫓았지만, A군은 단속 지점으로부터 1km 가량 달아나다 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찰은 당시 순찰차를 운전한 경찰관이 사고의 참고인 신분인 점을 감안해 해당 경찰관 소속 경찰서가 아닌 다른 경찰서로 수사를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채널A 뉴스 신선미입니다. 영상취재 : 박재덕 영상편집 : 이태희
심정지 상태심폐소생술고등학생경찰서경찰관 -
사회헬멧 안쓰고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 몰다가 경찰 정차 명령에 달아나던 고교생, 주차된 차량 들이받고 사망
◇사진=연합뉴스 오토바이를 몰던 고등학생이 순찰차의 정차 명령에 불응한 채 달아나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아 숨졌다. 12일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7분께 양평군 양평읍 대흥리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10대 고등학생 A군이 중앙선을 침범한 뒤 맞은편 인도에 주차돼있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크게 다친 A군은 심정지 상태로 인근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당시 순찰차에 탑승하고 있던 경찰관은 A군이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번호판이 부착돼있지 않은 오토바이를 몰던 것을 발견하고 정차 지시를 했다. 그러나 A군은 그대로 오토바이를 몰고 달아났고 이 과정에서 순찰차와 500m가량 추격전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경찰은 추격을 중단하고 서행했으나 A군은 이후로도 약 500m 더 도주하다가 최초 정차 명령이 내려졌던 지점으로부터 약 1㎞ 떨어진 곳에서 사고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순찰차를 운전한 경찰관이 사고의 참고인 신분인 점을 고려해 해당 경찰관이 소속된 양평경찰서가 아닌 다른 경찰서로 사건 수사를 이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 블랙박스와 CCTV 등을 토대로 자세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정지 상태연합뉴스고등학생경찰서경찰관 -
사회황정민 사생활 폭로자, "보고싶어" 극단 시도 알린 뒤…미성년 아들에게도 연락
배우 황정민을 스토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 A씨가 황정민 아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이동훈 photoguy@ 배우 황정민을 스토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 A씨가 황정민 아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황정민의 고소장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2월10일 오후 10시쯤 황정민의 고등학생 아들에게 "XX씨 제가 이런 일로 톡하게 될 줄 몰랐는데"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같은 날 황정민에게도 "오빠 편해지게 죽으라고 하세요", "학교폭력 피해자가 왜 10년 지나고도 괴롭다가 결국 못 견디고 연락하거나 폭로하는지 지난 두어 달간 새삼 느꼈어요", "보고 싶은데 계속 이렇게 되니까" 등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또 "크리스마스, 연말, 새해 줄줄 방안에서 혼자 목매달게 하더니"라며 자신이 자살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황정민은 앞서 2023년 12월 A씨에게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통보한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A씨가 아들에게도 연락하자, 한달 만인 3월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남을 가졌다. 황정민은 고소장에서 "가족에게도 A씨의 자살 협박 및 연락·만남 강요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A씨가 아들 연락처를 일방적으로 알아내 카카오톡 메시지를 송부했다는 점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껴 어쩔 수 없이 A씨를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연락을 일부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황정민은 A씨가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경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A씨를 자극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어조로 대응했다"고 덧붙였다. /사진=이동훈 photoguy@ 황정민은 고소장에서 "가족에게도 A씨의 자살 협박 및 연락·만남 강요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A씨가 아들 연락처를 일방적으로 알아내 카카오톡 메시지를 송부했다는 점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껴 어쩔 수 없이 A씨를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연락을 일부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황정민은 A씨가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경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A씨를 자극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어조로 대응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A씨는 머니투데이에 보낸 자료를 통해 "황정민과 관계 단절에 충격받아 약 40일간 칩거했다. 이 기간 자살을 시도한 것이고, 이 사실을 황정민에게 고지하거나 예고한 적이 없다. 이미 발생했던 정신적 붕괴를 뒤늦게 말한 것이기에 황정민을 압박하기 위해 예고·통보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A씨는 2023년 8월부터 2024년 말까지 황정민과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왔다는 입장이다. A씨에 따르면 A씨와 황정민은 2023년 7월 영화 '밀수' 시사회에서 만나 연락처를 교환했고, 그해 8월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 술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황정민은 같은 해 9월 루마니아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도 A씨와 만나 술을 마셨다. A씨는 이 자리에서 황정민으로부터 같이 주류브랜드를 론칭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고도 했다. A씨는 이후에도 황정민과 두 차례 더 만났으며, 성관계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해 5월을 끝으로 황정민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이에 그는 같은 해 8월1일 해외 제작사 등에 황정민과 관계를 담은 메일을 보냈고, 이로 인해 황정민으로부터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법원은 지난 2월 A씨에 대해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다만 A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신청한 상태다. 황정민의 소속사 샘컴퍼니는 "악의적으로 편집된 게시물에 대해 추가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라며 "이와 같은 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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