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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역 기자가 말하는 장마철 ‘북한 수공설’의 진실 [전국 인사이드]
한국은 서울보다 큽니다. 전국 곳곳에서 뉴스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전국 인사이드’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7월21일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군남댐에서 수위 조절을 위해 강물을 방류하고 있다.©연합뉴스 장마철 임진강에서는 모인 빗물을 두고 남북한의 공방이 벌어진다. 임진강은 남한과 북한에 걸쳐 있는 ‘공유하천’이다. 북한 쪽 임진강에는 저수용량 3억t급 황강댐이 있는데, 장마철 황강댐의 물을 갑자기 방류하면 남한 쪽에 짧은 시간 많은 양의 물을 보낼 수 있다. 2009년 9월 북한의 예고 없는 방류로 임진강 물이 넘쳐 야영객 등 민간인 6명이 사망하며 무단 방류의 위험성이 부각되었다. 사고 이후 남북은 협의를 통해 황강댐을 방류할 때 미리 알려주기로 했지만, 2013년부터 북한은 별도 통보 없이 방류하고 있다. 올해도 장마철 북한에서 황강댐 물을 무단 방류해 평소 1m 정도인 수위가 10m까지 올라갔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어민들의 통발 등 어구가 손실되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무단 방류를 ‘수공(水攻)’이라 칭하며 강한 경계와 우려, 적개심을 드러낸다. 실제 무단 방류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일까? 사실 수공이라는 단어에 담긴 위협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황강댐 남쪽 군남댐의 역할이 가장 크다. 군남댐은 2009년 사고 이후 황강댐에서 방류된 물을 적절히 조절해 하류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두 댐의 거리는 약 56.2㎞로 ‘물폭탄 공방’의 관점에서 황강댐이 창이라면 남한 쪽에 있는 군남댐은 방패 같은 형상이다. 군남댐은 극한의 홍수 상황에서도 하류 제방이 범람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결국 북한이 황강댐을 고의로 붕괴시키지 않는 한 임진강 하류 일대에 홍수가 날 확률은 매우 낮다. 정부는 임진강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부근에 위치한 필승교 수위를 실시간으로 관측하며 4단계로 나눠 기민하게 대응한다. 북한 황강댐에서 초당 500t가량 물을 방류하면 아래에 있는 소규모 댐인 ‘4월5일댐’ 등을 거쳐 군남댐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이 시간 동안 낚시객이나 야영객 대피 조치만 잘하면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다. 요즘은 위성으로 황강댐을 감시해 예전보다 빨리 방류를 포착할 수 있다. 2016년 여름, 군남댐에 몰려든 취재진 과장된 위협은 오히려 지역 이미지 하락, 국민적 피로감 누적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6년 여름 대다수 언론에서 북한의 무단 방류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며 위험성을 부각했다. 방송국이 군남댐에 중계차를 보내 라이브 방송을 할 정도였다. “북한에서 방류한 물이 몇 시간 후 도착한다”는 당국 발표에 기자들이 군남댐 주변 현장에서 장시간 대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쓰나미 같은 많은 물이 몰아치는 그림을 기대한 기자들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만 구경하다 철수했다. 언론에서 하도 떠드니 지역에서 수십 년 산 주민들도 불안해 현장에 나와 볼 정도였다. 당시 지역 기자로서 ‘대세에 편승해’ 열심히 보도한 필자에게도 주민들과 독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왜 우리 동네를 과도하게 위험지역으로 묘사하느냐” “북한의 무단 방류 위협을 부풀리는 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항의였다. 다만 갑작스러운 수위 상승과 유속 증가로 일부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임진강이 생업의 터전인 어민들에게는 직격탄이다. 통발 설치와 회수는 시간이 오래 걸려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 일기예보를 믿고 통발을 설치했는데 갑자기 북한이 방류하면 통발이 떠내려가 치명적이다. 황강댐 방류 문제를 과대·과소 평가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현재로서는 가용자산을 최대한 동원해 차분히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장마철마다 남과 북이 소통하며 방류 시점과 양을 조절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더 중요한 대화도 단절된 현 상황에서 이는 요원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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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 영화‘호프’에는 음문석이 있대니께유 [SS인터뷰]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함께하고 싶은 감독이 있다. 음문석에게 그 이름은 나홍진이었다. 영화 ‘호프’를 통해 오랜 꿈을 이룬 음문석은 짧은 등장만으로도 가장 기묘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양배를 완성했다. 음문석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호프’를 통해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황홀하다”며 특유의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호프’는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믿을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음문석은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 되는 의문의 목수 양배 역을 맡았다. “배우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무대인사를 가면 아직도 저를 못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우리 집에 있대니께유’라고 대사를 먼저 하면 그제야 ‘양배다!’ 하면서 알아보시더라고요.” 양배는 중반부 이후 첫 등장한다. 꼬질꼬질한 옷차림에 어딘가 기묘하고 불쾌한 느낌을 풍기는 양배는 어디서 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첫 등장부터 그가 어떤 인물인지 경계하게 만든다. “처음 감독님이 ‘양배는 이상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니다. 절대 악이다’라고 설명해주셨는데 그 말이 오히려 너무 어려웠어요. 자료도 찾아보고 심리학도 공부해봤지만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돌파구는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왔다. 지인의 어린 조카를 보며 캐릭터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조카가 위험한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노는 모습을 봤어요. 아이는 아무 의도가 없는데 어른 눈에는 그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양배도 이런 결이구나’ 싶었어요.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공포를 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캐릭터가 풀리기 시작했어요.” 어린 아이의 순수한 모습에서 출발한 음문석 표 양배는 독특한 말투와 행동,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도 나홍진 감독과 함께 현장에서 만들어갔다. “가짜 치아 분장을 하고 연기하다 보니 입안이 계속 말랐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윗잇몸을 한번 훑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작은 행동 하나도 캐릭터처럼 보였던 거죠. 비주얼부터 디테일까지 감독님이 정말 세밀하게 디자인해주셨어요.” 오디션 과정 역시 잊지 못할 기억이다. 충청도 출신인 그는 나홍진 감독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충청도 사투리 연기를 선보였고, 그것이 양배의 말투로 이어졌다. “제가 ‘곡성’을 보면서 충청도 말투가 느껴졌다고 말씀드렸더니 감독님이 ‘그럼 이번엔 충청도 사투리로 해보자’고 하셨어요. 연기를 마쳤는데 감독님이 피식 웃으시는 게 보였어요. 그 순간 ‘배우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홍진 감독을 두고 흔히 ‘타협 없는 연출가’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음문석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감독님은 오히려 배우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머릿속에는 분명한 그림이 있지만, 그 안에서 배우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충분히 존중해주세요. 덕분에 양배를 함께 완성해갈 수 있었어요.” 지난 2005년 1집 앨범 ‘SIC 1집’으로 데뷔한 음문석은 가수부터 리포터, 배우 등 다양한 활동을 거치며 어느덧 데뷔 22년 차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리 잡았다. 그 중에서도 이번 ‘호프’는 음문석에겐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그래도 결국 이 일을 떠나지 않았다는 게 가장 감사해요. 예전부터 조금씩 성장하자는 마음으로 버텨왔는데 ‘호프’를 만나면서 배우로서 크게 성장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조급해하지 않고 한 계단씩 올라가고 싶어요.” 이와 함께 음문석은 ‘호프’의 속편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내비쳤다. “그건 감독님만 알고 계시죠.(웃음) 마지막까지 죽지는 않았으니까 희망은 가져보고 있습니다.” sjay0928@sportsseoul.com 기사추천 0
나홍진 감독비무장지대황정민디자인나홍진 -
사회압구정 현대 보고 ‘깜놀’…30년만에 한국 온 교수, 충격받은 이유
━ 한국 아파트 연구 30년…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갖는 공간적 의미를 탐구해온 발레리 줄레조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사진 Nadia Abdelwahed] “30년이 지나면 다시 짓는다.” 한국 아파트를 처음 연구하던 시절 수없이 들었던 그 말을 확인하기 위해 프랑스 지리학자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대표작 『아파트 공화국』의 토대가 된 1996년 처음 서울 현장 연구에 나선 지 30년. 당시 렌즈에 담았던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찾아가 보니 그 자리엔 거짓말처럼 재건축 홍보관이 들어서 있었다.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문화지리학 교수이자 한국 사회와 공간 연구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한국학자다. 지난 30여 년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연구를 이어온 그는 최근 2년간 서울대 방문연구원으로 머물며 가장 길었던 한국 생활을 마무리했다. 줄레조 교수에게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는 “공간은 사회와 분리된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드는 동시에 사회를 다시 만들어내는 ‘사회적 실체’”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와 비무장지대(DMZ)는 그에게 단순한 건축물이나 경계선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욕망과 권력, 역사와 삶이 응축된 공간이다. 한국의 아파트를 ‘연구 대상’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직접 겪어본 그에게 ‘아파트 공화국’에 대한 견해와 경험담을 들어봤다. 현장 연구 2007년 『아파트 공화국』 출간 Q : 새 프로젝트인 ‘아파트: 30년 후’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나. A : “출발점은 매우 단순한 질문이었다.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한국의 건축가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아파트가 30년 정도 사용되도록 만들어졌다’고 했다. 파리에서 내가 사는 공동주택이 1916년 지어졌듯 유럽에선 집을 아주 오랜 기간 유지하지만 한국은 처음부터 ‘30년 뒤 다시 지어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Q : 2007년 『아파트 공화국』 출간 때 “30년 후 아파트 수명이 다하면 한국 사회는 거대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했는데. A : “당시엔 나조차도 그 의미를 온전히 체감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연구했던 아파트들의 연식이 정말 30년이 되는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사례로 다뤘던 서울시내 7개 아파트 현장을 모두 다시 찾아가 봤다. 1996년 촬영했던 정확히 같은 장소에 서서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자연스럽게 그곳 주민들과 대화가 이어졌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는 일 자체가 한국 아파트의 현재를 기록하는 현장 연구가 됐다.” Q : 다시 찾은 곳 중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나. A : “압구정 현대아파트다. 예전 연구 당시 책에 실었던 사진 속 바로 그 지점에 갔는데, 정확히 그 자리에 재건축 홍보관이 들어서 있었다. ‘시간의 순환’을 피부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30년 수명’의 아파트 재건축 문화는 비교지리학자인 그의 눈에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유럽에서 집은 시간을 견디며 보존하는 대상인 반면, 한국의 아파트는 재건축을 전제로 생애주기를 설계한다는 게 낯선 풍경이었다. 그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아파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노후화되고 주변화돼 관리가 까다로운 주거 형태로 인식된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끊임없이 헐고 다시 지어지며 오히려 부와 신분을 상징하는 고급 자산으로 재탄생한다”고 진단했다. 줄레조 교수가 직접 찍은 1996년 압구정 현대아파트(위)와 재건축 홍보관이 들어선 2026년 현재 모습. [사진 Vale´rie Gele´zeau] 실제로 그가 1996년 기록했던 아파트 단지는 지금 서로 다른 속도로 재건축을 맞고 있다. 방배동 삼익아파트는 새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재건축 홍보관이 들어서며 변신을 앞두고 있다. 30년 전 기록과 오늘의 풍경을 겹쳐 보는 것만으로도 한국 아파트가 지나온 시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Q : 최근 2년간 서울에 장기 거주한 경험은 연구자로서의 관점에 어떤 영향을 줬나. A : “연구자로 아파트를 바라보는 것과 실제 거주자로 경험하는 것은 분명 달랐다. 아파트는 단순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공간이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가 핵심이다. 내가 오래도록 관심을 가져온 것도 건축 자체보다는 ‘건축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관계’다. 이번 서울 체류는 연구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아파트를 일상의 삶 속에서 다시 이해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Q : 그새 한국도 많이 변했을 텐데. A : “1989년 12월 처음 서울에 왔을 때만 해도 강남 거리는 온통 공사 중이었고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진흙길을 걸어야 했다. 나는 아직도 석유 난로 냄새를 맡을 때면 당시 서울로 돌아가곤 한다. 지금처럼 거리 1층마다 유럽식 카페가 늘어선 풍경도 없었다. 당시의 다방은 대부분 건물 지하나 2층에 자리했다. 도시의 공공 공간도 재탄생했다. 특히 한강공원·청계천·여의도 등 물과 연결된 공공 공간은 이전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비약적인 변화를 이뤘다.” Q : 그렇다면 변하지 않은 것은 뭔가. A :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은 건 ‘아파트를 향한 열망(desire)’이다.” 줄레조 교수는 인터뷰 내내 ‘열망’을 한국 아파트 연구의 핵심 개념으로 반복해서 언급했다. 재건축이 진행되고 도시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지만, 사람들을 아파트로 향하게 하는 사회적 동력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한국의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중산층 진입의 꿈과 자산 형성, 사회적 지위를 향한 욕망이 응축된 공간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의 연구 전반을 관통한다. 2008년 총선 때는 아파트 단지를 ‘중간계급 제조공장’이라 규정하며, 낙후 지역을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과정이 주민들의 계층 상승 욕망을 자극하고 지역의 정치적 지형까지 바꾸는 메커니즘을 집중 분석하기도 했다. 지금도 재건축이 자산과 계층 이동의 상징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6월 DMZ 평화의 길을 따라 트레킹하고 있는 발레리 줄레조 교수. [사진 Oh KeumJoo] 아파트뿐 아니라 한반도의 ‘경계 공간’ 역시 그의 오랜 탐구 대상이었다. 줄레조 교수는 2024년 개방된 DMZ 평화의 길을 따라 500㎞를 직접 걸으며 군사적 긴장과 생태 환경, 지역 주민의 삶이 교차하는 공간적 특성을 탐구했고 그 결실로 최근 저서 『Marche et demarche a la frontiere coreenne(한국 경계 지역에서의 걸음과 탐구)』를 출간했다. 지난 6월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신간을 선보이며 직접 발로 뛰면서 기록한 DMZ 현장 연구의 경험을 국내 독자들과 나누기도 했다. Q : 아파트와 DMZ,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공간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A : “두 공간 모두 한국 사회의 본질을 가장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란 점이다. 아파트가 한국인의 삶과 욕망이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보여준다면 DMZ는 분단이란 역사가 한국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보여준다. 또 하나는 독보적인 ‘한국적 특수성’이다. 최근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노래 ‘APT.’처럼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집을 넘어 특별한 문화적 위치를 지닌다. DMZ 역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과 국경이라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맥락을 갖고 있다.” 아파트와 DMZ, 한국 본질 비추는 거울 Q : DMZ에선 왜 직접 걷는 방식을 택했나. A :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눈으로 보고(시각), 사람들과 이야기하는(언어) 것을 넘어 공간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걷기는 그 세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실제 DMZ를 직접 걸어보면 군사구역과 관광지, 농경지가 뚝뚝 끊기듯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그동안 DMZ 연구가 생태나 안보·관광·지역발전 등을 각각의 주제로 다뤄왔다면 직접 걷는 방식은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공간 안에서 함께 읽어낼 수 있게 했다. 덕분에 단절돼 보이는 DMZ를 하나의 연속된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Q : 오랫동안 한국을 연구해온 학자로서 세계가 한국이란 공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뭐라고 보나. A : “한국 연구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나라’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학은 이른바 아시아 연구, 더 넓게는 지역학의 한 분야다. 동시에 한국의 사회 현상과 그 분석은 서구 중심의 기존 이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국의 아파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양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언어와 개념, 현장의 맥락 속에서 그 함의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런 접근은 자문화 중심적 사고를 넘어 기존 학문 체계를 더욱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줄레조 교수가 30년 넘게 발로 뛰며 벼려온 질문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공간은 사회를 비추는 배경이 아니라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이란 사실이다. 그가 과거에 기록했던 같은 장소를 다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간은 그대로 남아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위에는 시대의 욕망과 권력, 삶의 방식이 켜켜이 쌓여 있다. 지금 이 순간, 한국의 공간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기록해 나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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