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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로카르노영화제 감독상·연기상
스위스에서 열린 79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이 영화 '눈 둘 데가 없네'로 감독상과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주연인 김민희 배우는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홍 감독은 이 영화제에서 지난 2013년 '우리 선희'로 감독상, 2015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김민희도 2024년 홍 감독이 연출한 '수유천'으로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올해 황금표범상은 10대 아들과 그를 혼자 키우는 아버지의 관계를 그린 루마니아 감독 플로린 셰르반의 '유 돈트 빌롱 히어'에 돌아갔습니다.
루마니아아버지10대아들상인 -
연예 | 방송“친일파 타령은 병X짓거리”…윤서인, 하영 논란에 또 폭탄 발언
[스포츠서울 | 윤동언 기자] 만화가 윤서인이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과 관련해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하영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친일파 타령은 헛짓거리”라고 표현하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윤서인은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내 관심은 오직 2026년 친일파 타령이 병X짓거리라는 사실뿐”이라며 강한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어 “1mg의 긍정적인 면도 없는 100% 헛짓거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영이 방송에서 집안 배경을 언급한 것 역시 문제가 될 일이 아니라고 봤다. 윤서인은 “집에 냉장고가 5개 있다고 말했다고 국민적으로 두들겨 패는 사회가 제정신이냐”며 “실제로 집안이 좋고 잘사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또한 하영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친일파 할아버지를 명분으로 멍석말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죽창 들고 몰려다니며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윤서인은 앞서 하영의 친일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옹호성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하영이는 얼른 독도로 달려가 욱일기를 찢고 소녀상을 닦아라”라는 글을 올리며 비꼬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발언은 온라인상에서 역풍을 불렀다. 일부 누리꾼들은 “원치 않는 쉴드”,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하영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하영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증조부가 의사였다고 언급했다. 이후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 관련 기록들이 온라인에서 재조명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안상호는 한국인 최초 일본 의사 자격증 취득자로 알려져 있으며,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과 내선일체를 선전한 기록 등이 전해지면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hellboy321@sportsseoul.com 기사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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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 연예가화제“이런 집안은 자랑해도 된다”…이주승, 국가유공자 조부 덕에 청와대 초청
[스포츠서울 | 윤동언 기자] 배우 이주승이 국가유공자 후손 자격으로 청와대 행사에 참석한 근황을 공개하며 훈훈한 관심을 모았다. 이주승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가유공자 할아버지 덕분에 청와대”, “청와대 쎈데~ 와우”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 행사에 참석한 이주승의 모습이 담겼다.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행사에 참석한 그는 국가유공자 후손으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이주승은 행사 후 받은 기념품도 공개했다. 사진 속 시계에는 ‘대통령 이재명’ 문구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와 함께 “당신이 지켜낸 대한, 우리가 꽃피울 민국”이라는 문구가 적힌 명찰도 공개하며 의미를 더했다. 이주승의 조부 고(故) 이종규 씨는 6·25전쟁 당시 장교로 참전한 국가유공자다. 전역 후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 현장에서 헌신했고, 지난 2월 별세했다. 이주승은 생전 할아버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도 조부모를 찾아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어려운 제자들의 학비를 대신 내줬던 조부의 일화가 공개돼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최근 연예계에서는 집안 배경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주승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 조부의 뜻을 기리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한편 이주승은 다양한 작품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hellboy321@sportsseoul.com 기사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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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 결함 규명 전환점…법원, ECU 사양서 제출 명령
가족 측 "전자제어 오류 검증할 시점" KGM "페달 오조작 부재 입증 의문" 속보=12살 이도현군이 숨진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본지 7월 21일 5면) 민사소송 항소심에서 핵심 쟁점인 전자제어장치(ECU) 사양서 공개 여부를 가리기 위한 절차가 본격화됐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민사2부(심영진 부장판사)는 13일 도현군 가족이 KG모빌리티(KGM)를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변론준비기일을 열고 KGM에 ECU 사양서 목차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내달 4일 비공개 변론기일에서 전체 문서 중 제출을 명령할 범위를 심리한다. 가족 측은 "ECU 사양서는 양측의 상반된 주장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 가릴 핵심 증거"라며 "ECU의 감시·오류 대응 구조를 확인해 결함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KGM은 "설계 구조를 확인하더라도 페달 오조작이 없었다는 사실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맞섰다. 가족 측 하종선 변호사는 "급발진 소송에서 '판도라의 상자'인 ECU 사양서가 열리게 된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도현군의 아버지 이상훈씨는 "페달 오조작 여부를 넘어 차량의 전자제어 오류가 있었는지 기술적으로 검증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사고는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발생해 도현군이 숨지고 운전자인 할머니가 다쳤다. 1심은 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현정 기자 #사양서 #급발진 #결함 #명령 #강릉
급발진 주장손해배상변호사아버지재판부 -
생활"5대조 이인직, 이완용 통역관"…'친일파 후손' 전범선 솔직 고백
"네 조상은 이인직" 어머니에게 듣고 충격 친일파 후손 트라우마 극복하려 '역사서' 집필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던 가수 전범선이 가족의 내력을 다시 언급하며 조상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된 과정과 이후의 심경을 털어놨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역사학을 전공한 전범선은 13일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 출연해 자신의 친일파 후손 고백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전범선은 앞서 지난 4월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의 외가 5대조 할아버지가 최초의 신소설 작가이자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인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까지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전범선은 "미국 다트머스 대학 유학 중 한국 근대화와 항일 운동에 기여한 호머 헐버트 박사의 삶에 감화를 받아 귀국 후 한국의 '헐버트 재단'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전범선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너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 줄 알고 있냐"며 "네 조상은 이인직"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전범선은 이인직에 대해 "혈의누의 작가로 잘 알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그분은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활약한 그냥 친일파가 아니라 대단한 친일파'라고 밝혀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인직은 전범선의 외할머니의 증조부라고 설명했다. 가족이 친일 행적으로 얻은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전범선은 "이인직은 일본인 여성에 새 장가를 들며 사실상 저희 가족을 버린 셈"이라며 "그래서 혜택을 누린 건 전혀 없고, 어머니도 과거를 숨기면서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조상의 친일 행적에 부끄러움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전범선은 조상의 행적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역사서를 집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게 위해 역사서를 집필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직을 책에 담지 못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 = 유튜브 '뮤지엄피', 매불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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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배기성 "안상호, 이완용 살려낸 의사 중 1명"…하영 증조부 논란 비판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배우 하영의 증조부 고(故)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에 대해 역사강사 배기성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배기성은 12일 공개된 '최욱의 매불쇼'에서 안상호가 몸담았던 대정실업친목회를 설명했다. 그는 해당 단체를 두고 "고문이 이완용, 회장이 민영기다. 일제는 식민지배에 순응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산업 진흥을 독립하기 위해 이 단체 설립을 인가했다. 3.1운동 이후 조선인 상류층 친일 단체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앞서 역사학자 심용환은 안상호를 친일파로 단정해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점도 이 논란의 쟁점이 됐다. 이에 '매불쇼' 측은 안상호 가정이 조선총독부 기관지에서 내선일제 모범사례로 다뤄진 적이 있다며 반박했다. '매불쇼' 측은 "안상호 가정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내선일제 모범사례로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어떻게 이걸 친일파로 규정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의아하다"고 밝혔다. 안상호는 당시 "나는 일본사람과 똑같다. 조선 옷은 한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며 "자녀들을 완전히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조선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없다"고 인터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기성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안상호의 행보도 문제 삼았다. 그는 "배워와서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라 했더니, 같이 간 동료는 실제로 그랬는데 자기는 일본화 됐다"고 비판했다. 고종 독살설과 관련해서는 "고종이 1919년 1월 21일 아침에 쓰러진다. 서양의학을 배워온 안상호에게 부탁했는데 그 후 3시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미스터리다. 그러다보니 안상호에게 고종이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기성은 1909년 이재명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완용의 수술과 회복 과정에도 안상호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안상호가 이완용을 살려낸 6명의 의사 중 1명이자 회복을 도운 인물이었다며 "이게 친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안상호가 등재되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는 "관직과 경제인 위주로 인명사전을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영을 향한 비판도 이어졌다. 배기성은 "그 배우가 나이가 33세다. 알 거 다 아는 사람이다. 어려서 그런게 아니다. 나와서 할아버지 이야기 한건 자기 책임이다. 신뢰할 수 없는 정보라는 나무위키만 찾아봐도, 인터넷 조금만 봐도 수많은 기사들이 보도를 했다. 그걸 나와서 '우리 집안이 4대째 의사였다'. 만약 진실을 안다면 그런 소리 못한다. 부끄러워서 못한다"고 말했다. 배기성은 집안에서 후손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의 방식도 지적했다. 그는 "집안에서는 좋은 쪽으로만 얘기했을거다"라는 말에 "내가 친일파를 강의하면서 늘 하는 생각인데 밥상머리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어린 애들 머리 속에 인이 박혀있는거다.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고종 황제를 진단했고 조선 최초의 양의원을 세운 사람이고 그렇게밖에 생각을 안하는거다. 나라 팔아먹은 행위에 대해서는 '당시에 전문직이니까 그렇게 됐겠지' 하는거다"고 비판했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영이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등에서 증조부를 이야기한 이후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회복 과정산업 진흥이재명아버지KBS -
사회실패작인 줄 알았는데 '초대박'…홍합만 파던 교수의 '반전'
이해신 KAIST 석좌교수 "창업으로 이어진 홍합 연구 탈모 샴푸 돌풍 일으켰죠" 암기 아닌 '정답 없는 연구'에 매료 홍합 접착성분 폴리페놀로 '대박' "이공계 후배에게 귀감 됐으면" 이해신 교수가 대학 실험실에서 폴리페놀 시료가 든 용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실험으로 하나하나 검증해가는 끈기와 집념이 과학 연구자의 핵심 자질입니다.” 이해신 KAIST 화학과 석좌교수(53)는 13일 인터뷰에서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런 방식이 무식해 보일 수 있지만 꼭 한두 번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이런 특이한 하나를 파고들다 보면 후속 연구 주제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홍합에 미친 ‘괴짜 과학자’ 서울 버스에 부착된 탈모 샴푸 '그래비티' 광고. 이 교수는 정석적인 ‘모범생 과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남 거제고를 졸업한 뒤 재수 끝에 1993년 KAIST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과학고 출신 동기들보다 두 살 많다는 이유로 과대(과 대표)를 맡았고, 대학 시절 밴드 활동에 푹 빠져 기타와 키보드, 드럼까지 섭렵했다. 공부를 소홀히 한 탓에 KAIST 대학원 입시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그는 “교수가 될 생각은 0.001%도 없었고 그냥 석사는 기본이라고 해서 지원했다”며 “KAIST 역사상 학부생이 대학원에 떨어진 사례는 유일하다”고 했다. 암기 위주의 생명과학 공부에 싫증을 냈던 그는 대학원에서 ‘정답이 없는 연구’에 매력을 느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로 유학을 갔고 의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 KAIST 화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년 넘게 천착한 소재는 홍합이었다. 물속에서도 바위에 단단하게 달라붙는 홍합의 접착 원리를 연구하다가 천연 폴리페놀에 주목했다. ‘폴친자(폴리페놀에 미친 사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름마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해신’의 ‘해’는 바다 해(海) 자다. 이름에 하늘 천(天) 자를 쓴 아버지가 아들에게는 반대로 바다를 ‘선물’했다고 한다. ◇‘실패작’이 지혈제·탈모 샴푸로 폴리페놀 연구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뻗어나갔다. 인체 조직에 잘 붙는 접착제를 만들려고 여러 조합을 시험하던 중 유독 잘 붙지 않는 물질을 발견했다. 접착제로서는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폴리페놀이 혈액 속 단백질과 결합해 지혈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홍합 연구는 창업으로 이어졌다. 폴리페놀을 응용한 의료용 지혈제를 개발해 2010년 이노테라피를 공동 창업했다. 폴리페놀의 단백질 결합 특성을 머리카락에도 접목했다. 탈모가 진행되면 모발이 가늘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그전에 폴리페놀로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모낭 없이도 머리카락을 피부에 붙일 수 있는 접착 기술까지 고안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8년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별도 법인으로 폴리페놀팩토리를 설립했다. 이듬해 선보인 헤어케어 브랜드 ‘그래비티’는 출시 27개월 만에 270만 병 넘게 판매됐다. 폴리페놀팩토리는 작년 매출 30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 400억원을 예상한다. 연구실 밖에서도 그의 실험은 계속된다. 개발 중인 물질을 자신의 머리에 직접 시험하고, 헤어 제품을 연구한 뒤로는 사람을 만나면 머리카락부터 살펴보는 ‘직업병’도 생겼다. 과학자 4명으로 구성된 ‘S4(Scientist 4)’의 일원으로 제품 광고에도 직접 출연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후배 과학자에게 더 큰 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해외에선 과학자가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사례가 많다”며 “폴리페놀팩토리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켜 이공계 후배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전=최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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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이한 父' 정근, '직원 단톡방서 교육감 후보 홍보' 항소심 감형
정근 온병원그룹 회장. 국제신문 DB 지난해 부산시교육감 재선거를 앞두고 병원 직원들에게 특정 후보를 홍보한 혐의로 기소된 정근 온병원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부산고법 형사2부(재판장 박운삼)는 12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4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는 지난해 3월 부산시교육감 재선거를 앞두고 최윤홍 당시 후보를 홍보하는 글을 온종합병원 직원 업무용 단체 채팅방에 게시하는 등 모두 34차례에 걸쳐 직무상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당 채팅방에는 직원 1147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죄책이 가볍지는 않지만 당심에 이르러 뒤늦게나마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최 후보가 낙선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려운 점과 의료인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무겁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벌금 400만 원에서 벌금액을 줄이는 것이 피고인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은 알고 있다”며 “피고인이 간부들에게 여론조사 연락을 받은 직원 명단을 취합하게 하거나 최 후보 관련 기사에 댓글을 게시하도록 지시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선거권이 제한되지 않는 수준의 형을 선고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이 형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정 회장은 피습 자작극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이한 전 개혁신당 부산시장 후보의 아버지다.
부산시장 후보여론조사개혁신당아버지재판부 -
사회하영 증조부 '친일파' 논란에 역사학자 제동…"친일파 단정 위험"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활동했지만 친일인명사전엔 미등재 역사학자 심용환 "명확한 부역 행위 밝혀지지 않아" 배우 하영. photo 뉴스1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던 친일 단체에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 "특정 단체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심 소장은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갑자기 어떤 여배우의 증조부 문제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며 "더불어 역사학계가 그의 증조부가 '친일 맞음'이라고 규정했다는 기사까지 떴다"고 밝혔다. 그는 먼저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사실과 함께 거론된 고종 독살설에 대해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풍문에 불과했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간주된다"며 "냉정히 말해 10년간 일본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던 고종을 갑자기 일본이 독살할 이유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에 대해서는 "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실업친목회 등 친일파들이 많이 참여했던 단체에 소속된 것, 일본의 시정 홍보에 집안이 사용된 점 등에서 만년에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맞다"면서도 "명확한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가입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대정실업친목회는 조선인 상류층을 중심으로 구성된 친일 성향 단체로,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이 단체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심 소장이 언급한 '친일 부역 행위'는 단순히 일제강점기 친일 성향 단체에 가입하거나 활동한 것보다 적극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일제의 식민통치나 침략전쟁 등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일본의 이익에 기여하고 민족 공동체에 피해를 끼친 구체적인 행위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는 취지다. 심 소장은 "누군가를 쉽게 '친일파'라고 단정해버리면 과거사에 있었던 너무나 많은 이들이 친일파가 될 것"이라며 "결국 친일 부역의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비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 기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후손에게 선대의 행적을 어디까지 연결해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 소장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까지를 '후손'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보다 명쾌한 기준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며 "어디까지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고 그로 인해 어떤 권리와 책무를 누려야 되는지에 대해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밝혔다. 당시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께서 당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다고 한다"며 "고종 황제를 진료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부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방송 이후 그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로 활동했던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이 확산하자 하영의 소속사는 "의도치 않게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배우 본인은 마음이 매우 무거운 상황"이라며 "하영 역시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깊이 새기고,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사과했다. 사과 이후에도 여파는 계속됐다. 문제가 된 '옥탑방의 문제아들' 방송분은 비공개 처리됐고, 하영이 출연한 광고와 유튜브 영상 등도 비공개로 전환됐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모처에서 예정됐던 하영 출연 드라마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 인터뷰도 취소됐다. 다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1년 편찬 작업을 시작해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전 편찬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행적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반민족행위 여부 등을 심사해 수록 대상을 선정했다. 안상호가 사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친일 행적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전 편찬 당시 수록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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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큰 아이아스’에서 유래 네덜란드 AFC아약스 별명이 ‘신의 아들들’인 까닭
[브랜드가 된 신화] 트로이전쟁 영웅, 제우스의 손자 ● 트로이전쟁 영웅 아이아스는 동명이인 ● 오만함에 신의 분노 사 목숨 잃은 작은 아이아스 ● 트로이 명장 헥토르와 맞붙었던 맹장 큰 아이아스 ● 오디세우스와의 경합에서 패배하자 목숨 끊어 ● 그리스, 에스토니아에도 축구 구단 아이아스 존재 네덜란드 프로축구팀 AFC아약스의 유니폼.AFC아약스 페이스북 캡처 한국 프로축구 1부 명칭은 ‘K리그1’이다. 간단하게 ‘K리그’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프로축구 1부 명칭은 무엇일까. 바로 발음부터 아주 생소한 ‘에레디비시’다. 에레디비시는 네덜란드어로 ‘명예의 팀’이라는 뜻이다. 총 18개의 프로축구팀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가운데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름에서 따온 팀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헤라클레스 알멜로’이고, 다른 하나는 ‘AFC아약스’다. 헤라클레스는 삼척동자도 알 만한 너무 유명한 영웅이라 설명이 더는 필요 없겠지만, ‘아약스’가 누군지는 곧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아약스는 바로 트로이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군 소속의 장수였던 ‘아이아스’의 네덜란드식 이름이다. 오만한 성정 탓에 신들의 분노 산 작은 아이아스 트로이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연합군에는 아이아스가 두 명 있었다. 하나는 살라미스의 왕 텔라몬의 아들이었던 ‘큰 아이아스’이고, 다른 하나는 로크리스의 왕 오일레우스의 아들이었던 ‘작은 아이아스’다. 텔라몬의 아들이 더 키가 커 큰 아이아스가 됐다. 작은 아이아스는 트로이전쟁이 발발하자 로크리스에서 전함 40척을 이끌고 그리스 연합군에 합류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따르면 그는 창던지기의 명수였으며, 특히 그리스군 전체에서 ‘준족’이라는 별명을 지닌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달리기에 능했다. 아킬레우스의 부관이자 가장 소중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에서 개최된 달리기 경기에 참가해 지략가 오디세우스와 필로스의 왕자 안틸로코스를 제치고 우승을 목전에 둔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에게 호의적이었던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막판에 그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 작은 아이아스는 아테나에게 반감을 품었다. 트로이가 함락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가 자신을 피해 아테나 신전으로 달아나자 따라 들어가 아테나 신상을 붙들고 있는 그녀를 끌어내려 겁탈했다. 신전을 모독했다고 생각한 아테나는 징벌에 나섰다. 아버지이자 신들의 왕 제우스에게 간청해 그리스로 귀환하던 작은 아이아스의 전함을 난파시켰다. 작은 아이아스는 맨몸으로 파도와 싸우며 암초 위로 기어오르려 했지만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평소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큰 너울을 일으켜 그를 그 암초 위에 올려줬다. 그러자 작은 아이아스는 마치 폭풍우로부터 살아남은 것이 자신의 능력인 양 암초 위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신들이 아무리 자신을 죽이려 해도 자신은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남았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포세이돈은 작은 아이아스의 오만함에 심한 역겨움을 느끼며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래서 얼른 삼지창을 들어 작은 아이아스가 서 있던 암초를 힘껏 내리쳐 두 동강 내고는 그를 바닷물에 수장해 버렸다. 헥토르와 막상막하였던 맹장(猛將) 큰 아이아스 큰 아이아스는 트로이전쟁이 발발하자 살라미스에서 전함 열두 척을 이끌고 그리스 연합군에 합류했다. 그는 그리스 연합군의 맹장 아킬레우스와는 사촌지간이다. 큰 아이아스의 아버지 텔라몬과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는 형제지간으로, 펠레우스가 형이다. 펠레우스와 텔라몬의 아버지는 신들의 왕 제우스와 샘의 요정 중 한 명인 아이기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아코스다. 즉 큰 아이아스는 제우스의 증손자인 셈이다. 트로이전쟁 당시 큰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뛰어난 전사였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그의 몸집이 거대해 마치 걸어 다니는 ‘성벽’ 같았다고 묘사했다. 큰 아이아스는 트로이전쟁에서 아킬레우스 못지않은 공적을 세웠다. 트로이의 맹장 헥토르가 군사들을 이끌고 방벽을 뚫고 그리스 진영으로 쳐들어와 전함들을 불태우려 했을 때 혼자 나서서 적군을 저지했다.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의 손에 죽었을 때는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가 그의 시신을 안전하게 가져가도록 적군 앞을 막아섰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고 전사했을 때는 오디세우스가 적을 상대하는 사이 아킬레우스 시신을 등에 업고 그리스 진영으로 돌아왔다. 특히 큰 아이아스가 헥토르와 벌인 일대일 대결은 트로이전쟁에서 최고의 명승부다. 트로이전쟁 발발 10년 차에 아킬레우스는 전횡을 일삼는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불만을 품고 전투에서 발을 뺀 적이 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헥토르가 장수끼리의 일대일 대결을 신청했고, 큰 아이아스가 헥토르와 결투에 나섰다. 두 사람은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고 있어 하루 종일 싸웠는데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날이 저물자 둘은 비로소 결투를 중단했다. 서로의 무력에 감동해 헤어지기 전 우정의 선물까지 교환했다. 이때 큰 아이아스는 헥토르에게 검을 묶는 검대를, 헥토르는 큰 아이아스에게 은장식의 보검을 선물했다. 트로이에 있는 아테나 신전의 팔라디온상을 붙들고 있는 카산드라를 강제로 떼어내는 작은 아이아스의 모습이 BC 440~430년경의 그리스 도자기에 남아 있다. 위키피디아 아킬레우스가 전사한 뒤 그의 어머니 테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아들의 무구(武具)를 가장 용감한 그리스군 장수에게 주기로 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용감하게 지켜냈던 큰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자신들이 그 무기의 임자라고 주장하며 나섰다. 두 사람은 동료 장수들 앞에서 자기들의 무훈을 자랑하며 무구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연설을 들은 장수 대부분이 오디세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다른 설도 있다. 그들이 설전을 벌이는 동안 아가멤논은 트로이 성에 첩자를 파견해 이 두 장수에 대한 트로이 시민들의 평가를 염탐하도록 했다. 트로이 시민들이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을 무구의 주인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트로이성에 은밀하게 잠입한 첩자는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트로이 여인들의 수다를 엿들었다. 그들 중 하나가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전장에서 빼내 온 큰 아이아스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자, 아테나의 사주를 받은 다른 여인이 이렇게 응수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등에 시신을 올려주기만 하면 여자 노예라도 할 수 있는 일이야. 그 노예의 손에 무기를 한번 쥐여줘 봐. 겁이 나서 무기를 전혀 쓰지 못할걸. 트로이 공격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은 큰 아이아스가 아니라 바로 오디세우스였어.” 아가멤논은 귀환한 첩자의 보고를 전해 듣고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오디세우스 것이라고 판결했다. 큰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가 가장 높게 평가한 전우였다. 아킬레우스의 무구가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가자 큰 아이아스는 크게 분노한다. 그날 밤 큰 아이아스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복수할 심산으로 은밀히 동료 장수들의 막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테나가 광기를 불어넣는 바람에 그가 찾아간 곳은 장수의 막사가 아니라 축사였다. 죽고도 오디세우스와 앙금 풀지 못해 광기에 실성한 큰 아이아스는 가축이 자신을 모욕한 동료 장수라고 착각하고 밤새 도륙했다. 새벽녘이 돼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큰 아이아스는 몹시 절망했다.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동료 장수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그는 부하들에게 아내 테크메사와 어린 아들 에우리사케스를 데려오도록 했다. 테크메사가 남편의 무릎을 부여잡고 자신과 어린 아들을 생각해 제발 목숨을 보전해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큰 아이아스는 그녀의 간청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7겹 소가죽으로 만들어 절대로 뚫리지 않는 자신의 방패를 들더니 가족과 부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방패는 내가 죽은 뒤 그리스군이 나눠 갖지 못하도록 미리 내 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나머지 무구는 나와 함께 묻어라. 또한 군대를 이끌고 미시아로 출전한 터라 자리를 비운 이복동생 테우크로스를 내 어린 아들의 후견인으로 정한다. 그리고 당신, 테크메사는 내가 죽더라도 절대 막사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하시오.” 큰 아이아스는 유언을 남기고 나서 다음 날 새벽 숙영지 근처 숲속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해 둔 칼을 꺼내 끝이 위로 향하도록 손잡이 쪽을 땅에 단단하게 박았다. 이 칼은 헥토르가 선물한 보검이었다. 이어 거기로부터 칼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서는 제우스 등 하늘의 신들을 향해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자 큰 아이아스는 쏜살같이 칼을 향해 달려가 그 위로 뛰어들었다.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아우구스티노 마수치가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큰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큰 아이아스는 죽어서도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놓고 벌어진 경합에서 오디세우스에게 패배한 원한을 내려놓지 못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주술과 마법의 여신 키르케의 조언을 듣고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러 지하 세계에 들렀다. 지하 세계에서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수많은 전우의 혼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유독 큰 아이아스의 혼령만은 멀리 떨어진 채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아직도 분노를 품고 있다면 이제 다 털어내고 가까이 다가와 자신이 제물로 바친 짐승의 피를 좀 맛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큰 아이아스는 한마디 말도 없이 다른 혼령들과 함께 재빨리 지하 세계의 암흑인 에레보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프로축구팀 ‘AFC아약스’는 이 그리스 신화의 두 영웅 중 누구의 이름을 따라 지었을까. 바로 제우스의 증손자뻘인 살라미스 출신의 큰 아이아스다. AFC아약스는 그리스 신화의 맹장 큰 아이아스답게 별명도 ‘신의 아들들’이다. 별명에 걸맞게 프로축구 리그 에레디비시에서 최다(33회) 우승했다. 네덜란드 축구협회 컵 대회에서도 18회나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1부 리그에서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다. 에레디비시에는 ‘아약스 암스테르담’과 ‘헤라클레스 알멜로’ 이외에도 그리스 신화와 연관된 프로축구팀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 신화 최고의 미녀 헬레네의 고향 스파르타가 팀 이름에 들어 있는 ‘스파르타 로테르담’이다. 그리스에도 1931년 살라미스를 연고지로 1931년 창단된 ‘아이아스 살라미나스’라는 프로축구팀이 있으며, 에스토니아에도 탈린의 라스나메에를 연고지로 1993년 창단된 ‘아약스 라스나메에’라는 프로축구팀이 있다. 특히 그리스 아이아스 살라미나스 로고는 네덜란드 AFC아약스 로고처럼 투구를 쓴 큰 아이아스를 모델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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