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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 가요(음악)웨이프 보이즈, 美 메이저 레이블 인터스코프 레코즈 합류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신예 보이그룹 웨이프 보이즈(WAYF BOYS)가 데뷔와 동시에 미국 메이저 음악 시장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파격적인 글로벌 행보를 시작했다. 웨이프 보이즈는 최근 미국 메이저 레이블 인터스코프 레코즈(Interscope Records)의 공식 홈페이지에 개별 아티스트 페이지가 개설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지난 7일 데뷔 싱글 ‘WAYF BOYS DO(웨이프 보이즈 두)’를 발매하며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활동 시작과 동시에 미국 메이저 음악 시장과의 공식적인 접점을 가시화했다. 특히 이번 파트너십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소속사인 ‘WAYF’가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산하 레이블이 아닌 순수 독립 레이블이기 때문이다. 대형 기획사의 자본이나 계열사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신생 독립 레이블이 데뷔 단계부터 미국 메이저 레이블과 직접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인터스코프 공식 홈페이지에는 현재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켄 카슨(Ken Carson)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은 물론 블랙핑크(BLACKPINK)의 아티스트 페이지도 운영되고 있다. 웨이프 보이즈 역시 이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음악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본격적인 활약을 예고했다. 정식 데뷔 전부터 아카펠라 영상과 감각적인 콘텐츠로 해외 SNS에서 먼저 주목받은 웨이프 보이즈는, 힙합과 R&B를 기반으로 한 음악 색깔과 다섯 멤버의 독창적인 캐릭터를 무기로 음악, 패션,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유니크한 팀 컬러를 구축해 가고 있다. 국내를 넘어 데뷔 초기부터 세계 무대를 정조준한 독립 레이블의 신예 웨이프 보이즈가 인터스코프와의 든든한 파트너십 속에서 글로벌 음악 시장에 어떤 파란을 일으킬지 관심이 집중된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기사추천 0
웨이프 보이즈퍼포먼스SNS팝스타미국 -
연예 | 가요(음악)빅오션, 9월 디지털 싱글 ‘Love Sign’으로 컴백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세계 최초 수어 아이돌 그룹 빅오션(Big Ocean)이 한층 더 성숙해진 매력과 관능적인 감각을 장착하고 초고속 컴백에 나선다. 빅오션(찬연, PJ, 지석)은 지난 13일 오후 공식 SNS를 통해 오는 9월 9일 정오 디지털 싱글 ‘Love Sign(러브 사인)’을 발표한다고 공식화했다. 지난 3월 미니 3집 ‘THE GREATEST BATTLE’을 통해 강인한 전사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빅오션은, 지난 5월 유럽 투어 무산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발표했던 ‘Make it up to you’에 이어 약 4개월 만에 새 싱글로 리스너들을 찾는다. 이번 신곡 ‘Love Sign’은 빅오션이 데뷔 이래 선보인 콘셉트 중 가장 성숙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담아냈다. 상대의 별자리를 묻는 클래식한 플러팅 문구인 “What’s your sign?”에 그룹의 정체성인 ‘수어(Sign Language)’를 겹쳐낸 더블 미닝의 곡이다. 특히 ASL(미국), BSL(영국), KSL(한국) 등 세계 각국의 수어 이름을 후렴 훅에 녹여내어, “보는 음악, 느끼는 음악”이라는 팀의 슬로건을 가장 감각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낼 전망이다. 한편, 컴백 예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빅오션은 오는 16일까지 일본 도쿄 iBIG HALL에서 팬미팅 ‘Big Ocean JAPAN SPECIAL LIVE 2026 BIG OCEAN’을 개최하고 현지 팬들과 뜨겁게 소통하고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기사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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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물정 모른 어머니 위협해 파주 땅 뺏어"…'친일' 안상호 1923년 피소됐다
동아·조선일보에 '소유이전말소로 안상호 피소' 기사 실려 하영 인스타그램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행위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일제강점기 시절 안 씨가 토지 소유권 이전 문제로 피소됐다는 내용이 담긴 100여 년 전 신문 보도가 재조명되고 있다. 13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1923년 12월 28일 발행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소유이전말소로 안상호 피소'라는 제목의 기사가 확산되고 있다. 해당 보도에는 파주군의 한 토지를 두고 박승학이라는 인물이 안상호를 상대로 경성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경위가 담겼다. '소유이전말소로 안상호 피소'라는 제목의 기사에선 "파주군 파평면 이천리에 사는 박승학은 시내 종로 삼정목에 살던 안상호를 걸어 경성지방법원 민사부에 토지매매증명말소신청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당시 보도에 따르면 문제가 된 토지는 파주군 천현면 래문리에 위치했으며, 해당 토지는 본래 소송을 제기한 박승학의 소유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엔 "이제 그 내용을 보건대, 파주군 천현면 래문리에 있는 시가 일천이백원가량의 토지는 본디 원고 소유인데 피고는 원고가 없는 사이에 아무 세상 철을 알지 못하는 원고의 모친을 무리한 말로 위협하고 자기가 그 토지를 산 것처럼 만든 후 그곳 군청에 증명을 냈다"고 적혀 있다. 박승학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는 안상호가 1914년(대정 3년) 11월께 박 씨가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어머니를 상대로 토지 소유권을 이전받았다는 주장이 담겼다.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소장에는 "피고(안상호)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험악한 말로 위협한 뒤, 마치 해당 토지를 정상적으로 매입한 것처럼 꾸며 관할 군청에서 토지 매매와 관련한 증명서를 발급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초 박 씨는 안상호에게 수차례 증명서를 말소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경성지방법원 민사부에 토지매매증명 말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안상호는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의 거사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제강점기 당시 이토 히로부미 추모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한 기록까지 전해지며 안상호의 과거 친일 행적을 뒷받침하는 기록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인스타그램동아일보이재명SNS서울 -
세계여주인공 출연도 모자라 60번의 키스신 요구까지 …드라마 투자자 횡포[아하 중국]
중국 배우 중위페이, SNS에 폭로 숏폼 드라마 감독도 논란 인정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중국에서 한 여성 투자자가 자신이 제작비를 댄 숏폼 사극에 직접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뒤 상대 남자 배우와 60회가 넘는 키스 장면을 요구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배우 측은 촬영 과정에서 과도한 신체 접촉이 있었으며, 계약상 위약금 부담 때문에 이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지난 2일(현지시간) 숏폼 사극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은 중국 배우 중위페이가 SNS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폭로했다고 보도했다. 중위페이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드라마 제작비를 투자한 뒤 촬영에도 직접 참여했다. 자신은 왕비 역할을 맡았고, 중위페이를 상대 배우로 직접 지정했다. 촬영 과정에서 여성 투자자가 과도한 신체 접촉을 시도했지만 현장 스태프들은 촬영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위페이의 주장이다. 불편함을 느낀 그는 부감독에게 “대본과 통상적인 촬영 수위에 맞게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어쩔 수 없다”면서 “조금만 참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중위페이의 계약에는 상당한 액수의 위약금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연기 경력이 많지 않았던 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고, 어렵게 얻은 주연 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만큼 촬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불거진 뒤 해당 작품의 연출을 맡은 멍싱 감독도 중위페이의 폭로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여성 투자자는 약 50회 분량의 드라마에 60회가 넘는 키스 장면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멍싱 감독은 투자자의 요구를 줄여달라고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부터 키스 장면의 비중을 줄일 것을 권유했지만, 투자자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드라마는 완성됐지만 플랫폼 측이 장면의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하면서 상당수 키스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다. 이 때문에 이야기의 연결성이 떨어졌고 작품은 시청자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멍싱 감독은 “작품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고, 투자자 측은 그 책임을 편집팀에 돌렸다”고 말했다. 투자자는 자신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데 불만을 품고 제작비 가운데 남은 3만 위안(약 63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논란 이후 중위페이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배우와 계약할 때 촬영 과정에서의 권익을 보다 명확하게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SNS제작비투자자AI -
사회마지막 복날 앞둔 개고기 골목… “강제로 쫓겨날 때까지 판다”
내년 2월 개 식용 전면 금지 수급 줄며 개고기 값 4배-보신탕 30%↑ 업주들 “전업 막막”, 육견농가도 울상 대체제 염소고기 소비량 4년 새 2배로 말복을 이틀 앞둔 12일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 내 ‘개고기골목’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때 보신탕 식당과 개고기 정육점 등 50여 곳이 골목을 채웠지만, 내년 2월 개 식용 전면 금지와 보양식 소비 변화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말복(末伏)을 이틀 앞둔 12일 낮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 내 개고기 골목. 한때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불렸던 곳이지만 골목 초입부터 정적이 감돌았다. 복날을 목전에 두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이날은 행인 한 명 찾기 어려웠다. 가게마다 셔터가 내려가 있었고, 출입문에 ‘임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은 가게도 여러 곳이었다. 대구시와 상인들에 따르면 10여 년 전만 해도 보신탕 식당과 개고기 정육점, 건강원 등 50여 곳이 골목을 빼곡히 채웠다. 하지만 대부분 문을 닫아 지금은 식당 4곳과 건강원 1, 2곳만이 간신히 명맥을 잇는 수준이다. 2024년 제정된 개식용종식법의 전면 시행이 내년 2월로 다가오면서 관련 업소들이 잇달아 문을 닫은 것이다. 내년 2월부터 개고기 유통·판매가 금지되면서 올해는 개고기를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마지막 복날이 됐다. ● 마지막 복날 앞두고 개고기 값도 올라 이날 개고기 골목에서는 마지막 복날을 준비하는 식당 몇 곳이 가마솥을 끓이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고기를 삶는 냄새가 풍겨왔고,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손님들로, 연신 땀을 닦으며 보신탕을 먹고 있었다. 출입문 틈으로 고개만 내밀어 “요새 개(보신탕) 합니까”라고 물어본 뒤 식당으로 들어오는 손님들도 간간이 보였다. 70대 여성 업주는 가마솥에 개고기를 삶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는 “손님이 아무리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찾아올 손님은 온다”며 “초복과 중복에도 손님이 꽤 왔다. 지금도 말복에 팔 탕과 수육 거리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날 장사 준비가 마냥 즐거운 건 아니다. 개고기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한 마리에 30만∼40만 원이던 개고기 가격이 4배 이상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업주는 “음식값도 어쩔 수 없이 30%가량 올렸다”며 “보신탕 가격을 5000원 정도 올렸는데, 어르신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 미안하다”고 말했다. 개고기를 합법적으로 팔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상인들의 심경도 복잡했다. 다른 식당의 70대 여성 업주는 “사람이 못 먹을 것을 파는 것도 아니고, 평생 보신탕 하나로 자식 키우고 먹고살아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업주들은 정부 지원금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폐업하는 보신탕 식당에 철거 비용 등 최대 4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판매 품목을 바꾸는 식당에는 간판과 메뉴판 교체 비용으로 최대 250만 원을 지원하지만 업주들은 이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한 업주는 “이 골목에는 개고기를 먹으러 오지, 다른 것을 누가 먹으러 오겠느냐”며 “지원금이 적어 다른 장사를 시작할 수도 없고 여전히 찾는 손님이 있으니 강제로 쫓겨날 때까지 보신탕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손님도 정부 정책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강모 씨(75)는 “싫은 사람은 안 먹거나 안 팔면 되는데, 정부가 법으로 아예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주변 상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인근 점포 상인 박모 씨(52)는 “아직 남아 있는 보신탕 업소 때문에 시장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칠성시장이 대구를 대표하는 시장 중 하나인데,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 육견 농가 “이제 뭘 해먹고 사나” 개를 키우는 농장주들도 정부가 폐업 이후 생계를 이어갈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육견 농장은 악취와 소음, 분뇨 처리 등을 둘러싼 주민 민원을 피해 인적이 드문 외곽이나 산자락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농장을 폐업해도 기존 부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년 전 육견 농장을 폐업한 주모 씨(61)는 “사육장을 농지로 바꿔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다른 가축을 기르기 위한 허가도 잘 나오지 않는다”며 “앞으로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농장별 최근 3년간 연평균 사육 마릿수를 기준으로 마리당 최대 60만 원의 폐업이행촉진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일회성 지원만으로는 새로운 생업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업계에서는 폐업 시점이 다가올수록 농가들이 남은 개를 서둘러 출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농가 입장에서는 남은 개를 유통한 뒤 폐업지원금을 받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개고기 빈자리 채우는 염소고기 개고기의 유통이 줄면서 빈자리는 염소고기가 채우는 양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국내 염소고기 추정 소비량은 2020년 6328t에서 2021년 6636t, 2022년 8075t, 2023년 1만986t, 2024년 1만3708t으로 꾸준히 늘었다.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호주산 염소고기의 유입도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호주산 염소고기 관세가 2023년부터 완전히 철폐되면서 흑염소탕의 가격도 낮아졌다. 외국산이 국내산보다 저렴한 데다 흑염소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늘면서 통상 한 그릇에 1만5000∼2만 원인 흑염소탕을 9900원에 내놓는 식당과 프렌차이즈도 등장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개고기와 함께 대표적 보양식으로 꼽히는 닭고기 가격까지 폭염으로 오른 상황에서 9900원짜리 흑염소탕은 가격 부담을 낮추면서 몸보신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체재”라며 “이색적인 보양식을 찾는 수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입소문이 맞물리면서 염소고기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층으로도 소비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정부 지원SNS대구시흑염소 -
사회‘남태령대첩’에서 호명된 언니네텃밭 꾸러미가 시작된 곳
횡성 여성농업인지원센터가 잇는 도시와 농촌① 토종씨앗 운동 언니네텃밭 횡성 오산공동체 앞에서 여성 농민들의 모습. 오른쪽 끝이 한영미 횡성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 소장이고,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서근영 씨다. (사진 제공-한영미) 횡성은 2021년 전국 최초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횡성형 여성일자리사업'으로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씨앗을 뿌린 곳이다. 농촌에서 관행상 같은 노동을 하고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적게 받은 임금의 부족분을 지자체 지원금 등으로 보완하여 ‘성평등 임금’을 실현한 정책이다. 또한 지난겨울 ‘남태령대첩’에서도 호명된 '언니네텃밭 꾸러미' 사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여성농민들이 토종씨앗으로 생산한 제철농산물을 도시의 소비자들이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직거래 사업이다. 횡성군은 여성농업인육성 지원 조례, 횡성군 토종농작물 보존·육성 조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조례, 식생활교육 지원 조례 등 여성 농민의 삶과 직결된 굵직한 조례들도 제정한 바 있다. 이 모든 사업과 조례 제정의 교차점에는 횡성군 여성농업인단체협의회와 비영리법인 횡성 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가 있다. 이들 단체를 이끌어 온 한영미 소장과 토종씨앗 담당자이면서 언니네텃밭 활동가인 서근영 씨를 인터뷰했다. 농촌과 지역사회, 그리고 여성농업인을 위한 활동과 정책을 꾸준히 만들어온 경험과 노하우를 총 3회에 걸쳐 들어본다. [편집자 주] ‘토종씨앗’ 기후위기의 대안, 지역생태계 다양성의 보루 왕가래팥, 녹두팥, 아주까리밤콩, 옥지기가지, 흰고구마, 흑수박, 보리밭완두, 붉은꽃완두, 흰당근, 밭벼, 당아욱, 산당귀, 차즈기, 하늘마… 지난 5월에 횡성 채종포(씨앗을 받기 위해 마련한 밭)를 방문했을 때 자라고 있던 작물들의 이름이다. 이름처럼 온갖 색, 다양한 모습으로 열매 맺고 있는 이 작물들은 횡성의 여성 농민들이 지키고 이어온 ‘토종’ 작물들이다. 토종씨앗은 일반 개량종과 달리, 농민들의 토착 지식으로 최소 30년 직접 갈무리하고 심어 온 씨앗이다. 기후와 토양 등 지역의 고유한 풍토에 적응해 ‘생물종 다양성’을 유지하고, 병충해나 환경 변화에 적응력이 강하다. 그래서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지역 생태계 다양성을 지킬 보루로 토종씨앗은 더욱 절실하게 호명되고 있다. (관련 기사: 토종씨앗은 “오래된 미래” https://ildaro.com/4816) 수십 종의 토종 작물들을 키우고 씨앗을 받아 이어가는 횡성 채종포는 얼핏 보면 200평 남짓한 평범한 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밭은 1970년대 초부터 농촌에서 진행된 통일벼 보급 등 대규모 영농 정책과 개량종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토종씨앗들이 복원되고 있는 밭이다. 횡성군 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 토종씨앗 지킴이들이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토종씨앗을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씨앗들이 10년 넘게 채종포에서 재배되고 있다. 횡성 채종포에서 근영 씨가 풀을 뽑고 있다. 다양한 토종씨앗을 뿌려 작물을 재배하고 갈무리하는 채종포에서는 천연 농약을 만들어 쓰고, 돼지감자액, 고사리 삶은 물, 미생물액을 배양해서 물을 준다. (사진 촬영-호미) 씨앗을 갈무리하고 저장하고 나누고…씨앗의 전승자, 여성농민 호미 : 토종씨앗 운동이 다국적 종자기업의 GMO 농산물에 대항하는 시민운동으로 시작된 걸로 알고 있어요. 횡성여성농업인센터에서 어떻게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주된 사업으로 하게 되었을까요? 한영미 소장 : 토종씨앗 운동 초기에 환경운동연합, 전국귀농운동본부, 흙살림, 토종씨드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다같이 했지요. 여기서 토종씨앗 나눔을 하거든요. 근데, 농사 지어서 씨앗을 불려 온 사람들이 다 여성농민이었어요. 원래 씨앗을 갈무리하고 저장하고, 나누는 게 여성농민들이 해오던 일이에요. 기업농, 산업농은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여농하고 토종씨드림, 그리고 우리 센터에서 이 운동을 주된 사업으로 만들었지요. 그렇게 채종포(씨앗을 채종하기 위한 공동 밭)를 시작했어요. 2005년에 시작된 채종포는 2009년 횡성 언니네텃밭 사업으로 이어진다. 전국 최초였다. ‘언니네텃밭’은 농산물 꾸러미 직거래 플랫폼이다. 토종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작물로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면, 구독자인 도시의 소비자들은 집에서 꾸러미를 받아본다. 횡성읍에 이어 한영미 소장이 사는 오산리에서도 언니네텃밭 꾸러미 2호점이 만들어졌다. 한영미 소장 : 제가 1992년에 귀농해서 10년 동안 축사에 살면서 정말 농사일 열심히 했어요. 허리도 나갈 정도로. 그때 ‘찐 농사꾼’ 언니들, 동네 언니들이 정말 예뻐해주셨어요. 이 동네 ‘이효리’였어요. 그때는 차도 나 혼자만 있었어요. 장날마다 언니들이랑 장 구경 다니고, 언니들 건강검진 받으러 간다면 같이 다녔죠. 겨울이면 화투 치러 다니고 집집마다 커피 마시러 다니고. 근데 제가 여성농업인센터를 2002년에 시작했는데, 마을에서 읍으로 출퇴근하잖아요. 횡성읍 언니네텃밭도 시작하고, 센터 일에 집중하니까 동네 사람들 볼 일이 없는 거예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그래서 계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보자고 했는데, 그 사이 언니들이 다 없어졌어요. 돌아가시기도 하고, 도시로 떠나시고. 그러면서 후회가 몰려오는 거지요. 여성 농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된다고 활동하는 건데, 정작 내가 사는 마을이 비어가는데 뭐 하고 있나. 그래서 우리 동네에 ‘오산 언니네텃밭’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이건 우리 마을에서 해야 된다, 그래 가지고 마을 안에 들어와서 마을 언니들하고 일을 시작한 거죠. 그렇게 2010년부터 시작한 오산공동체가 갖은 부침을 겪으며 지탱해 오던 2022년에 서근영 씨가 횡성으로 귀농했다. 한영미 소장에게 서근영 씨의 귀농은 오랜 가뭄에 단비였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두 사람은 토종씨앗 운동으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서근영 : 당시에 저는 서울에 있었어요. 서울여성회 회원이었고, 용산에서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언니네텃밭 만들기 바로 전에 횡성 여성농업인지원센터에서 전통음식 전수사업으로 두부를 만들었거든요. 여기 두부가 너무 맛있어서 두부를 공동 구매해서 어린이집으로 배달 받으면 우리 아이들이 집으로 가져왔죠. 좀 장난같이(웃음). 환경 모임을 하면서 토종씨앗 운동을 만났어요. 토종씨앗이 계속 지켜지려면 어디선가 소비돼야 하잖아요. 그 소비를 만들어내자고 ‘꾸러미’라는 게 만들어지고 전국여성연대, 서울환경운동연합, 서울여성회에서 소비자를 모으고, 생산자는 전여농에서 모으자 이렇게 된 거였죠. 전국여성연대 회원들이 먼저 꾸러미를 신청했지요. 저도 횡성에 농활 왔었죠. 소비자로 시작해서 2010년에 언니네텃밭 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에서 상근자로 일하다가, 이후 횡성에 귀농하면서 이곳 센터에서 토종 사업을 맡고 있어요. 이젠 꾸러미 ‘생산자’도 되고요. 언니네텃밭 꾸러미를 소비자에게 보내기 전 날. 작업장에서 서근영 씨가 꾸러미에 넣을 명이나물 장아찌를 담고 있다. 횡성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의 토종씨앗 활동 담당자인 근영 씨는 언니네텃밭 생산자이기도 하다. (사진 촬영-호미) 호미 : 소비자에서 생산자까지, 엄청난 진급이네요. 서근영 : 여기가 좀 그래요. 진급도 많이 시키고…. 하는 게 많아요. 서근영 씨는 센터에서 여성농민으로서 본인이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을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토종씨앗을 받는 채종포, 토종씨앗을 키우는 농부를 양성하는 ‘토종씨앗지킴이 양성교육’, 경로당 등에 토종 농산물의 가치를 알리는 식생활교육 매니저 양성과정, 시민들에게 텃밭 한 줄을 분양하는 ‘한줄농사’, 횡성의 토종 씨앗들을 모아둔 씨앗도서관, 센터에서 매월 열리는 작은 장터-다섯시장, 토종씨앗축제 등이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 여성농업인지원센터가 있다. 채종포에서 ‘씨앗도 키우고 사람도 키우고’ 언니네텃밭, 토종 한줄농사, 다섯시장…줄줄이 사업으로 이어져 토종씨앗 채종포는 이후 경기도 고양시 생협협의회 및 전 행복중심 생협연합회 회원들이 참여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채종포’로 바뀌었다. 이 소비자 활동가들은 매월 횡성으로 채종포공동경작 활동을 하러 온다. 여성농민들과 함께 밭을 갈고, 작물을 심고, 씨앗을 함께 받는다. 모금을 통해 운영 기금도 매해 전달한다. 채종포는 토종 작물을 키우고 씨를 받아 이어갈 뿐 아니라 토종씨앗 지킴이 활동의 장으로, 소비자들의 현장 체험과 교육장으로도 이용된다. 4년 전부터는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서 ‘토종 한줄농사’를 짓는다. 서근영 : ‘토종 한줄농사’는 한 이랑씩 분양을 해서 한줄농사예요. 토종씨앗과 농사에 관심이 있는 지역민에게 분양했어요. 저희는 농촌에서 농사 안 짓는 사람들은 농사에 관심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의외로 땅이 없어서 농사를 못 지었다는 듯이 신청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농사가 꼭 큰 땅이 필요하거나 전업농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는 나오는 땅들이 규모가 크니까, 작게라도 농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오히려 별로 없거든요. 한줄농사를 통해 농민들이 멘토처럼 토종씨앗과 친환경 농법에 대해서도 알려주니 더 좋아하신 거 같아요. 횡성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 회원들이 만든 ‘다섯시장’ 팝업 그림판. (사진 촬영-호미) 한영미 소장 : 작년에 토종씨앗 지킴이 교육에 참석한 교육생이 한줄농사를 신청했는데 나중에 50평을 분양받았어요. 자연스레 꾸러미 생산자가 되더라고요. 올해는 자녀교육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밭에 또다른 청년여성 농업인이 들어와 꾸러미 생산자가 되었어요. 그래서 한줄농사 밭이 저희한테는 의미가 커요. 토종씨앗에 대한 교육도 하고, 선후배 농민 간 교류하면서, 농업·농촌에 대한 토착 지식 같은 것도 전수되고요. 토종씨앗 농부를 길러내요. 올해 무경운, 무비닐 생태텃밭에도 처음으로 도전했어요. 서근영 : 토종씨앗 지킴이 분들한테 씨앗을 드리고 심게 하죠. 이분들이 대부분 소농인데 친환경으로 작게 농사짓는 생산자들에게는 판로가 없어요. 지역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파 한 단을 사려 해도 마트에 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역 소비자들과 소농을 직접 연결하려고 만든 게 ‘다섯시장’이에요. 센터 앞마당에서 열려요. 큰 장은 아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죠. 채종포는 토종씨앗만 키우는 곳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고 관계 맺게 한다.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공유지다. 땅만 있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과 토착 지식까지 딸려 있는 이 공유지를 통해 토종씨앗 지킴이 양성과정이 만들어지고, 장터-‘다섯시장’까지 이어졌다. 다섯시장의 물품은 생산자 언니들이 만들어온 고추부각, 두부, 계란 등 언니네텃밭 생산물과 횡성양조에서 팥줄배기옥수수로 만든 전통 증류 소주, 우리밀 빵, 나무 도마 등 목공예품들까지 다채롭다. 봄에는 삼잎국화나물로 나물김밥을 만들기도 하고, 여름에는 토종팥 팥빙수를 만들어 먹는다. '꾸러미 부엌 체험'도 있는데 꾸러미 채소로 반찬을 만드는 기회다. 네이버 밴드를 통해 미리 품목을 안내하고 신청을 받는다. 특히 언니네텃밭 꾸러미를 할인가로 담아갈 수도 있다. 안 쓰는 물품을 서로 나누는 ‘아나바다 장터’도 동시에 열린다. 여성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들은 식생활 교육의 교재가 되기도 한다. ‘횡성 식생활네트워크’에서 양성한 식생활교육 활동가들은 토종 농산물을 가지고 어린이집, 학교, 마을회관, 경로당 등을 찾아간다. 이 교육에서 참여자들은 토종 농산물을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보며 농업·농촌, 로컬 푸드, 토종의 가치를 배운다. 지역 먹거리를 사고 먹는 일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건강을 돌보고 지역과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실천임을 알아간다. 채종포에서 받은 씨앗은 센터 안 ‘씨앗도서관’으로 모인다. 도서관은 토종씨앗을 보관하고, 횡성의 농민들과 나누는 거점이 된다. 씨앗도서관의 조그마한 병들에 알알이 들어있는 씨앗들은 예술작품을 방불케 한다. 퍼렁콩, 검은 옥수수, 흰 땅콩, 메옥수수, 뚱오이, 돼지파…. ‘같은 씨앗도 키우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생겼다’는 한영미 소장의 이야기까지 들으면, 씨앗들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여성농업인지원센터 한켠에 있는, 작지만 씨앗을 나누고 토종씨앗 축제도 열리는 넉넉하고 다채로운 도서관이다. 비영리법인 횡성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는 매해 농사일지를 발간한다. 센터에서 보유하고 있는 토종씨앗들의 품목과 분류, 채종자와 채종밭, 보관 장소와 현지 보관 여부까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사진 촬영-호미) “남태령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젊은이들이 생산자로, 소비자로 합류하면서 생기는 변화들 서근영 : 우리 센터에 토종씨앗 지킴이 교육 받으러 오셔서 꾸러미로 이어진 분들 중에 젊은 분들이 계셔요. 이분들이 생산을 하면 또 이 꾸러미가 달라져요. 한 친구는 혼자서 토종씨앗 40~50종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상추만 해도 6~7가지를 해요. 저희도 이 친구들 덕분에 몰랐던 걸 알아가요. 개량종은 빨리 수확하잖아요. 근데 토종은 “하도 안 달려서 파버릴까 하는데 달리더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그러니까 개량종도 심고 토종도 심으면 수확할 수 있는 기간이 더 긴 거예요. 그래서 꾸러미에 물건을 계속 낼 수가 있죠. 한영미 소장 : 꾸러미가 어렵기는 해도, 그래도 이어가요. 이게 지역에도 여성농민에게도 크게 도움이 돼요. 여성농민이 직접 가격을 매기고, 여성농민 계좌에 돈이 들어가니까요. 적은 금액이지만요. 기후정의나 식량주권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어요. ‘접어야 하나’ 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요. 작년부터 언니들 빈 자리에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언니들처럼 온전히는 못해도, 농지은행 통해서 농지도 분양받아서 농사짓는 친구도 있고, 토종씨앗 지키는 활동하면서 들어온 청년 초보 농사꾼도 있고요. 빈티지 샵을 하는 친구는 오전에 와서 작업을 해 주고 점심 먹고 가는 거죠. 서울 간 친구도 일주일에 이틀이나 삼일 와서 일하죠. 평생 농사를 짓고 있었던 언니, ‘찐농민’ 언니가 지난 주에 합류했어요. 그 언니는 농사도 짓고 요양보호사도 하시는 분인데, 성평등 교육 같이 들으면서 만난 분이에요. 센터에서 사업을 하면서 조금씩 활동가들이 만들어져요. 정말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죠. 서근영 : 이번에 좀 놀랐던 게, ‘남태령’을 기점으로 꾸러미 회원도 작년에 많이 늘었어요. 후원도 늘었고. 언니네장터 이용자가 크게 늘었어요. 남태령 때 자유발언에서 “저 언니네텃밭 꾸러미 회원이에요.”하는 분도 계셨고…. SNS 통해서 많이 이야기됐나 봐요. 꾸러미가 전체적으로는 하향 추세였던 게, 소비자가 대부분 1인가구라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수가 없잖아요. 지금은 1인 꾸러미도 있지만, 대부분 배달을 해 먹거나 포장해 오거나 이러니까. 그 와중에 늘었다라는 게, 이 사람들은 누구지? 우리에게 이런 결과들이 온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뿌듯하고…. 작년에 ‘다섯시장’에 서울여성회에서 왔어요. 센터에서 도농 교류 사업을 하거든요. 차 한 대가 왔는데, 완전 젊은 친구들인데, 남태령 친구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여성농민들하고 교류하기 위해서 왔다는 거예요. 올해 또 한 번 올 거예요. 이런 흐름을 상설화해야겠다, 그 친구들에게 부스 하나를 줄 수도 있죠. 그리고 농사짓는 언니들도 좀 새로운 공기를 쐬고 싶잖아요. 새로운 음식도 먹고 싶고. “농촌 공동체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공익적 지원 필요합니다” 호미 : 토종씨앗 사업이 씨앗을 지킬 뿐 아니라 지역과 도시, 농촌을 잇고 있네요. 이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다면요? 인터뷰하며 언니네텃밭 꾸러미 싸는 일을 거들었다. 신문지를 깔고 계란을 6알씩 싸고, 마늘쫑, 쑥갓 등은 무게를 재서 나눠 넣고, 쑥을 방앗간에 가져다주었다. 쑥떡 맛이 궁금해 직접 꾸러미를 주문했더니, 다음 날 집에 온 풍성한 꾸러미 모습이다. 쑥떡과 미나리 물김치가 향긋하기 그지없다. (사진 촬영-호미) 한영미 소장 : 토종씨앗 공부하기 위해 왔다가 꾸러미 생산자가 되시는 분들이 매년 조금씩 늘고 있는데요. 채종포나 언니네텃밭, 여성농업인센터는 청년여성 농업인에게는 농촌에서 살아갈 힘을 키우고 자기 농사를 배울 수 있는 거점이 된다고 봐요. 정부가 귀농귀촌정책 사업으로 청년들에게 지원금을 주는데, 자기 농사 짓는 거에만 주지, 지역 농촌공동체에 들어가서 뭘 해보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농사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사람들, 농촌 지역사회 공동의 가치를 도모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공익적 지원이 있으면 좋겠어요. 호미 : 귀농하신 근영 씨에게도 여쭤볼게요. 농촌에 살고 싶거나 농사를 짓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서근영 : 저는 내려오는데 걱정하거나, 뭘 준비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안 했어요. ‘언니들이 있으니까 가면 되지.’ 하고 왔기 때문에 정말 고민 없이 간다 했죠. 처음에 여자 둘이 내려와서 사는데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런 걱정은 거의 안 해봤어요. 이미 오랫동안 마을에 자리잡은 언니들이 저와 함께하는 거잖아요. 든든하죠. 안정감이 크죠. 호미 : 마을살이는 어떠세요? 도시는 ‘마을’이라는 걸 실감하기 어렵지만, 귀농귀촌을 하는 동시에 마을공동체 성원이 되잖아요. 귀농귀촌했으면 마을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요. 서근영 : 그쵸. 근데 저는 그냥 여성농민회와 센터에 녹아든 거 같아요. 농촌 언니들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더 큰 것 같아요. 센터를 통해서 횡성을 알아가요. 좋은 사람을 알아가고, 맛있는 식당도 알고. 서울에 있을 때도 접하기 어려웠던 좋은 교육을 받고 있어요. 센터는 그냥 막 도와줘요. 그냥 이 사람이 농촌에 왔다, 정착하겠다는 사람이다 하면, 할 수 있는 한 다, 최대한 도와줘요. ‘이렇게도 해보자’, ‘저것도 해보자’ 해요.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에 온다는 게, 사실 너무 큰 전환이잖아요. 미리 알 방법도 없고, 엄청난 결단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은 준비를 하는 거예요. 돈도 필요하고, 농사 교육도 엄청 들어야 되고, 작목을 미리 정해가지고 내려오라고…. 일반 귀농귀촌 교육이 그렇게 진행되더라고요.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삶에 관심이 있고 농사를 마음에 두고 있는 여성이라면 농사를 시작했고 안 했고를 떠나서 먼저 여성농업인지원센터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여기서 정말 좋은 여성농민, 언니들을 만날 수 있어요. [2부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호미 :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지만 다시 귀농 준비를 하고 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지민주 노래 ⌜세상에 지지 말아요」를 따라썼다) 드러내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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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하영 증조부 '친일파' 논란에 역사학자 제동…"친일파 단정 위험"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활동했지만 친일인명사전엔 미등재 역사학자 심용환 "명확한 부역 행위 밝혀지지 않아" 배우 하영. photo 뉴스1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던 친일 단체에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 "특정 단체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심 소장은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갑자기 어떤 여배우의 증조부 문제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며 "더불어 역사학계가 그의 증조부가 '친일 맞음'이라고 규정했다는 기사까지 떴다"고 밝혔다. 그는 먼저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사실과 함께 거론된 고종 독살설에 대해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풍문에 불과했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간주된다"며 "냉정히 말해 10년간 일본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던 고종을 갑자기 일본이 독살할 이유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에 대해서는 "그가 당시 엘리트였고 대정실업친목회 등 친일파들이 많이 참여했던 단체에 소속된 것, 일본의 시정 홍보에 집안이 사용된 점 등에서 만년에 존경받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맞다"면서도 "명확한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단체에 가입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대정실업친목회는 조선인 상류층을 중심으로 구성된 친일 성향 단체로,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이 단체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심 소장이 언급한 '친일 부역 행위'는 단순히 일제강점기 친일 성향 단체에 가입하거나 활동한 것보다 적극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일제의 식민통치나 침략전쟁 등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일본의 이익에 기여하고 민족 공동체에 피해를 끼친 구체적인 행위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는 취지다. 심 소장은 "누군가를 쉽게 '친일파'라고 단정해버리면 과거사에 있었던 너무나 많은 이들이 친일파가 될 것"이라며 "결국 친일 부역의 기준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비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 기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후손에게 선대의 행적을 어디까지 연결해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 소장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까지를 '후손'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보다 명쾌한 기준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며 "어디까지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고 그로 인해 어떤 권리와 책무를 누려야 되는지에 대해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밝혔다. 당시 하영은 "증조할아버지께서 당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다고 한다"며 "고종 황제를 진료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부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방송 이후 그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로 활동했던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이 확산하자 하영의 소속사는 "의도치 않게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배우 본인은 마음이 매우 무거운 상황"이라며 "하영 역시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깊이 새기고,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사과했다. 사과 이후에도 여파는 계속됐다. 문제가 된 '옥탑방의 문제아들' 방송분은 비공개 처리됐고, 하영이 출연한 광고와 유튜브 영상 등도 비공개로 전환됐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모처에서 예정됐던 하영 출연 드라마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 인터뷰도 취소됐다. 다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1년 편찬 작업을 시작해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전 편찬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행적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반민족행위 여부 등을 심사해 수록 대상을 선정했다. 안상호가 사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친일 행적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전 편찬 당시 수록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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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오세훈, 황희 '폐버스 청년주택'에 "황당한 아이디어"
오 시장 "주거는 삶의 사다리…깊은 책임감" 2030년까지 청년주택 7만4000호 공급 계획 오세훈 서울시장이 폐버스를 개조해 청년주택으로 활용하자는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안을 두고 청년 주거 현실과 동떨어진 구상이라며 비판했다. 사진은 오 시장이 12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개봉 세이지움 청년안심주택을 방문해 입주 청년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김성렬 기자 [더팩트 | 김명주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폐버스를 개조해 청년주택으로 활용하자는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안을 두고 청년 주거 현실과 동떨어진 구상이라며 비판했다. 오 시장은 12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 청년안심주택을 찾아 입주 청년들과 만난 뒤 자신의 SNS에 '청년의 주거사다리를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는 he 글을 올리고 이같이 밝혔다. 오 시장은 "청년들에게 주거는 '삶의 사다리'"라며 "오늘을 버티며 내일을 준비하는 기반이고 저축하고 도전하고 가정을 꾸리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폐버스를 개조해 청년주택으로 활용하자는 황당한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청년들에게 주거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월세가 오르면 청년들은 그만큼 밥값을 아끼고 자기계발을 미루고 저축을 포기하게 된다"며 "집값과 임대료가 함께 오르면서 열심히 일해도 다음 단계로 올라설 종잣돈을 마련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오 시장은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청년들에게 '집'이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다시 한번 절감했다.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청년안심주택과 서울형 새싹원룸, 디딤돌주택,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 대상 확대 등 시의 청년 주거 및 주거비 지원 정책을 소개했다. 청년주택을 오는 2030년까지 총 7만4000호 공급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오 시장은 "서울시는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거 사다리를 하나하나 촘촘히 놓아가고 있다"며 "청년의 주거사다리를 지키는 일에 모든 역량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황 의원은 지난 7일 폐버스를 개조해 청년들의 단기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이른바 '버스 하우스'를 제안했다. 이후 청년 주거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제안을 철회하고 사과했다.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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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하영 증조부 안상호, 당대 최고 의사" 박유하 교수의 망언
[데일리안 = 전기연 기자]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의사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당대 최고 의사"라고 평가하면서 이를 둘러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박 교수는 안상호의 친일 논란을 두고 "친일 강박증과 순결 강박증이 빚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저서 '제국의 위안부'로 비난을 받았던 박 교수는 11일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에 대한 글을 올렸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왼쪽)과 배우 하영.ⓒ연합뉴스·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박 교수는 안상호에 대해 "조선의 양의 1호이자 대한제국 1호 국비유학생으로, 대한제국이 만든 인재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귀국 후 순종 주치의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부도 따라왔을 것"이라며 "친일로 쌓은 명예라기보다 스스로의 실력과 국가의 지원으로 의료계 파이오니아가 된 이로 보인다"고 짚었다. 특히 안상호가 을사오적 이완용을 치료한 이력과 관련해서는 "이완용이 아니라 서민이라도, 가능하다면 당대 최고 의사였던 그에게 치료받고 싶었을 것"이라며 "아픈 사람이라면 실력 있는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지도층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도 "정치·경제·문화·교육 모든 분야에서 리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교육부터 활동까지 구조적으로 친일파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부정한다면 일제시대 내내 인재를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며 조선인 정치가와 기업인, 학교장 등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된다고 지적했다. 또 하영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인 조상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수십만명이 모였다는 지원병 지원자들 가운데 당신의 조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창씨개명을 신청한 조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발언 배경에 대해 "규탄부터 하고 보는 당신의 폭력이 한 사람을 사정없이 죽이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순결 강박, 친일 강박증이 이 모든 걸 만든다"며 "치유하려면 오욕을 내 것으로 끌어안는 태도부터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BS 방송 영상 갈무리 그러나 박 교수의 발언을 두고 누리꾼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시대적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업을 수행한 '구조적 친일'과는 다른 문제"라며 안상호가 당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어를 사용하지 않고 의복과 음식, 생활 방식 등을 일본식으로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계형 협력과 자발적 내선일체를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그럼 독립운동가들은 물욕이나 명예욕이 없어서 목숨 걸고 항일했느냐"며 "시대가 지났다고 친일매국노들이 이해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대한제국SNS교육부KBS -
생활'증조부 친일 논란' 사과한 하영에…"지지한다" 해외 팬들 응원 이어져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해 사과한 가운데,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해외 팬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에서 연기중인 배우 하영 [사진=넷플릭스] 12일 하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며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이에 대해 국내 누리꾼은 "이번 일이 한 번의 사과문으로 일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역사를 계속 공부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줬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과거의 무지를 인정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나아갈 길"이라고 꼬집었다. 해외 누리꾼들은 하영에 대한 지지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한 영어권 누리꾼은 "왜 한국인들은 항상 아티스트가 매번 사과하도록 만드느냐"며 "가족의 역사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배우 하영이 인스타그램에 증조부 친일 논란에 대해 자필 사과문을 올리며 사과하자 해외 누리꾼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았다. [사진=하영 인스타그램] "누군가 인기가 생기면 사람들은 항상 욕할거리를 찾는다" "하영을 지지한다" "다음 작업을 기대하고 있다"는 응원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편으로는 "나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한국의 일제강점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책을 읽었을 때 정말 끔찍했다"며 "이것은 민감한 주제"라고 지적하는 반응도 나왔다. 하영은 지난 7일 방송한 KBS 2TV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후 그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1872~1927)로 알려지며 당시 행적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친일 의혹이 불거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 일본의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의사학회지 등에는 안상호가 촉탁의(외부 의료진)와 전의 촉탁(외부 주치의)으로 순종과 고종의 건강을 돌봤다는 기록도 있다. 안상호는 경제인, 관료, 언론인 등 경성의 유지들이 1916년 창립한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21명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역사문제연구소의 장신 상임연구위원이 2007년 낸 논문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1927년 대정친목회에 대해 "총독정치를 시인하고 내선민족의 융화를 목적으로 하는 내선융화단체"라고 언급했다.
자필 사과문인스타그램넷플릭스SNS사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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